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마이클호튼

조엘 오스틴의 형통 복음과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 마이클 호튼

새벽지기1 2018. 2. 8. 07:15


유다가 신실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거짓 선지자들이 인정과 인기를 쫓는다고 꾸짖으셨다.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느라 ”(렘6: 14-15) 바울도 비슷하게 그가 “대단한 사도들”이라 부른 사람들에 맞서 그의 사역을 변호했다. 이들은 절세의 언변과 그리스사람들의 입맛에 잘 맞게 한 메시지로 그들 자신에게 제자들을 끌어들였다.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 (고후11:4-6)

 

바울은 로마서 말미에서 성도들에게 이렇게 호소하고 있다. “---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이 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롬16:17-18). 바울은 디모데에게,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올 해주는 선생들에게 모일 것이라고 경고했다(딤후3:2-4,4:3-5). 현대적인 적용이라고 부르는 것의 상당 부분을 바울은 이 본문에서 불경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은 오늘날 성공하는 미국 종교의 단골 메뉴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더 효율적이고 현대인에게 맞는다는 식으로 광고된다. 예일 대학교의 신학자언 조지 린드백은 이렇게 논평한다. “노만 빈센트 필의 시대에 자유주의적인 청중들은 성경을 가지고 노는 일이 필요했다. 그러나 지금은 로버트 슐러의 경우가 보여주듯이 자신을 보수주의자라 부르는 사람들이 이것에 더 열중하고 있다”. 노만 빈센트 필은 자신의 베스트셀러 『적극적 사고방식의 능력』으로 유명해지기는 했지만, 보수적인 개신교도들로부터 기독교 선포의 가장 중요한 측면을 버리고 낙관적인 자기계발의 메시지를 선호했다는 이유로 맹비난을 당했다.

 

수정교회의 설립 목사이며 빈센트 필의 가장 유명한 제자인 로버트 슐러는 이 순수한 미국적 복음을 복음주의 진영에서 더욱 성공시키는 데 기여했다. 『자존심: 새로운 종교개혁』,『자아 사랑』, 『당신을 믿어 주시는 하나님을 믿어라』이 그리고 『행복의 태도』등 슐러의 저서들은 그의 텔레비전 사역의 힘을 받아 베스트 셀러가 됐다. 복음주의자들은 종교를 세속문화에 순응시키는 일에 있어 자유주의적인 경쟁자들을 따라잡았을 뿐만 아니라 이제 분명히 앞서 가고 있다. 어떤 세속적 자기계발 스승도 이들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적극적인 사고방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믿음의 말씀 운동(Word of Faith movement) 으로 알려진 적극적 사고방식의 오순절주의적 버전이 땅 끝까지 형통복음(prosperity gospel)을 확산시키고 있다. 널리 선전되는 것처럼 2/3세계(과거 제3세계를 일컫는 말, 이 범주에 들어가는 국가들이 전 세계의 2/3가 된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에서 기독교의 팽창을 자축하는 것은, 형통복음이 적극적 사고방식의 가장 폭발적인 버전이라는 사실 앞에서 자제 되어야 한다.

 

상당수 신학자들이 이러한 형통의 메시지와 고대 영지주의 사이에 놀랄만한 유사성이 있음을 지적하곤 한다. 믿음의 말씀 메시지는 마치 저 고대의 이단처럼 영과 물질을 날카롭게 구별하는 이원론을 당연시한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영역의 비밀스러운 원리를 습득함으로써 인간이 처한 외적인 환경들을 지배할 수 있다고 약속한다 (“자연”이라고 흔히들 부르는) 창조 세계 자체는 타락했지만, 내적 자아는 신성하다고 이 교설의 교사들은 주장한다. “당신 안에 사는 하나님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케니스 코플런드는 이렇게 가르친다. “당선이 신이다. 당선이 하나님의 일부고 하나님의 한 조각이다.”

 

조엘 오스틴의 화려한 성공보다 미국판 교회의 포로 상태를 더 잘 보여 주는 사례는 찾기 힘들 것이다. 조엘 오스틴의 메시지는 그것이 어떤 신학을 조금이라도 반영하고 있다면, 펠라기우스주의의 자기계발과 영지주의의 자기 신성화가 접목된 형태를 보여 준다. 개신교 자유주의에서 나온 일종의 부드러운 도덕주의가 슐러를 통해 복음주의의 주 메뉴가 됐다면, 오스틴은 케니스 코플런드와 베니 힌의 “입으로 시인하고 믿음으로 얻으라”의 철학을 주류 의 반열에 올려놓는 의아한 성공을 거뒀다.

 

오스틴은 오늘날 미국 대중 종교를 특징짓는 도덕론적이고 심리 요법적인 이신론을 다소 덜 극단적인 형태로 다양하게 제시한다. 기본적으로 하나님은 당신과 당신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신다. 하나님에게는 어떤 법칙과 원리가 있어서, 당신이 인생에서 무엇인가를 꺼내려면 이것들을 사용해야 하고, 당신이 그것들을 준수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선언만 하라. 그러면 형통이 당신을 따라온다”. 하나님은 나를 위해 일하는 구매 대리인이다.

 

노골적으로 형통의 복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끼치는 영향력보다 수가 적을지 모르지만, 유명한 인사이며 베스트셀러 작가들 (제이크, 베니 힌, 조엘 오스틴 그리고 조이스 마이어)은 각별히 미국적인 입맛에 맞는 이교적인 세계관을 유포하는 공급업자들이다. 그 밑바닥에는 루터가 “영광의 신학”이라 한 사상이 깔려 있다. 하나님이 고난의 삶을 살고 난 우리에게 약속하신 영광을, 어떻게 하면 사다리를 기어올라 지금 여기서 얻을 수 있을까? 이 반대는 십자가의 신학이다. 엄청난 값을 지불하고 우리에게 내려오신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이야기이다. 바울에 의하면, 그리스 사람들에게는 거치고 어리석게 보이는 메시지다.

 

미국인들에게 이 “영광스러운 이야기”가 주는 매력은, 조엘 오스틴의 베스트 셀러인 『긍정의 힘』과 『잘 되는 나』에서 거둔 숨이 막힐 정도의 성공에서 여실히 입증된다. 친화력 있는 인품과 편안한 스타일을 넘어서, 오스틴이 보여 준 전대미문의 매력은 미국제 복음의 단순하고 부드러운 샘플과 연결되어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것은 기독교와 문화적 요소의 혼합물이다. 지금은 컴팩센터의 소유주며 휴스턴에 있는 레이크우드 교회의 그 목사가, 자가용 비행기와 요트를 타는 초상류충 복음 전도자이면서도 늘 멋진 말을 하는 옆집 아저씨같은 이미지를 우연히 지닌 것은 아니다. 오스틴의 가르침은 대부분의 대형 교회, 그리고 다른 구도자 중심의 사역과 구별하기가 힘든 용어들과 고급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전달되고 있다.

 

- 마이클 호튼,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 pp 93-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