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마이클호튼

개인의 필요와 행복과 체험이 진리가 되고 있다 / 마이클 호튼

새벽지기1 2017. 12. 13. 06:48


과거에 설교들은 죄와 은혜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이제 설교들은 종종 중독, 회복, 느껴지는 필요들 및 여타의 심리학적 범주들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예일 대학교의 신학부 교수인 조지 린드베크(George Lindbeck)는 “노먼 빈센트 필(Norman Vincent Peale}의 시절에는 성경을 우롱하기 위해 자유주의적인 청중이 필요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로버트 슐러의 경우가 시사하고 있다시피, 자칭 보수주의자들이 성경을 말아먹고 있다”고 쓰고 있다. 실제로, 슐러는 죄에 대한 전통적 이해는 “인간존재에 대한 모욕”이기 때문에 반드시 지워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종교개혁의 신학은 죄의 핵심이 자긍심의 결여라는 점을 명확히 하지 못했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문제는 더 이상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죄인들"이 아니라 “어떻게 내가 행복할 수 있는가?”이다.

 

종교의 최대의 이슈는 더 이상 “어떻게 내가 거룩하신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내가 내 자신을 받아 들일 수 있는가?"이다. 슐러에게 있어서 지옥은 "자존심의 상실(the Ioss of pride)"이다. 지옥은 전혀 수직적인(즉 하나님을 향하는) 차원이 아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 영혼의 자존심의 궁극적이며 확실한 원천”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떤 목적을 이루시겠지만 말이다. 제임스 헌터는 복음주의가 “역사적으로 전례 없는 수준으로까지” 자아에 대한 세속적 개념들을 취하고 있으며, “인간 본성의 의미가 이런 식으로 변질되어서, 전통적 개신교의 하부 구조가 침식될 정도”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제임스 헌터는 오늘날의 복음주의자들이 그들의 신학에 대해서 무지할 뿐만 아니라 아예 신학 자체에 대해 의심스러워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면에서는 성경에 대한 고상한 견해들을 팔아먹고 있지만, 보수적 크리스천들은 교회에 나가지 않고 떠도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 사람이 비록 개별적이기는 하지만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만 활발히 유지하고 있다면, 교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은 아마도 ‘약발이 먹히고’ 혹은 ‘느낌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그 진리를 뒷받침해 주는 어떤 개인적인 체험에 근거해서

자기들의 신앙을 변호하려고 할 것이다.

루프(Roof)가 지적하고 있다시피, 크리스천들을 비롯해서, 현대인들은

“다른 이유가 아닌 그 체험의 ‘내재성’(inwardness)과 ‘내부성’(within-ness) 때문에,

직접적인 체험이 언제나 더 신뢰할 만하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내재성과 내부성이라는 “이 두 가지 속성은 지극히 자기 표현적이며 자기 연민에 빠진 문화에서 크게 인정을 받게 되었다" ‘간증’ (예수님이 내게 해 준 일)과 개인적인 체험들은 흔히 오늘날 복음주의 진영 가운데서 진리에 대한 가장 권위적인 텍스트가 되고 있다. 만약 무엇인가를 체험했다면, 그것이 진리가 된다. 이것 역시도 세속적 정신에 대한 승복이다. 왜냐하면 권위의 자리를 자아 가운데 어느 곳엔가 두고 있기 때문이다.

 

- 마이클 호튼, 『세상의 포로된 교회』, pp 85-87

(청교도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