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하용조목사

높임을 받는 모르드개

새벽지기1 2017. 11. 14. 07:08


하만은 자신에게 절하지 않은 대궐 문지기 모르드개를 포함해 바사 제국에 있던 모든 유대인들을 몰살하려는 계획을 진행시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혀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사건을 무위로 돌리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왕후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고 각오하고 왕 앞에 나아갔다가 뜻밖에 왕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동족을 구원할 계획을 진행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돌보시고 일사(一死) 각오로 나아오는 성도들의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우리는 에스더서를 통해 하나님께서 한 민족의 위기, 한 개인의 위기를 어떻게 돌보시고 지키시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고통 중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멀리 계시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아마 하나님의 때가 우리에게 있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임하시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관자시고 그분의 뜻이 신실하시며 우리를 통해 영광 받기 원하신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자기 자녀를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

 

본문 말씀은 에스더서 2장과 6장으로 나뉘어 있지만, 모르드개가 어떻게 높임을 받게 되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르드개가 높임 받는 사건을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신실하셔서 그분의 백성들을 잊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먼저 2장 21~23절 말씀입니다.“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았을 때에 문 지킨 왕의 내시 빅단과 데레스 두 사람이 아하수에로 왕을 원한하여 모살하려 하거늘 모르드개가 알고 왕후 에스더에게 고하니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이름으로 왕에게 고한지라 사실하여 실정을 얻었으므로 두 사람을 나무에 달고 그 일을 왕의 앞에서 궁중 일기에 기록하니라.” 왕의 내시 빅단과 데레스가 모의하여 아하수에로 왕을 모살하려다가 모르드개에게 발각되는 바람에 왕을 위기에서 구해냅니다. 두 내시는 왕을 알현하려는 사람들을 왕 앞으로 인도하는 중요한 직책을 맡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알 수 없지만 왕을 모살하려 했습니다. 모르드개가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그 사실을 왕후 에스더에게 알려 왕을 위기에서 구해냅니다. 


사람들은 모르드개가 음모 사건의 전말을 알아낸 경위에 대해 여러 가지로 추측합니다. 우연히 엿들었다는 주장, 모르드개도 공모자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두 내시의 종 중에 바나바라는 유대인이 있었는데 그가 모르드개에게 발설했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모르드개는 왕의 모살 계획을 알고 재빨리 처신해 왕을 위기에서 건져냅니다. 성경은 그 사실을 궁중 일기에 기록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역사적 중대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데, 크게 공을 세운 모르드개에 대한 상급이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이 사건은 6장에서 아주 중요하게 전개되어 모르드개가 높임 받을 뿐 아니라 유대인들을 구원하는 계기가 됩니다. 본문 말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르드개가 왕을 모살 계획에서 구해낸 때는 하만이 유대인들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기 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인 유대인들을 구원하시려고 하만보다 몇 단계 앞서 행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신실하시고 자기 백성을 잊지 않으시며 모든 것들을 미리 알고 계십니다. 히브리서 6장 10절에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모르드개가 공을 세웠지만 아무 상급도 받지 못하고 끝나는 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이 뒤로 잠깐 감춘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역경이 있습니다. 고통의 긴 밤을 보내게 될 때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 것 같지만, 그분께서 우리를 기억하시고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사도행전 27장 24절 말씀에서 바울은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죄수의 신분이 되어 배를 타고 로마로 가던 중에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 죽기 직전에 이르게 됩니다.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 떨고 있을 때 천사가 바울에 나타나 말했습니다.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나님께서 광풍과 흑암 중에 있는 바울을 잊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바울에게 하나님의 계획을 알려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전능의 손길을 잠깐 감추실 수 있지만, 그 손길을 내밀어야 할 때를 절대 놓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들어있는 인생  

 

둘째, 우리의 삶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6장 1~4절 말씀을 읽습니다. “이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명하여 역대 일기를 가져다가 자기 앞에서 읽히더니 그 속에 기록하기를 문 지킨 왕의 두 내시 빅다나와 데레스가 아하수에로 왕을 모살하려 하는 것을 모르드개가 고발하였다 하였는지라 왕이 가로되 이 일을 인하여 무슨 존귀와 관작을 모르드개에게 베풀었느냐 시신이 대답하되 아무 것도 베풀지 아니 하였나이다 왕이 가로되 누가 뜰에 있느냐 마침 하만이 자기가 세운 나무에 모르드개 달기를 왕께 구하고자 하여 왕궁 바깥 뜰에 이른지라.” 하만은 모든 유대인들을 몰살하려는 계획을 세웠고 이미 조서에 왕의 도장까지 받아둔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바사 제국의 수산성 안은 발칵 뒤집혔습니다. 온 유대인들이 베옷을 입고 금식에 들어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만은 자신에게 절하지 않은 모르드개를 높이 23m가량의 장대에 매달 것을 왕에게 간청하려고 새벽에 대궐로 들어온 것입니다.


그 전날 밤에 아하수에로 왕은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가 신하를 시켜 역대 일기를 읽게 했습니다. 그런데 신하가 읽은 부분이 바로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을 음모에서 구한 내용입니다. 유대인들의 전승에 따르면, 그 신하가 다른 부분을 읽으려고 해도 자꾸 바람이 불어와 그 부분이 펼쳐졌다고 합니다. 아무튼 아하수에로 왕은 모르드개가 공을 세웠지만 아무런 상도 내려지지 않았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왕은 모르드개에게 상을 내리려고 신하를 불렀고 마침 하만이 바깥 뜰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아하수에로 왕이 밤에 잠이 오지 않은 것, 역대 일기에서 모르드개가 공을 세운 부분을 읽은 것, 왕이 상을 주려고 신하를 찾았는데 마침 하만이 도착해 있었던 것 등이 우연히 일어난 일이라고 보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우연히 개입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중에 이뤄진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잊혀진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정확한 계획에 포함된 존재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스데반 집사는 예루살렘교회의 일곱 집사들 중에 가장 뛰어나고 탁월한 설교가였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때 그의 성경 지식에 능히 대항할 사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 무참히 죽음을 당하는 슬픈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예루살렘교회는 사단의 공격을 받아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데반 집사의 순교로 인해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땅 끝까지 뻗어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방 선교의 전초 기지가 되는 안디옥교회가 세워지는 계기가 됩니다. 특별히 사도 바울이라는 탁월한 전도자를 얻게 되는 동기가 됩니다. 스데반 집사의 순교는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그 사건은 사단의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에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 대한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모든 일들은 아무 의미 없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정확한 계획과 인도의 결과입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인 것입니다. 마치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겁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높임을 받는다   

 

셋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높임을 받는 것입니다.

6~9절 말씀을 읽습니다. “하만이 들어오거늘 왕이 묻되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뇨 하만이 심중에 이르되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시는 자는 나 외에 누구리요 하고 왕께 아뢰되 왕께서 사람을 존귀케 하시려면 왕의 입으시는 왕복과 왕의 타시는 말과 머리에 쓰시는 왕관을 취하고 그 왕복과 말을 왕의 방백 중 가장 존귀한 자의 손에 붙여서 왕이 존귀케 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서 성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여 이르기를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게 하소서.” 아하수에로 왕은 모르드개에게 상을 내리기 위해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해야겠느냐고 하만에게 묻습니다. 왕이 특별 대우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그에게 어떻게 해 줘야 하느냐는 겁니다. 여기서 하만은 두 가지 실수를 합니다. 하나는 자신을 과대 평가한 것입니다. 왕이 특별 대우할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고 착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싫어하십니다. 


저는 지난 번에 미국 알래스카 주 앵커리지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에 비전 교회가 세워지는데 그 교회의 목사님이 한국에 오시고, 6월 말에 허원희 목사님이 그 교회로 파송됩니다. 저는 허 목사님과 함께 앵커리지로 가서 온누리비전교회임을 선포하고 성도님들에게 허 목사님을 소개했습니다. 그 교회의 장로님 부부와 식사를 하는데 권사님이 허 목사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셨습니다. 그러다 가족 사진이 있느냐고 묻자, 마침 허 목사님이 지갑을 갖고 오시지 않아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저는 가족 사진을 갖고 있어서 권사님이 물어보시면 얼른 보여드리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갑자기 화제를 바꾸시는 겁니다. 그때 ‘아, 내가 주인공이 아니구나’하고 깨달았습니다. 하만이 저와 같은 상황입니다. 또 하나는 하만이 지나치게 요구한 것입니다. 하만이 대답한 내용은 거의 왕의 행차 수준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십니다. 10, 11절 말씀입니다.

 

상황을 역전시키시는 하나님

 

“이에 왕이 하만에게 이르되 너는 네 말대로 속히 왕복과 말을 취하여 대궐 문에 앉은 유다 사람 모르드개에게 행하되 무릇 네가 말한 것에서 조금도 빠짐이 없이 하라 하만이 왕복과 말을 취하여 모르드개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 성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되 왕이 존귀케 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니라.” 하나님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높이시고 복을 주십니다. 하만은 모르드개를 높은 장대에 매달아 죽이려고 하는 서로 원수지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상황을 역전시켜 하만이 모르드개를 높이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하만은 모르드개에게 왕복을 입히고 자신이 타려 했던 왕의 말에 모르드개를 앉혀서 성중 거리로 다니며 “왕이 존귀케 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게 이같이 할 것이라”고 외칩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원수, 마귀에게 공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그 공격을 무력화시키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그들의 눈앞에 홍해가 가로 막고 있었고, 뒤에선 바로의 군사들이 추격해 오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우왕좌왕하고, 바로는 승리를 자신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사히 홍해를 건넜습니다. 뒤따라 바로의 군대들이 도착했을 때 홍해는 다시 합쳐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전시킨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실 때 사단은 좋아서 춤을 추었습니다. 온 세상은 하나님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다고 기뻐했습니다. 손과 발에 못을 박고 가시 면류관을 씌우며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을 때 그들은 소리치며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3일이 지나고 하나님께서 역전시켰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단이 갖고 있던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셔서 새 생명의 첫 열매가 되신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8, 9절 말씀에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만이 모르드개를 장대에 매달아 죽이려 했지만 도리어 모르드개를 높이는 역할을 했던 것처럼,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믿음을 지킨 성도들을 높이실 것입니다. 믿는 자들을 핍박한 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세상에 유일하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넷째, 하나님께서 인간의 유일한 구원자라는 것입니다. 12~14절 말씀을 읽겠습니다.“모르드개는 다시 대궐 문으로 돌아오고 하만은 번뇌하여 머리를 싸고 급히 집으로 돌아와서 자기의 당한 모든 일을 그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에게 고하매 그 중 지혜로운 자와 그 아내 세레스가 가로되 모르드개가 과연 유다 족속이면 당신이 그 앞에서 굴욕을 당하기 시작하였으니 능히 저를 이기지 못하고 분명히 그 앞에 엎드러지리이다 아직 말이 그치지 아니하여서 왕의 내시들이 이르러 하만을 데리고 에스더의 베푼 잔치에 빨리 나아가니라.” 모르드개는 높임을 받았지만 교만하거나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는 다시 대궐 문으로 돌아와 자신의 업무에 충실합니다. 우리는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는 말씀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교만할 때 위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모르드개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지만, 하만은 번뇌하여 머리를 싸들고 급히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아내와 친구들에게 자신이 당한 일을 일러줍니다. 하만은 위로 받고 싶었지만, 아내와 친구는 위로는커녕 오히려 두 가지를 말해 줍니다. 유대인 몰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갈 것과 하만도 멸망할 것을 일러줍니다. 이 예언은 곧 적중합니다.  


세상은 우리를 위로해 주지 않고 위로해 줄 수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위로 받을 길은 없습니다. 사단은 미래에 대해 말할 수 있지만 구원의 길을 제시하지 못합니다. 진리와 생명은 없고 오로지 파멸만 있을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만의 아내와 친구는 미래를 말할 수 있지만 구원의 길을 말하지 못합니다. 실상 세상은 우리에게 마음만 어지럽게 하고 힘들게 할 뿐입니다. 구원과 소망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주님께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말씀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일들을 진행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계획하셨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습니까? 모르드개와 같은 일을 당해 본 적이 있습니까? 이해하기 어려운 죽음이 있고 고난이 있으며, 눈물 골짜기를 지나고 있습니까? 또 자녀와 가정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신실하셔서 사랑하는 백성들을 잊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삶은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에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높임을 받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유일하신 구원자입니다. 인간에게 유일한 소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갑시다. 항상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 

 

기도합시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 앞에 이해하기 힘든 죽음이 있고 고난이 있을 때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사랑하는 자녀들을 잊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로 기억하게 하소서.

눈물 골짜기를 지나갈 때,걱정과 근심과 공포에 휩싸일 때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계획에 있음을 기억하게 하소서.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가 하나님이심을 기억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