세계에 닥친 금융 위기는 우리 지구인들의 삶의 기초가 돈이었음을 여지없이 드러냅니다. 인간에게 마지막 남은 상업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이 위기 앞에서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모래밭이 아닌, 반석 위에 내 삶을 다시 쌓는 일입니다.
여름 휴가는 다녀오셨습니까? 휴가를 vacation이라합니다. 헬라어 vacate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홍해바다에 당도하였습니다. 이백만이나 되는 노예들을 맥없이 빼앗긴 파라오는 분통이 터져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특별 병거 육백 대와 이집트에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병거를 모아 추격에 나섰습니다. 병거는 오늘날의 탱크라 할 수 있습니다. 앞에는 시퍼런 홍해바다 뒤에는 수천 수백의 병거. 이스라엘 백성들은 완전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되었습니다. 백성들이 아우성을 칩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 우리를 여기서 죽게 하느냐?” 그 때 모세가 백성들에게 외칩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출 14:13)
“가만히 서서”에 해당되는 단어가 바로 ‘vacate’입니다.
홍해 바다 앞에서가 더 절박할까요, 요즈음이 더 절박할까요? 비교조차도 할 수 없습니다. 그 절박한 상황에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여호와 하나님과 이집트 파라오의 한판 승부를 구경하라는 것입니다. 평소에 나를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는 불량배가 혼쭐나는 것을 보면 속까지 후련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더러 그렇게 하자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힌 이집트와 파라오가 홍해에서 혼쭐이 났다면, 오늘날에는 우리들을 괴롭힌 돈이 혼쭐이 나고 있는 중입니다. 이집트의 패망을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무엇보다도 통쾌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금융위기를 보면서 우리들도 통쾌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맘몬신이 지배하는 세상을 징벌하고 계시는 중이시며, 새 하늘과 새 땅을 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어떻게 볼까? 예배를 통해서입니다.
예배는 구약의 제사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제사’는 히브리어로 ‘코르반’으로 그 뜻은 ‘친밀해지다’, ‘가까이 가다’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친해지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헬라어로 번역되면서 sacrifice가 되었습니다. ‘희생’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에는 하나님께 뭔가 바쳐야 하고 내가 손해를 봐야하고, 그렇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는 것으로 변질되었습니다. 그래서 설교도 희생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질타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안식일을 회복해야 한다는 말은 여호와를 가장 친밀하고 가장 가까운 ‘나의 하나님’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배는 worship입니다. 이 말은 worth-ship, 문자 그대로 “가치 있는 일”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나의 주님을 만나 설움과 걱정과 피곤을 날려 보내고, 땅에서는 구경조차 할 수 없는 지혜와 영감과 능력을 얻는 날입니다.
1992년 플로리다에 허리케인 앤드류가 덮쳐 11만 7천 채의 집이 무너졌습니다. 초토화된 지역에 27채의 집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해비타트 운동에서 지은 집이었습니다. 해비타트 운동 창시자 밀러드 풀러에게 CNN기자가 물었습니다. “멀쩡히 서 있는 집은 당신네 해비타트 집들뿐입니다.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그러자 풀러가 말했습니다. “첫째, 우리는 기독교 기관으로서 반석 위에 집을 짓습니다. 둘째, 우리들은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집을 짓습니다. 그렇게 지은 집이니 헤리케인 앤드류도 무너뜨릴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아름다운 세상이 돈독 올라 사는 우리들로 인하여 맘몬 신이 들어와 휘두르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그 세상을 정리하고 계십니다. 걱정하지 말고 주님과 이사야 선지자가 가르쳐 준 길을 묵묵히 가기로 합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세운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니라.”(마 7: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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