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하용조목사

내 곁에서 강건케 하시는 주님

새벽지기1 2017. 9. 25. 06:57


죽음을 앞둔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목회하고 있는 디모데와 성도들에게 유언과 같은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긴 복음에 대한 소명, 책임, 열정을 기록하면서 그 복음 전파를 엄히 명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의 선천적 연약함에 대해서도 격려하고, 극도로 간교한 마귀에 대해서도 주의하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규칙대로 경기하는 자로, 수고하는 농부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을 받는 그릇이 될 것도 권면했습니다.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부르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을 경계하면서 그리스도를 위해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며 믿음을 지켜 의의 면류관을 받을 것도 권고했습니다. 


디모데후서 전체를 자세히 살펴보면, 네 가지 주제를 말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복음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귀한 보물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복음을 위해 고난 받기를 감수하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믿음을 가진 자들을 핍박과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상황에서도 복음을 위해 참고 이겨내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복음 안에 거하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생명의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넷째는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 전파에 힘쓰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를 끝맺으면서 에베소에 있는 디모데와 성도들에게 다시 한 번 도전합니다. 자신에게 영광된 미래가 준비돼 있음을 확신하며, 자신뿐 아니라 주님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의의 면류관이 준비돼 있음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후서를 기록할 당시 그는 지하 토굴 감옥에 갇혀 있는 신세였습니다. 주변의 친구들은 모두 떠나가고 자신이 세웠던 교회, 성도들, 선교지들은 등을 돌린 상태였습니다. 더구나 지인들은 바울을 밀고하거나 고소까지 했습니다.


항상 함께 해 주시는 예수님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세 가지 사실을 함께 나누길 원합니다. 첫 번째로 모든 사람들이 바울을 떠나갔지만 주님께선 항상 함께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10절 말씀입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이어서 14, 15절 말씀을 봅니다. “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보였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저에게 갚으시리니 너도 저를 주의하라 저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바울의 주변 사람들은 모두 배반하여 여러 곳으로 떠나갔습니다. 데마는 바울의 동역자였지만, 그는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의 곁을 떠나 데살로니가로 갔습니다. 혹자들은 데마가 겁에 질려 공포에 사로잡힌 자의 대명사로 쓰이는 만큼, 그는 복음을 전하다 핍박으로 인해 겁을 먹고 데살로니가로 도망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합니다.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떠났습니다. 달마디아는 지금의 유고슬라비아 지역을 말합니다. 구리 장색 알렉산더는 바울의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을 주었던 사람입니다. 여기서 ‘해를 많이 보였다’는 말은 ‘밀고하다’라는 말에 어원을 두고 있습니다. 현대의 주석가들은 바울이 두 번 감옥에 들어가는데, 그 중 2차 투옥은 구리 장색 알렉산더의 밀고에 의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특별히 구리 장색 알렉산더를 주의할 것을 환기 시킵니다. 1


6, 17절 말씀을 읽습니다.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16절 말씀을 통해 볼 때, 당시 로마법은 재판을 받기 전에 자신을 변론하는 제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이 재판장 앞에서 처음으로 변론할 때 함께 해준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고 합니다. 바울이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전도한 것이 무죄임을 증언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17절 말씀에서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하고 모든 것을 잃고 빈털터리가 되더라도, 주님께서 함께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주님께서 곁에 서셔서 이방 사람들에게 온전히 복음을 증거할 수 있도록 ‘사자의 입’에서 지켜주셨다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사자의 입’이란 아마 당시 로마 네로 황제의 핍박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사도행전 18장에 보면 바울은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핍박, 고난, 모함, 오해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9~10절 말씀에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항상 우리 곁에 서셔서 우리를 강건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바울은 전도 여행을 계속 하면서 땅 끝까지 복음 전파에 대한 비전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는 서바나(현재 스페인)에도 가고자 했습니다. 바울은 스페인으로 가기 전에 로마에 가길 원했고, 로마로 가기 전에 예루살렘에 가길 원했습니다. 바울의 예루살렘 행은 위험천만한 일이며 심지어 목숨까지 잃게 될지도 모른다며 주위 사람들이 말렸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뜻을 굽히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바울의 비전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행 23:11).  마침내 바울은 배편을 이용해 로마로 향했습니다. 바울을 실은 로마행 배가 항해 중에 풍랑을 만나 파선(破船) 직전에 이르게 됩니다. 선원들과 로마 군인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두려워하며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말씀하시고, 바울은 배 안의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증거하며 안심시켰습니다.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행 27:24~25).인간관계를 회복하라


두 번째로 주님의 사랑으로 인간관계를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마지막이 될 편지를 쓰면서 인간관계를 회복해야 할 사람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11절 말씀입니다.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누가는 의사로서 바울의 주치의 역할을 하고 또 바울의 편지를 여러 교회에 전달하며 전도 여행에도 함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마가는 오순절에 120명의 제자들이 모여 온전히 기도에 힘쓸 때 성령님께서 강림하셨던 그 다락방의 주인이었습니다. 그는 마가복음의 저자이며 바나바의 조카이기도 했습니다. 마가와 그의 모친은 초대 교회의 중요한 공로자였습니다. 한편, 마가는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젊은이로서 바울의 1차 전도 여행에 바나바와 동행했습니다. 그 전도 여행이 고생스러웠던지 마가는 화끈한 성격대로 아무 양해도 구하지 않은 채 중도에서 하차해 버렸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굉장히 섭섭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마가는 바울의 마음에 못을 박은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의 2차 전도 여행 때에 온유한 성격에 포용력이 있는 바나바가 마가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자고 제안했지만, 성격이 강직한 바울은 허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마가를 두고 크게 다투게 됩니다. 사도행전 15장 39절에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가는 화끈한 성격의 소유자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사복음서 중에 마가복음이 가장 짧게 기록돼 있습니다. 아마 마가는 차분히 앉아서 복음서를 길게 기록할 수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마태, 마가, 누가 복음서에 공히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금식하신 후 마귀에게 시험받는 장면이 기록돼 있습니다. 마태와 누가 복음서에는 그 사실이 비교적 길고 자세하게 기록돼 있는데 반해, 마가복음서에는 한 문장으로 간단히 끝을 맺고 있습니다.마가복음서는 모두 16장인데 1장부터 죄를 회개하라고 강조하면서 시작합니다. 기적에 관한 기록이 18번 나오고 ‘곧’이라는 용어가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1차 전도 여행에서 도중에 모든 것을 접어버린 그의 화끈한 성격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제 바울은 디모데에게 마가를 데리고 올 것을 부탁합니다. 마가는 바울의 사역에 유익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마가는 1차 전도 여행에서 실수한 후로 많은 일을 했습니다. 성경 말씀을 전하고 여러 가지 일로 성도들을 돕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마가는 바울과 화해하지 못했습니다. 바울이 죽음을 예감한 상태에서 마가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밀고 있습니다.


바울과 디모데의 아름다운 공동체

사랑하는 성도님들, 혹시 마음에 앙금을 가진 사람을 두고 있습니까? 그 분이 돌아가셨는데도 아직 용서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지만,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는 분을 두고 있지는 않은지요. 우리는 주님의 사랑으로 마가를 용서하는 노(老) 사도의 아름다운 모습을 상기해야 합니다. 한편, 우리가 찾아가 용서를 구해야 할 분을 두고 있습니까? 자신의 실수와 잘못으로 타인의 마음에 못을 박은 적은 없는지요. 우리는 그 사람에게 찾아가 주님의 사랑으로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바울은 용서하고 용서받는 인간관계의 회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9절 말씀입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그리고 21절 말씀을 읽습니다. “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 으불로와 부데와 리노와 글라우디아와 모든 형제가 다 네게 문안하느니라.”바울은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떠나가 버린 상태에서 간절히 한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바로 디모데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겨울이 오기 전에 속히 오하고 재촉합니다. 겨울이 되면 바닷물이 얼어 항해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돌아오라’의 저자 찰스 스윈돌은 이 말씀을 다음과 같이 각색했습니다. “디모데야, 나는 네가 필요하다. 얼마나 간절하게 네가 필요한지 모른다. 너는 빨리 오도록 최선을 기울여 다오. 겨울이 오기 전에, 11월의 매서운 찬바람이 나뭇잎을 가지에서 벗겨져 밭을 지나 나의 머리 위 바쁜 귓가로 날려버리기 전에 어서 오라. 눈이 내려 평평한 마차 위에 떨어지기 시작하고 얼음 조각이 담요처럼 덮기 전에 너는 어서 오라. 오라, 나의 친구여. 나의 떠날 시간이 가까웠도다. 곧 칼날은 나의 머리 위에 떨어질 것이고 나의 시간은 끝날 것이다. 훈훈한 너와 함께 함이 없다면, 이 겨울을 견딜 수 없을 것 같구나. 너의 눈길과 너만이 해줄 수 있는 말들로 이 삭막하고 매서운 계절을 지낼 수 있도록 너는 어서 오라. 겨울이 오기 전에 도착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 다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바울에게 디모데와 같은 사람을 두고 있는지요? 바울과 디모데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뤘던 것입니다. 제가 처음 온누리교회에 와서 구로·부천공동체를 맡았습니다. 순예배 심방을 가면 지체들은 밤 11시가 넘어도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처음에 제가 빨리 집으로 가고자 했는데, 차츰 지체들과 교제에 빠져들다 보니 밤 12시가 넘어도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던 사람은 바로 자신이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구로·부천공동체가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모릅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 같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해 주고, 자녀 문제로 시름하고 있을 때 함께 걱정해 주며, 형통한 일을 만나 모두 기뻐할 수 있는 공동체가 얼마나 귀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함께 했던 지체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겠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드로아에 있는 가보의 집에 들러 자신이 두고 온 겉옷과 양피지에 쓴 책들을 가져오라고 부탁합니다. 겨울을 날 수 있는 외투와 말씀을 읽을 수 있는 책들을 원하고 있습니다. 바울과 디모데는 서로에게 너무나 귀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순모임에서 형제 자매들과 더불어 바울과 디모데처럼 아름다운 관계로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영광은 하나님께, 은혜는 우리에게’

세 번째로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은혜는 우리에게’라는 것입니다. 18절 말씀입니다.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이어서 22절 말씀을 봅니다. “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찌어다.”바울은 유언과 같은 편지를 쓰면서도 축복의 말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디모데와 에베소 교인들을 축복하고 동일하게 오늘날 우리에게도 축복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축복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주님의 은혜가 에베소교회의 디모데와 성도들과 있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은혜란 곧 하나님의 복음을 말합니다. 복음은 십자가에 나타나 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치르신 희생이고 사랑의 확증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신다는 약속의 증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우리의 행위, 공로, 자격, 조건으로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우리 가운데 은혜가 있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에 따라 은혜를 입어야 할 사람입니다. 18절 말씀에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찌어다 아멘”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주님을 만난 이후 30년 동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으로 일관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삶에서 고난, 박해, 풍파가 있고 감옥에 갇힐지라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세세 무궁토록 하나님께 영광이 있고 우리에겐 은혜가 있음을 선언합니다.


악에서 건져 천국으로인도하시는 주님

찬송가 470장 ‘내 평생에 가는 길’을 작사한 스파포드(H. G. Spafford)는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습니다. “주님, 저를 고요히 지키소서. 폭풍 같은 파도가 몰아치고 작은 범선에 파도가 넘친다 해도, 또 저가 어둠 속을 뚫고 가야만 할지라도 주님, 저를 고요히 지키소서. 물결도 당신의 손안에 있습니다. 가장 센 파도도 당신 앞에서 잠잠합니다.”스파포드는 ‘19세기의 욥’이라고 불리며 시카고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가족과 함께 유럽 여행을 계획했지만, 갑자기 일이 생기는 바람에 아내와 세 딸을 먼저 보내고 자신은 다음 배편을 예약했습니다. 그런데 가족이 탄 배가 풍랑을 만나 파선하는 바람에 아내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지만, 세 딸은 모두 잃고 말았습니다. 사고 소식을 전해들은 스파포드는 다음 배편으로 현장을 지날 때 선장이 사고 지점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때 스파포드가 사고 지점을 보고 쓴 찬양 시가 바로 ‘내 평생에 가는 길’입니다. “주님, 저를 고요히 지키소, 저를 고요히 지키소서.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평안해….” 이제 바울은 편지를 마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악한 자의 손에서 건지시고 구원의 진리로 천국으로 인도하시니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하나님께 있다고 선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의 삶에 풍랑이 있고 고난이 있으며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고백처럼,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으로 일관해야 합니다. 우리의 평생에 가는 길이 순탄하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주님께서 항상 우리의 곁에 계심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사도 바울과 같이,우리도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떠나고 추운 겨울에 홀로 남을지라도 

우리 곁에 서셔서 강건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마귀가 고난과 풍파로 우리를 삼키려 해도 

예수님께서 우리의 대장이 되셔서 은혜 가운데 평안으로 인도해 주옵소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도록 우리의 삶을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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