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마이클호튼

오스틴의 「잘되는 나」는 복음의 진술이 아니다/ 마이클 호튼

새벽지기1 2018. 2. 13. 07:27


오스틴은 『잘되는 나』(원제; 더 나은 자신이 되라: 당신의 삶을 매일 진보시키는 일곱 가지 열쇠)를 저술했다. 미의회 도서관 분류표를 보면 이 책은 이렇게 분류돼 있다. “1. 자기실현(심리학)-종교적인 측면-기독교” 미의회 도서관조차도 이 책이 표방하는 메시지의 종류를 간파한 것 같다.

 

“당신은 더 나아질 수 있다" 오스틴은 초대한다. “문제는 ‘어떻게?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다. 나는 첫 번 째 책 『긍정의 힘』(원제: 지금 누리는 당신의 최고 인생)에서 당신의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일곱 단계를 소개했다" 그러나 그는 『잘되는 나』를 통해 좀 더 깊이 들어가고자 한다. “나는 독자들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하나님이 당신 안에 심어 놓으신 위대함의 소중한 씨앗을 발견하도록 돕기를 원한다. 이 책에서 나는 당신에게 일곱 가지 열쇠를 보여 줄 것이다. 당신은 이 열쇠로 저 위대함의 씨앗들을 발아시킬 수 있다. 그 씨앗들이 복되고 풍성한 삶으로 싹 틀 것이다 --- 기억하라. 하나님은 승리하는 인생을 사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당신 안에 허락하셨다. 그것을 꺼내는 일은 이제 당신에게 달렸다 --- 더 나은 자신이 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먼저 하나님이 당신을 지으신 그대로 되길 원하심을 아는 것이다. 두 번째로, 하나님이 그분의 일을 하시기에, 당신도 당신의 몫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함을 아는 것이다". 따라서 당신이 오스틴에게서 들을지도 모를 최악의 소식은 당신이 이미 알지 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최고의 소식은 그의 충고를 따름으로써 더 많이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오스틴이 말하는 일곱 가지 열쇠들은 복음의 진술이 아니다. 달리 말해서,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일으킨 구원의 일에 대한 선언이 아니다. 선지자적인 메시아 기대, 성육신, 죄인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적극적인 순종, 그리스도의 죄를 치워 버리는 죽음과 한 몸의 머리로서 당당한 부활, 우리를 아버지께 소개하고 성령을 우리 마음에 보내심, 이로써 그리스도가 영광가운데 돌아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세대의 마지막에 우리 육체의 부활을 위한 보증으로 삼으심 등이 들어 있지 않다. 이것들은 도리어 요청(명령)이다. 성경에 일체 호소하지 않고서도 수많은 자료에서 뽑아낼 수 있다.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 당신은 이런 것들을 해야 한다. (1) 앞만 보고 나가라. (2) 자신에게 긍정적이 되라. (3) 더 나은 관계를 발전시키라. (4) 더 건전한 습관을 형성하라. (5) 현재 처한 환경을 받아들이라. (6) 내면생활을 풍성하게 하라. (7) 인생을 활기차게 살아가라". 이것들은 모두 당신이 해야 할 목록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에 대한 좋은 소식이 담겨 있지 않다.

 

주제는 다시 영광의 신학 계열의 “상승”이다. 하나님의 겸손하고 자기희생적인 낮추심이 아니라 우리의 자기 확신에 찬 상승에 강조가 놓인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스틴은 많은 독자들에게 마치 한 사람 한 사람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자녀”인 양 말하지만, 어디에도 이런 관계의 중재자인 그리스도가 언급되지 않는다. 아니,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에 모든 사람에게는 그 안에 이러한 “위대함의 씨앗”, 이러한 신적인 DNA가 심겨 있다. “모든것이 당신 안에 있다. 당신은 잠재력 덩어리다. 그러나 당신의 몫을 하고 그것을 풀어 놓아야 한다 --- 당신 안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씨앗이 있다 --- 그 잠재력이 펼쳐질 모습을 우리는 믿어야 한다". 케니스 코플런드와 TBN에 출연하는 다른 유명 인사들과 같은 형통주의 텔레비전 전도자들의 상궤를 벗어난 가르침, 즉 우리 안에 신성의 핵심을 지니고 있는 “작은 신들”이 바로 우리라는 가르침은 약간은 덜 구체적으로 그러나 이주 노골적인 용어로 번져 나가고 있다.

 

오스틴의 저서 여기저기 성경에 호소하는 대목들이 많이 나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거의 모든 경우, 성구는 문맥과는 상관없이 마치 포춘쿠키(덕담이 적힌 작은 종이가 들어 있는 과자. 보통 중국 음식점에서 후식과 함께 나온다-역주)처럼 자기 자신을 위해 되뇌거나 주장하는 약속 비슷하게 쓰이거나, 아니면 오스틴의 관점에 맞게 잘못 인용되고 있다. 창세기 3장 11절에서 하나님은 그의 죄를 추궁하기 위해서 아담에게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고 물으셨다. 그러나 오스틴은 아담이 시험에서 실패했고 성공을 위해 넘었어야 할 관문을 넘지 못했다고 사탄이 아담에게 말한 양 해석하고 있다.

 

오스틴은 『잘되는 나』에서 좀 더 노골적으로 형통복음으로 기울어졌다. 오스틴은 마치 타락 같은 것은 있지 않았다는 식으로 말한다. 비록 승리를 성취하는 것은 당신에게 달려 있지만 “하나님은 숭리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당신 안에 심어 놓으셨다". 매일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야 한다. “나는 비결을 알아. 나는 위대한 정복자야. 나는 똑똑하고 재주가 많아. 나는 성공할 위인이야. 나는 매력적이야. 나는 극복할 수 있어".

 

이 책은 형통복음의 요설로 도배질이 되어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선언하고, 형통을 말하며, 건강, 부 그리고 행복이 우리 삶에 찾아 오도록 예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은 우리의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마련하셨으나 능력의 원천에 플러그를 실제 꽂고, 적절한 원리들과 절차를 따름으로써 복을 창출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렸다는 인상을 심어 준다.

 

초자연적인 수사에도 불구하고 결국에 가서는 이 모든 것이 이신론으로 들린다. 하나님이 형통의 법칙에 맞도록 모든 것을 마련하셨으니, 이제 공은 우리 코트로 들어왔다. 승리하는 삶의 길을 가르치는 진부한 선생들을 따름으로써, 오스틴은 영원한 영역을 끌어들이는 일을 말한다. 이 길에서는 심지어 종교도 일종의 기술이 된다. 옳은 원리, 공식 그리고 단계를 알면 형통, 복 그리고 특혜는 지금 여기서 당신의 것이 될 수 있다는 식이니 말이다. 다시 한번 영지주의적인 영성이 쉽게 감지된다.

 

- 마이클 호튼,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 pp 112-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