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마이클호튼

개혁주의 기독교 세계관 - 1장 / 마이클 호튼

새벽지기1 2017. 5. 24. 14:22


요즘은 뭐든지 극단을 좋아하는 시대이다. 첨단과학의 끝이 어딘지 모를 만큼 비대한 발전을 하고 있기도 하지만 한쪽에서는 자연과 합일되기 위해 심호흡을 하고 뇌호흡을 하며 동양신비사상에 심취하기도 한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인간으로서는 어찌할 바 없는 모습이기에 안타깝기 그지없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기독교 내에도 동일한 양극단이 펼쳐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본서의 1장에서 이러한 현재의 틀을 제시하며 기독교 세계관의 진정한 균형이 무엇인지 역설하고 있다. 모든 것을 신비적인 영적 흐름으로만 생각하여 영적 전쟁이나 영적 도해 등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하는, 역사적으로는 중세미술을 표현한 그리스도인들-“중세 시대 회화의 경우에는 주제가 언제나 종교적인 성격을 띠었다. 중세 회화는 심지어 현세적인 주제를 묘사할 때도 종교적인 주제를 어느 정도 정당화해야 한다는 식으로 성경의 인물이나 이미지를 덧붙였다”(p. 28)-이 있는가 하면, 실천과 해방을 통해 사회를 기독교와 교회의 이름으로 개혁하려 하는 그리스도인들-“우리는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루었다고 설명하는 활동을 이처럼 자신의 열정적인 활동과 야심찬 기업적 계획을 가장 혁신적이고 대규모로 전개하는 운동을 통해 성취한 것처럼 떠벌리기도 한다”(p. 25)-도 있다.

저자는 이에 대해 균형의 관점을 제시한다기 보다 옳은 관점을 제시한다. 특별히 종교개혁 때의 신앙의 선배들을 제시한며 루터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예배 안에서 말씀을 방해하고 창조 질서를 방해하는 예술을 금하고 싶어 했음을 거듭 보게 된다. 루터는 말씀보다 우선하도록 허용하지 않는 한도 안에서 미술과 음악이 예배에 유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p. 32-

올바른 관점을 견지한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은 종교적 실재와 비종교적 실재를 서로 혼동하지 않은 상태에서 양자 사이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 그렇다면 올바른 관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기준이 되는 성경(특별계시)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자연(일반계시)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모범적인 사례로 네덜란드의 신학자이자 수상이었던 아브라함 카이퍼를 들고 있다.

온 세상을 주관하시는 그리스도가 내 것이다!’라고 선포하시지 않는 부분은

 우리 인생의 전 영역에서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모범적 사례이긴 했지만 저자는 카이퍼에 대한 비판 또한 숨기지 않는다. 이는 바빙크와 스킬더에 의해 먼저 밝혀진 것으로서 개혁주의 세계관, 특히 카이퍼의 이론을 공부함으로 반드시 알아야 하는 주의점이다. 1장은 전체적인 개론이기에 머릿속에 뼈대를 세우는 것으로만 만족하면 될 것 같다. 2장부터는 카이퍼의 영역주권을 가지고 논지를 전개해 나가게 된다. 많이 기대된다. .


<더 필요한 논의>

먼저 밝혀둘 것은 마이클 호튼의 글이 너무 어렵게 쓰여졌다는 것입니다.

물론 번역이 어렵게 된 것일 수도 있고요..

호튼은 너무나 많고 깊은 전제를 깔고 논의를 진행하기에

정통신학에 익숙치 않은 우리가 받아들이기에 한계가 있기 마련임을 밝혀 둡니다.

저도 많이 부족하기에...쓴 글이 읽는 여러분께 잘 이해가 될 지..의문입니다.

일단 극단의 두 명을 예로 드는 것이 맞을 듯 합니다.

첫째로 논의의 대상이 된 아브라함 카이퍼입니다. 여기서는 논지를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 카이퍼는 '일반은총'을 대중화시킨 인물입니다.

 카이퍼는 하나님이 일반은총을 통해 피조세계를 유지하지 않는다면 세계는 공허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만일 일반은총이 없다면 세상은 산산조각날 것이라고 본 것이죠.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와 뜻은 일반은총을 통해서만 성취된다는 전제에 서 있습니다.

 이것은 언뜻 보면 문제가 없는 듯 하나, 일반은총을 너무나 사변적으로 풀이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세계관을 공부할 때 알게 된 것처럼 작은 것에서 시작하여 대단한 결실(?)을 맺게 됩니다. 물론 카이퍼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요....예를 들어 이런 것이지요.

 "문학은 문학으로 봐야 한다. 성경적으로 해석하지 마라. 그들도 하나님께 일반은총을 받은 자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은 문학으로만, 시는 시로만, 음악은 음악으로만 보고 성경적 잣대는 들이대지 마라~"

어디서 많이 본 듯 하지요? 요즘 대세이지요.... 다시 한 번 언급하지만 카이퍼가 의도한 것은 아닙니다. 카이퍼는 위대한 개혁주의 신학자입니다. 다만 이것을 잘못 사용한 후배 신앙인들의 잘못이지요. 호튼이 책에서 밝혔듯이 미국의 일부 단체들은 이를 매력적으로 받아 들입니다.

왜냐하면 불신자들에게 거부감없이 다가갈 수 있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지요.  

여튼 일반은총에 대한 연구서와 논문을 쓸 당시의 카이퍼는 상당히 바뻤다고 하더군요. 정신도 없었고...그래서 일반은총에 대한 카이퍼의 주장은 성경적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 사변적입니다.

둘째, 카이퍼는 구속과 창조의 구분을 확실히 하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은 좀 조심스럽습니다. 저도 충분히 공부한 부분이 아니라서....

일단 책에 언급이 되었으니 저도 조심스레 이야기 해 봅니다.

우리가 세계관에서 '창조, 타락, 구속'이라고 말하는 부분은 자칫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부분입니다. '구속' '창조'와는 전혀 다른 것, '창조 이상의 것'이며 '오직 그리스도로만 이루어질 수 있는 부분'이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구속'에 대해 아무런 거리낌없이 언급하곤 합니다.

엄연히 말하면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단어는 '구속'이 아닌, '회복'입니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카이퍼가 의도한 것은 아닙니다. 후세대를 위해 정확히 구분을 해 줬어야 하는 부분이지요. 이에서 나온 결과의 예는 이렇습니다.

호튼이 밝힌 바와 같이 기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사회운동이나 사회개혁(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 사회의 '구속'이 될 것이라는 턱없는 믿음이 생겨난 것이지요. 구속과 구원은 절대로 단체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지요. 하나님 앞에서 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논의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스킬더입니다.

이분은 카이퍼와 완전히 반대로 이야기한 사람인데요. ....솔직히 이분까지는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좀...쓰기 어렵고....

간단히 이야기해서 인간의 '전적타락' '완전타락'을 오해한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은총'에 대한 개념자체를 부인한 분이지요.

결론적으로 가장 균형을 잘 맞춘 사람은, 개인적으로 두분 계십니다. 따로 공부하실 분들은 공부해 보시길 권합니다.

 

첫째는 그 위대한 '칼빈'입니다.

둘째는 '프랜시스 쉐퍼'입니다.

칼빈은 신학에 대한 탄탄한 기초를, 쉐퍼는 탄탄한 신학을 어떻게 세계관에 적용해야 하는 지를 알려 주기에..

참고로 우리나라의 고 이근삼 박사님이 '칼빈과 칼빈주의'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남기셨더군요.

"언약의 자녀들의 교육은 그 신앙의 가정에서 또한 가정을 확대한 것으로서의 기독교학교에서 행해져야 한다. 그곳은 학문과 에술의 탐구와 창조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진리에 기초해서 이루어지는 기독교교육과 학문의 장소이다. 칼빈주의 교육관의 확립과 실천은 다음 세대를 위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의 중대한 과제 중 하나이다." -p.234- 

..위로가 되는 부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