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것이 큰 계명입니까?
(마22:34-40: 가장 큰 계명)
▶본문
34.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35.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해석과 설명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34절)
‘바리새인들‘
‘서기관’ 또는 ‘교법사’라고도 부른다.
예수님 당시 유대교를 대표하는 양대 종교 파벌 중 하나다.
바리새파는 에스라로부터 시작된 유대주의에 충성하는 한 부류로 마카비 시대 때 생겨났다.
이들은 에스라를 모세 다음가는 유대교의 창설자로 추앙했다.
바리새파의 종교적 특징을 요약하면
①에스라/느혜미야가 정신적 지주 ②신앙중심-종교적 ③헬라화 반대 ④회당 중심
⑤영혼불멸/영적부활 ⑥천사/영적 존재 인정 ⑦예정론 신앙 ⑧율법 실천에 전력한다.
지금 그 바리새파들이 예수님께로 모여들었다.
그들이 예수님께 모인 이유는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35절)
‘한 율법사’
율법에 정통한 사람 율법교사(律法敎師, teacher of the law)를 말한다.
이들은 주로 바리새파에 속해 있었다.
율법교사는 율법 해석과 그 적용을 전문으로 하는 학자로서,
유대 사회에서는 지도층에 해당했다(마 22:35; 눅 7:30; 14:3).
이들은 바리새인들과 함께 예수님을 시험하고 그분을 훼방하는 일에 열심을 냈다(35)
이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데 큰 역할을 한 자들이기도 하다.
지금 이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36절)
‘선생님’
바리새인들의 아주 교활함이 배어 나오는 호칭이다.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당시 랍비(율법 선생)들은 율법 조항을 613개로 구분했다고 한다.
이 중 248개를 중요하게 여겨 적극적으로 ‘하라’했고,
덜 중요한 356개를 덜 중요하게 여겨 ‘하지 말라’고 했다 한다.
이는 율법 조항을 모두 실천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기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늘 이들이 예수님께 했던 질문의 배경이기도 하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37-38절)
예수께서는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을 첫째 계명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신6:4-6의 인용으로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도리를 명확하게 하신 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본문)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신6장)
다만 이런 차이가 있을 뿐이다.
첫 계명은 결국 전인격을 가지고 온전하게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39절)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와 같으니’라는 말씀이다.
즉, 예수님은 첫 번째 계명과 두 번째 계명이 결국 같은 것으로 취급하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바리새인들과 예수님의 성경 해석차이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이행하다 보면 사람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이웃사랑이 곧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가르치셨다.
그렇다면 ‘이웃’은 누구인가?
본래 율법이 주어질 당시에는 ‘이스라엘 백성’만을 의미했으나,
예수님 당시에는 ‘원수’(마5:44)를 포함하는 광범위한 주위 사람들(열방까지)을 가리켰다.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40절)
‘이 두 계명’
예수께서 앞에서 말씀하신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가리킨다.
문자적으로는 ‘이 두계명에 그 율법과 그 선지자가 매달려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율법과 선지자’는 구약 전체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본 절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의 이 두 계명이 구약 전체의 기둥이며, 핵심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율법의 핵심인 십계명의 1-4계명은 ‘하나님 사랑’에 대한 것이며,
5-10절은 ‘이웃사랑’과 관련된 것이다.
▶교훈과 적용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39절)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신6장)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었다.(37-38절)
다시 말해서 첫째 되는 계명은 ‘결국 전인격적으로 온전하게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39절에서 ‘둘째도 그와 같으니’라는 말씀이 나온다.
이는 예수께서는 첫 번째 계명과 두 번째 계명이 결국 같은 것으로 취급하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바리새인들과 예수님의 성경 해석 차이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이행하다 보면 사람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사상은 과거에도 지금도 우리 교회 안에도 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이 부분은 성경 교사인 목회자의 그릇된 가르침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이웃사랑이 곧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40)”
그렇다면 ‘이웃’은 누구인가?
본래 율법이 주어질 당시에는 ‘이스라엘 백성(동족)’만을 의미했으나,
예수님 당시에는 ‘원수’(마5:44)를 포함하는 광범위한 주위 사람들(열방까지)을 가리켰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4:2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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