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한경직목사

선택의 자유와 그 책임 (신명기30:15-20)

새벽지기1 2017. 12. 22. 06:55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신30:19)

이 말씀은 위대한 지도자 모세가 40년 동안 자기 백성을 광야를 통해서 인도한 후에 마지막 모압 평지까지 이르러 멀리 가나안 복지를 건너다보면서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그 백성들에게 부치는 마지막 전별의 일절이올시다.『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라.』사람에게는 이 선택의 자유가 있습니다. 사람이 이 자유가 있으므로 기계가 아니고 참으로 사람입니다. 또 이 자유가 있어야 노예가 아니요, 참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빵 한 조각에 모든 자유를 희생하지마는 사람일수록 자유가 아니면 차라리 죽음을 달라고 외치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인간의 매일의 생활은 선택으로 이루어집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무슨 옷을 입을까? 생각하는 선택을 의미합니다. 주부가 무슨 만찬을 만들까 하는 것도 선택을 의미합니다. 오늘 누구를 만날까, 무엇을 먼저 할까, 어디를 먼저 갈까,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매일매일 어떤 일을 당하든지 우리는 둘 가운데 하나 혹은 셋 가운데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학생생활도 역시 그렇습니다. 내가 어떤 학교에 갈까?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학교 같으면 어떤 과 에서 공부를 할까? 무슨 부분을 특별히 배울까? 어떤 취미를 가질까? 이런 모든 것도 선택을 의미합니다. 특별히 청년 시대에 있어서는 더 중대한 선택을 할 일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일생동안 어떤 방면에 헌신할까? 무슨 사업을 할까? 어느 곳에 내 생을 던질까? 또는 결혼 기가 되면 어떤 배우자와 결혼을 할까? 이런 모든 것은 일생에 크게 관계되는 중대한 선택들입니다. 이렇게 우리 매일의 생활과 일생은 항상 선택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선택의 자유는 결국 책임도 의미합니다. 어떤 것을 택하든지 그 결과가 반드시 따릅니다. 따라서 일생의 성공과 실패는 이 선택 여하에 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선택을 바로 하면 성공과 행복이 자연히 미치고 선택을 잘 못하면 실패와 불행이 반드시 따라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지금까지 지혜 있는 사람은 선택을 조심하고 지혜 있게 하는 것입니다. 미련한 사람은 선택을 경히 여기고 함부로 합니다.
지금도 모세 이야기를 하였지마는 모세는 다 장성한 뒤에 남다른 고민이 그 마음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바로의 궁전에서 공주의 아들로 호화롭게 자라고 공부하며 모든 애굽의 문화를 공부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차차 알고 보니 자기는 애굽 사람이 아니고 그 때에 애굽사람들에게 핍박을 받는 피압박 민족인 이스라엘 민족의 혈통을 가진 것을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내가 그냥 애굽 사람으로 이 궁전에 남아있을 것이냐? 그렇지 아니하면 아무리 압박을 받는 민족일지라도 나는 이스라엘의 형통을 가졌으니 이스라엘 사람으로 그들과 운명을 같이 하며 살 것이냐?』모세는 이 두 가지 갈림길 가운데 하나는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자기가 애굽 궁전에 그냥 남아 있으면 물론 호화로운 생활과 평화로운 생활을 할 것을 물론 알지만 그것을 내어 던지고 자기의 민족과 같이 고생과 희생을 택하기로 각오하고 그 형극(荊棘)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결국 이 중대한 선택이 모세로 하여금 오늘날 우리가 아는 역사적인 위대한 인물, 위대한 지도자 모세를 만든 것입니다.


그와 반면에 롯 같은 사람의 선택을 아시지요? 롯은 아브라함을 따라서 가나안까지 온 아브라함의 조카올시다. 가나안에 들어와서 삼촌 덕분에 하나님의 축복은 많이 받아서 가축이 많아졌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아브라함의 목자와 롯의 목자들이 서로 싸움을 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루는 롯을 청해 다가『혈육지간에 이렇게 싸움을 하면 안 되겠으니 우리 앞에 넓은 들도 있고 좋은 골짜기도 있지 아니하냐? 네가 우편으로 가기를 원하면 나는 좌편으로 가겠고, 네가 좌편으로 가기를 원하면 나는 우편으로 갈 터이니 마음대로 택해서 피차에 좀 멀리 우리 자막을 치도록 하자.』그 때에 롯이 눈을 들어보니 저 동남 편으로 소돔과 고모라 뜰에 푸른 풀이 우거졌는데 가축을 먹이기에 매우 좋아 보였습니다. 푸른 풀만 보고 얼른 대답하는 말이『예, 저는 저 소돔과 고모라 성으로 가겠습니다.』순전히 풀만 보고,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이 얼마나 악한지 그런 것은 염두에 두지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갔습니다. 갔더니 오래지 아니해서 큰 전쟁이 일어나서 여러 왕들이 소돔과 고모라를 습격해서 많은 재산과 왕들과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가는데 롯과 그 가족도 전부 다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아브라함의 군대가 가서 겨우 빼앗아 왔습니다. 그러나 그뿐입니까?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이 전혀 회개하지 아니하고 그 악의 양이 차서 마지막에는 하나님께서 유황불로써 멸망시킬 때에 간신히 자기 생명을 구하고 달아나려고 했지만 자기 아내는 그만 희생되고 말았습니다. 푸른 풀만 바라보고 선택한 결과는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선택의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선택의 자유는 그 책임과 결과를 또한 의미한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전에 솔로몬이 젊어서 왕이 된 후에 하나님께서 하루 밤은 꿈에 나타나서 이렇게 물어 보았다고 합니다.『솔로몬아,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장수의 축복이냐, 부귀의 축복이냐?』솔로몬이 곧 대답하는 말이『오! 하나님 나는 장수도 원하지 아니하고 부귀도 원하지 아니합니다. 내가 이렇게 많은 백성을 어린 몸으로서 다스릴 수밖에 없는 저에게 지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하나님께서 그 대답하는 것을 가상히 여기셔서『내가 네게 지혜의 축복을 줄뿐더러 장수와 부귀의 축복도 더하여 주리라.』솔로몬은 지혜를 택했습니다.
그러나 에서 같은 사람은 어떻게 택했는지 아시지요? 에서는 사냥을 좋아합니다. 사냥 가서 종일 산으로 뛰어 다니다가 날이 저물어 갈 때에 집에 돌아오니 피곤하고 배는 고픕니다. 마침 뜰에서 자기 동생 야곱이 가마에다가 붉은 팥죽을 김이 무럭무럭 나게 쑤는데 먹음직합니다. 그래서 시장한 김에『얘, 야곱아, 그 붉은 것이 무엇이지 얼른 나에게 한 그릇 가져 오라.』그러니까 이 깜찍한 야곱이 대답하는 말이,『이거 형님께 올리기는 올리겠는데 형님 나하고 약조합시다. 그 장자의 명분을 저에게 주겠으면 이거 한 그릇 드리겠습니다.』장자의 명분과 팥죽 한 그릇, 그 둘 가운데 하나를 택할 서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에서가 어느 것을 택했는지 다 아시지요?『굶어 죽게 되었는데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슨 상관이냐? 어서 그 붉은 것 한 그릇 갖고 와.』팥죽 한 그릇을 택했습니다. 그저 에서는 그 후에 그런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기 구약에 여자에 대한 책이 둘 있는데 하나는 룻이요, 하나는 에스더입니다. 룻기을 읽어 본 사람은 다 잘 기억합니다. 나오미라고 하는 이스라엘 여자가 남편과 두 아들을 데리고 멀리 모압 땅에 살려 갔습니다. 거기 가서 처음 몇 해는 잘 살았습니다. 그만 큰 불행을 만나서 남편이 모압 땅에서 돌아가고 두 아들이 차례차례 다 돌아가고 마지막에는 며느리 둘만 남았습니다. 이렇게 외롭게 된 나오미가『이제 나이 많아서 외국에 있어 무엇하랴. 고국에 돌아가서 내 백골이나 묻히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베들레헴으로 발길을 향합니다.
그 때에 자부가 모압 여자 둘인데 같이 따라옵니다.『어떻게 어머니 혼자 갈 수 있습니까? 우리도 같이 베들레헴까지 가겠습니다.』그러나 나오미는 열심히 말립니다.『너희들이 나를 따라와서 무슨 소용이 잇느냐? 어서 돌아가라.』그럴 때에 며느리 하나는 크게 통곡을 하고 돌아섰습니다. 그러나 룻은 끝까지 고부의 의리를 생각해서 외로운 손으로 고국에 돌아가는 그 어머니를 차마 홀로 보낼 수 없어서 끝까지 따라 갔습니다. 룻은 고부의 의리를 택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어떻게 룻을 축복했는지 우리는 룻기를 통해서 잘 압니다.


룻은 이와 같은 의리를 지켰는데 예수님의 열 두 제자 가운데 가룟 유다 같은 사람은 여러분도 기억하시지요? 유다 는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택함을 받았을 뿐더러 3년 동아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면서 그 슬하에 교훈을 받은 사람이올시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30냥쭝이냐, 예수그리스도를 팔 것이냐? 이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사제의 의리, 모든 교육을 받은 그것을 다 내버리고 은 30 냥을 택했습니다. 그 결과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유다 는 그저 갈 곳으로 갔습니다. 선택의 자유가 귀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 자유를 찾기를 애씁니다.
그렇지마는 선택의 자유는 책임을 의미합니다. 결과를 의미합니다. 바로 선택할 때에 참된 행복과 참된 생명이 있지마는 우리가 미련하게 잘못 선택하면 불행과 저주를 내가 스스로 자취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우리가 조심해서 이 선택의 자유를 바로 사용해야 될 것입니다.


이번 주간은 특별히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 대한민국 국민 된 사람은 누구나 다 이 중대한 국가적인 문제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을 당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선택해서 국회에 보내느냐? 그 택하는 권리가 다 우리에게 부여되었습니다. 우리가 그 선택의 자유를 다 사용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참의원과 민의원이 바로 구성되느냐, 못 되느냐에 따라서 정부가 바른 사람들로서 조직이 되느냐, 못 되느냐가 결정됩니다. 결국 우리 국민들이 이 선택의 자유를 바로 써서 바른 사람을 선택하느냐, 못 하느냐? 여기에 있습니다.
들어보는 대로 이번에는 억지로 투표하게 할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자유로운 투표가 될 줄 생각합니다. 이번 선거가 잘 되고 잘못 되는 것은 오직 다른 사람을 원망할 것 없고 우리 국민 각자가 책임을 지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묻기를 어떤 사람에게 표를 써야 되겠습니까? 이렇게 사사로이 묻는 사람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러나 물은 것은 없습니다. 각각 자기가 다 살펴서 자기 하나 하나가 국민 된 자격을 꼭 가지고 그 의무를 잘 택해야 될 것입니다. 물론 이와 같은 행사를 할 때에는 적어도 누구든지 우리 대한민국의 국회 의원이 될 사람은 어떤 자격이 있는 사람이어야 되겠다는 그런 마음의 표준은 우리가 다 정해야 할 것입니다.


가령 이번 국회에는 우리가 보내서는 안 될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4·19혁명 전신에 어긋나는 사람들을 우리가 다시 국회에 보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간다면 4·19의 고귀한 학생들의 피가 헛된 데로 돌아갑니다. 또 보세요. 우리 대한민국 국회에 사상적 배경이 미 분명한 사람, 조금이라도 좌익의 혐의를 받을 수 있는 사람, 그 정체를 잘 모를 사람, 이런 사람들을 국회에 보내서는 절대로 안 될 것입니다. 왜 그런고 하니 이런 때야말로 북한 공산당들은 오열을 애국자의 탈을 쓰고 우리 국회에 내보내기 위하여 갖은 수단을 다 쓸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이것은 분명히 경계해야 됩니다.
또 보세요. 신문에서 보니까 우리 서울에서도 어떤 여성들이 데모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 사생활이 부정해서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축첩 하는 사람, 술고래, 이런 사람들을 우리가 국회에 보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 그 사업이 부정해서 투기적 사업, 협잡 성 있는 사업, 또 술장사 혹은 양조장을 직접 경영하든지 돈을 대주어서 경영하는 사업을 해서 돈을 모으는 그런 사람들을 국회에 보내서는 도저히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먼저 번 민의원 가운데는 양조장 주인들이 상당히 많이 계셨답니다. 정신 차려서 우리가 꼭 선거를 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을 우리가 보내야 되겠느냐? 제가 말씀 안 드려도 여러분께서 다 아실 줄 압니다. 우선 사상이 건전한 사람, 애국심이 있고 민주주의 사상이 철저한 그런 사람, 올바른 양심적 인물을 우리가 택하도록 힘써야 되겠습니다. 또 고상한 인격과 가 사생활이 정결한 지의 여부를 알아서 깨끗한 사람들을 우리가 골라서 보내야 될 것입니다. 또한 그 사업도 정당하고 우리 국민 경제를 위해서 정당한 사업을 하는 그런 이들을 우리가 살펴보아서 보내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물론 정견 발표 때나 그 선전하는 말만 들어보고는 우리가 비판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런고 하니 누구나 선거 운동할 때에는 국회의원이 되면 잘 하겠다고 그러지, 잘못하겠다고 할 사람이 하나나 있겠습니까? 다 잘 한다고 그럽니다. 결국은 사람은 지내보아야 압니다. 과거에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했는가? 과거에 사실 그 사람이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어떠한 공헌을 하였느냐? 그런 것을 우리가 살펴서 택해야 할 것입니다.
또 아무리 좋은 사람이지마는 무능하면 국회의원 될 자격이 없습니다. 무능한 사람은 국가의 일에 관여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유능하고 어떤 방면에 전문적 지식이 있어서 국가 살림살이에 일부 면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그와 같은 사람을 우리가 국회에 보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한 마디 더 한다고 하면 국외적으로는 세계 국제 정세를 바로 살필 줄 알고 국내적으로는 세궁민(細窮民)의 경지를 친히 알아주는 분을 골라야 될 것입니다. 지금 세계는 한 집안입니다. 국제 정세 여하에 의지해서 어떤 나라든지 동요를 받습니다. 국제 정세를 바로 살필 줄 아는 사람이어야 될 것입니다. 또 한국 내적으로는 우리 국민 가운데 가장 불행한 이들, 가장 가난한 이들, 고아, 미망인들, 피난민들, 농민들, 노동자들, 가장 불우한 환경 가운데 있는 이들을 얼마나 도와줄 수 잇느냐? 그들에 대해서 얼마나 대변자가 되겠느냐? 그들을 위해서 얼마나 봉사할 수 있겠느냐? 이런 국민들을 우리가 보내야 될 것입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이번에도 참의원이나 민의원은 다 신사 숙녀들이 피택(被擇) 받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신문을 보면 국회에서 의논하다가 의견이 좀 다르면 옷을 벗고 서로 목덜미를 잡고 싸움을 하니 국제적 체면을 보아서 이런 깡패 소질이 있는 사람들은 한 사람도 국회에 안 보내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다 우리 국민들이 잘못 선택하는 까닭으로 이런 사람들이 국회에 들어가 앉게 됩니다. 민족적 체면을 보아서도 신사 숙녀들을 우리가 골라 보내야 할 것입니다.
이번 선택은 우선 여기 앉은 우리부터 잘 살펴 바로 택해서 이번 참의원과 민의원이 선출되어 좋은 사람들로서 정부가 조직되어서 우리 제2공화국이 새 나라로 잘 발족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 참의원과 민의원 선거보다 더 중요한 선택을 제가 마지막으로 꼭 한 마디 더 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모세의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 백성을 거느리고 요단을 건너서 가나안 7족을 멸하고 온 가나안 복지 점령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지도자 여호수아가 세겜 이라고 하는 유서 깊은 곳에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들, 지도자들을 불러다 놓고서 마지막으로 한 말이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오늘 너희들이 너희들의 섬길 자를 택하여라. 너희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겠느냐? 그렇지 아니하면 가나안 땅에 들어왔으니 이 땅에 있던 여러 가지 우상과 여러 가지 잡신을 섬기겠느냐? 나와 내 가족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겠노라.』분명히 선언했습니다.


우리가 나와 내 가정이 일생을 통해서 섬길 자를 선택해야 하겠습니다. 엘리야가 똑같은 말로 권면 했습니다. 그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멜 산상에 모아 놓고서 그들에게 하는 말이『너희가 언제까지나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하겠느냐? 만일 여호와가 참 하나님이면 그를 섬길 것이요, 바알이 참 신이면 바알을 섬길 것이 아니냐? 둘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 이 세상에 이 것 저것 많지마는 제일 중요한 것은 이 때에 섬길 자를 택하는 것입니다.
바알이나 가나안 신이란 세상에 붙은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에 붙은 욕심, 허영, 불의 한 권세, 불의한 돈, 이 세상 적인, 육체적인, 정욕 적인, 이런 데에 속하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네가 과연 살아 계신 하나님을 네 일대에 섬길 자로 택하고 그를 섬기겠느냐?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이 세상 길을 가는 동안에 세상의 이 모든 잡신들을 섬기겠느냐? 섬길 자를 택하라!』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이 섬길 자를 온전히 택했습니까? 금생(今生)과 내생의 우리의 심령을 의탁할 수 있는 섬길 자를 우리는 택했습니까? 여러분도 택하고 여러분의 가정에서도 택했습니까? 오늘 우리가 이 선택만 분명히 해서 어떤 환경에서든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만 구하게 되면, 자연히 작은 선택들은 여기에 따라 갑니다. 자연히 모든 선택이 바로 됩니다.『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라.』
(1960년 7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