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을 버리라!
(마23:1-12: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책망)
▶본문
1.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3.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4.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5.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6.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7.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8.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9.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10.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11.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12.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해석과 설명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1절)
‘무리와 제자들’
본장에 언급된 ‘무리’는 일반 백성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당시 유대 사회에서 지도자적 위치에 있던 사두개인, 바리새인, 헤롯 당원들과는 구분되는 일반 평민들을 가리킨다. 예수께서는 바로 이들에게 유대 교권자들의 사악한 정체와 무지함을 밝히고자 하셨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2-3절)
여기서 ‘모세의 자리’란 본래 회당에서 서기관들이 율법을 가르칠 때 앉았던 의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특히, 바리새파와 서기관들은 유대교의 최고 권위로 인식되었던 모세의 권위를 대행한다고 자처했다.
하지만 그들의 가르침은 참된 성경 교사로서보다는 하나의 종교 권력 또는 명예를 상징하는 자리가 되고 말았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복음은 그들에게 ‘생명’이 되지 못하고 ‘거침돌’이 되었다.
예수께서는 지금 백성들에게 그들을 경계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4절)
이 말씀은 3절의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를 받는 말이다.
즉, 이 말씀은 종교지도자들이 성경교사로서 백성들에게 율법을 강론하고 가르치나 정작 자신들은 행하지 않는 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자신들이 가르친 말씀을 자신들도 행하지 않으면서, 행하기 어려운(무거운) 율법을 백성들에게 강요하는 행태를 지적하신 이다.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5절)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앞에서 예수께서는 자신들도 행하지 않으면서 백성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는 유대 종교지도자들을 책망하신 후, 그들의 ‘외식’을 지적하신 것이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대표적인 외식행위는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는 것(5절)’이었다.
‘경문’이란 성구(율법)을 기록한 양피를 말한다.
이는 유대지도자 자신들이 얼마나 경건한 삶을 살고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
경문을 더 크고 넓은 양피에 기록해서 들고 다녔다.
그리고 자기 옷술에 길게 늘어뜨리고 다녔다.
원래 ‘옷술’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하기 위한 표시로 옷단에 청색실로 짠 술을 달고 다녔는데
이것도 시간이 흐르면서 더 화려하게 장식하고 다녔다는 것이다.
이 모두 보여주기 위한 ‘외식’이었다.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6-7절)
여기서 ‘잔치의 윗자리’는 연회장의 상석을 의미하며,
‘회당의 높은 자리’는 율법 두루마리를 넣어두는 책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전자는 세속적인 영광을 상징한다면, 후자는 종교적인 명예를 상징한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세속적 영광’과 ‘종교적 명예’ 이 모든 것을 탐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 택함을 보시고(눅14:7)”
또한, 그들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 했다.
‘시장’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공장소로서, 바리새인들은 세상에서도 인정받기를 좋아 했다는 것이다.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 했다는 말은 ‘선생’이라는 말을 듣기를 좋아 했다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선생’은 사회적 존경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8절)
본 절부터 12절까지는 바리새인을 대상으로 한 강론이 아니라, 제자들을 향한 교훈이다.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이는 ‘교사’가 되거나 ‘지도자’가 되는 것을 금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겸손하게 섬기는 종이 되라는 말씀을 강조하는 것이다.
‘너희 선생은 하나요’
이는 여러 의미로 해석 할 수 있으나,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우리의 유일한 스승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다.
‘너희는 다 형제니라’
우리의 스승은 오직 예수 한분이라는 전제하여, 제자들은 모두 한 형제라는 것이다.
보통 ‘형제’는 혈육적인 관계를 나타내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의해 맺어진 영적 형제를 말한다.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9절)
이 말씀은 8절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즉, 세상에서의 혈육적인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는 당시 백성들이 일부 율법 선생이나 선지자들에게도 ‘아버지’라는 호칭이 불려졌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신 말씀으로, 이를 금하라는 말씀이다.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10절)
이 말씀은 8절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는 말씀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선생이 되지 말라!’하시고,
이번에는 ‘지도자가 되지 말라’고 계속 반복하신 의미를 잘 이해해야 한다.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11-12절)
예수님께서는 당시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경계하시면서, 제자들에게 계속해서 강조하시는 것은
‘겸손한 교사’, ‘겸손한 제자가 되라’는 것이다.
겸손한 제자가 되는 길은 ‘섬김의 리더쉽’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교훈과 적용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8절)
앞서 주님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과의 권위 논쟁, 부활논쟁, 세금 논쟁을 하셨다.
이 모두가 예수님을 모함하려는 저들의 술책이었지만 예수님은 모든 논쟁을 압도하셨다.
본문은 예수께서 적대적인 유대 지도자들이 아닌 일반 백성들과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그들(교권주의자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의 행위는 본받지 말라!(3절)”
한 마디로 ‘저들의 위선을 경계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저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8절)”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고 하신다.
이는 ‘교사’가 되거나 ‘지도자’가 되는 것을 금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겸손하게 섬기는 종이 되라는 말씀을 강조하는 것이다.
스승과 지도자들이 빠지는 함정은 ‘위선’이다.
자신을 잘 포장하지 않으면 사람들의 존경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스승이 되고 지도자가 되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지식이 있다고 스승이 되는 것이 아니며,
리더쉽이 있다고 지도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스승은 덕을 갖추어야 하고 지도자는 섬김의 종이어야 한다.
이것이 기독교의 역설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늘 두렵다.
내 안에도 ‘위선’이 있기 때문이다.
-‘위선’을 버리라!-
“위선자들아, 바로 너희와 같은 사람들을 두고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잘 예언하였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이 만든 법을 마치 내 교훈인 것처럼 가르치고 있으니
나를 헛되이 예배하고 있다.'(마15:8-9:현대인의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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