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속성이 그러하다면 문제는 가능한 한 낮게 낮게 가라앉되,
그러나 떠 있는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저의 시작(詩作) 태도를
‘저공비행’이라는 말로 바꾸어 보고 싶습니다.
가령 비행기가 공습을 할 때에는 가능한 한 낮게 아래로 내려와야 합니다.
그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긴 하지만, 정확한 공격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중략).
시인은 어떻든 자기가 발 딛고 있는 현실 사회 속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시인이 이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 눈 감으려고만 할 때, 시의 운명은 걷잡을 수 없는 것이 될 것 같아요.”
이성복 저(著) 「고백의 형식들 (열화당, 81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물화(物化)된 시인처럼 추한 것은 없습니다.
하늘로 공중부양만 하고 있는 시인처럼 교만한 것도 없습니다.
땅과 하늘의 균형을 이루는 저공비행이 아름답습니다.
어느날 다윗은 사울 왕에게 쫓겨 가드 왕에게로 도망치게 됩니다.
가드는 다윗이 죽인 골리앗의 고향입니다.
다윗은 살기 위해서 거기서 침을 흘리고 땅을 기며 미친 척을 합니다.
하나님은 그때 기적적으로 나타나서 그를 구출하지 않습니다.
내버려 두어 미친 사람의 지경까지 낮추십니다.
다윗은 이런 광야 생활을 통하여 자아가 죽는 훈련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철저한 현실의 영성을 배우게 됩니다.
다윗은 성경 최고의 시인(詩人)입니다.
시인은 하늘을 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땅을 기어 다니게 함으로써 땅 내음을 흠뻑 맡게 합니다.
자신이 죽고 죽어 땅의 사람이 되었을 때 비로소 하늘의 시인이 된 것입니다.
“다윗이 이 말을 그 마음에 두고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
그들의 앞에서 그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삼상21: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