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은 사랑하는 영적 아들 디모데가 주님의 말씀을 전할 것을 원했습니다.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죽기 직전에 믿음으로 낳은 아들 디모데에게 자신이 갖고 있던 모든 마음들을 나누고자 기록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4장에서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다시 한번 자신이 귀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지막 때 알려 주려고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사도 바울은 오스티안 거리에서 참수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죽임을 당하기 바로 전에 디모데에게 ‘말씀을 전파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일생에서 30여 년 동안 휴식도 없이 순례 전도자로 살았습니다.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그는 하나님을 위해, 복음을 위해, 구원을 위해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복음 전파에 열정을 바쳤습니다. 그가 누릴 수 있는 세상의 모든 영광들을 배설물로 여기고 오로지 주님을 향한 달음질을 쉬지 않았습니다.
죽음을 앞둔 바울의 고백은 복음 전파
사도 바울은 자신의 죽음이 가까이 온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는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주안에서 얻은 아들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전파해야 할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1절 말씀입니다.“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바울은 마치 법정에서 증인이 선서하듯 엄숙하고 진지하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 앞에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주님의 다시 오심과 그분의 나라가 임할 것을 두고 엄히 명령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첫째, 성도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날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과 예수님 앞에서 엄히 말하는 것과 같이 우리는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종들에게 달란트를 맡기고 먼 길을 떠났던 주인이 돌아와 종들과 함께 그 맡긴 달란트를 셈하는 것과 같이, 우리는 언제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가 있을 줄로 압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동안 쌓아놓은 모든 것들을 불로 심판받을 때가 있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2절 말씀을 봅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사도 바울이 ‘말씀을 전파하라’는 것은 디모데에게 마지막으로 강조했던 사항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상황이 유리하든지 불리하든지 말씀을 전파하라고 명령합니다.
조건을 배제한 전도
둘째, 성도는 말씀을 전파해야 하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말씀을 전파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참된 도리입니다. 1793년도에 윌리엄 케리라는 사람이 선교를 위해 인도로 떠났습니다. 케리 선교사는 인도에 도착해 말씀을 많이 전했습니다. 그러나 7년 동안 한 명의 세례자도 얻지 못했습니다. 8년째에 단 한 사람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런 윌리엄 케리 선교사는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것을 시도하십시오. 하나님에게 위대한 것을 기대하십시오”라고 권면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했을 때 사람들이 믿음으로 받아들이든 거부하든 상관없이 우리는 복음을 외쳐야 합니다. 에스겔 2장 7절에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상황이나 형편에 따라 말씀을 전파할 것이 아니라 항상 말씀을 전파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사람을 내일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누가 감히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그 사람에게 말씀을 전하지 않는다면, 언제 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겠다고 확정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제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네비게이토에서 훈련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선생님께서 숙제를 내주셨는데, 매일같이 전도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전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곧 전도하리라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버스 안을 둘러보니 저만치 뒷좌석에 깡패 같은 아저씨 세 사람이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교복을 입은 채 ‘아저씨, 시간이 있으신지요’라고 물어보았습니다. 세 사람 중에 두 사람은 쳐다보지도 않았고, 한 사람이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대뜸 저는 ‘예수님을 영접하시겠습니까’라고 했더니 그 아저씨는 ‘됐다’면서 저리로 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겸연쩍게 버스에서 내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그 아저씨가 예수님을 믿는지 안 믿는지 알 수 없었지만, 중요한 것은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제가 교육 전도사 시절에 교회에서 초등부를 가르쳤습니다. 그때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압구정동 어린이 유괴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 유괴된 어린이는 제가 가르쳤던 초등부 저학년 학생이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전할 때 그냥 전하면 안 됩니다. 오늘 만났던 사람을 다시는 못 만날 수도 있다는 명심 하에 열정을 다해 자세하게 전해야 합니다. 그 어린이가 유괴되었을 당시에, 예수님을 믿었는지 안 믿었는지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저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인내와 가르침으로 전도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가족에게, 직장 동료들에게, 사랑하는 이웃과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복음을 권하라고 명령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말씀을 전할 때 세 가지 사항을 명하고 있습니다. ‘경책하고 경계하며 권하라’는 것입니다. ‘경책하다’는 것은 잘못된 것을 바르게 잡기 위해 책망하다는 뜻입니다. 실수를 범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멸망과 사망의 길로 가는 사람들에게, 죄악의 길로 가는 사람들에게 꾸짖으라는 것입니다. 경책은 마치 도로 표지판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길로 가는 사람들에게 심판, 사망, 지옥으로 가는 것임을 분명히 선포해야 합니다. ‘경계하다’는 것은 죄를 범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돌이키라고 충고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권하다’는 것은 위로하다는 의미입니다. 선을 행하는 사람들을 세워주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죄를 범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죄에서 돌이킬 것을 권하라고 명령합니다. 지치고 낙심되며 절망하여 한 걸음 물러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희망을 주며 위로하고 세워주라는 것입니다. 상처, 아픔, 고통,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격려해 주라고 하십니다.
미국의 워렌 위어스비(Warren W. Wiersbe) 목사님은 시카고에 있는 무디교회의 담임을 역임한 유능한 방송 설교가입니다. 그 분이 교통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워낙 유명한 분인지라 주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위로하고 편지를 보내주었습니다. 그런데 한 편지가 그 분의 마음을 환하게 밝혀주었습니다. 위어스비 목사님이 전혀 모르는 그 사람은 며칠마다 한 번씩 편지를 보내주었습니다. 목사님은 그 사람의 편지로 인해 병상에서도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었고 신앙의 지침으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위어스비 목사님이 퇴원했을 때 편지로 자신을 격려하고 위로해 주었던 그 사람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편지로 위로를 보내 주었던 그 사람은 소경이었고 오랫동안 당뇨를 앓아 합병증으로 한쪽 다리를 잘라낸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나이 많으신 어머니를 모시고 어려운 형편에 있었습니다. 위어스비 목사님은 찡한 가슴을 안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세상에서 누구보다 불행한 조건에 있는 사람이 오히려 감사함으로 이웃을 격려하고, 인근에 있는 고등학교에 찾아가 기쁨으로 전도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나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우리는 환경에 따라 복음을 전하고 안 전하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처한 환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데 아무런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복음을 전하지 않아도 되는 어떠한 이유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사도행전 20장 24절 말씀을 통해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도 고난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올라가고 싶었지만, 그곳에 가면 적들에게 붙잡힐지도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아가보를 비롯해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가면 고난과 핍박이 있고 붙잡혀서 감옥으로 가게 될지도 모른다며 말렸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께서 주신 그 부르심의 소명에 대해, 복음 전파의 사명에 대해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단호히 말했습니다. 바울은 많은 고난 중에도 복음 전파에 애썼습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어떤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 교회에서 세대별로 맞춤 전도를 진행했는데, 이젠 직업별로 분류해 첫 대상으로 의사 선생님들을 위한 집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의사 선생님들이 하루 일정이 무척 바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저희가 맞춤 전도 집회를 준비하면서 등록도 잘 안되고 전화를 해도 퉁명스럽게 받곤 해서, 표현은 안했지만 이 직업을 바꾸면 안 될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가운데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셔서 벽과 같이 요동도 않던 의사 선생님들이 마음을 열어 주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안 될 것 같고 불가능할 것 같은 일도 의심과 불안함을 떨쳐 버리고 일어나 복음을 전하면,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예수님을 영접하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성도는 세상을 좇지 않는데, 세상은 죄악으로 점점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3절에서 5절까지 말씀을 읽습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여기서 “귀가 가려워서”라는 표현은 듣기 좋은 말만 들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진리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세속적이고 엽기적이며 육체의 쾌락을 좇는 것을 들으려 합니다.
고난을 이기는 전도인
또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욕심에 맞춰 스승을 많이 두고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에 마음을 쏟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귀를 즐겁게 하고 마음을 흥분시키는 마약과 같은 이야기에 자신을 내어맡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세상을 향해 말씀을 전파해야 합니다. 세상은 날로 악해져 갑니다.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좇는 마음보다 세상의 쾌락에 더 열중합니다. 5절 말씀에서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고 권고하십니다. 세상은 육신의 쾌락을 좇아 세속의 영광을 따라 가지만, 우리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말씀 위에 굳게 서서 고난 중에도 전도자의 직무를 다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맡기신 봉사의 일, 섬김의 일을 완수해야 합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서로 높은 자리에 앉고자 했습니다. 두 제자가 자리다툼을 벌이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세상은 다 높고자 하지만 너희는 그렇지 아니하다. 누구든지 높고자 하는 자는 낮아질 것이요 낮고자 하는 자는 높아질 것이니, 인자는 자신을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위해 대속물로 내어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다르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육체의 쾌락을 좇고 높고자 하지만, 우리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분명 세상과 달라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어둠과 벗하지 않고 빛 가운데 거해야 합니다. 또 우리에게 모든 일에 근신하라고 하십니다. 곧 영적으로 깨어 있으라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영적 부흥이 있어야 하고 성령 충만이 있어야 하며 믿음으로 무장된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고난을 받되 그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 센트럴시티라는 건물이 있습니다. 저는 그곳에 있는 서점에 들러 책도 사고 가끔 영화도 감상합니다. 어느 날 서점에 들어가려고 주차장에 차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야한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어서 잠시 쳐다보고 있는데, 어떤 성도님이 다가와 “목사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저는 얼떨결에 서점에 가는 길이라고 말했습니다. 약간은 멋쩍었습니다. 우리의 삶은 스스로 증명해야 합니다. 형제와 자매들 앞에서 믿음의 진보를 보여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빛 가운데로 나아가야 하는데 어둠 중에 머물러 있다면 세상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근신하여 깨어 있어야 합니다. 주님 앞에서 부족하고 연약함을 깨닫고 스스로 자신을 채찍질해야 합니다. 또 고난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에서 고난을 받게 돼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지만, 세상은 하나님과 그의 자녀들을 환영해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에서 당하는 핍박과 고통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전도인의 일을 다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그 직무를 다하라는 것입니다.
에콰도르에 아우카라는 식인 인디언들이 있었습니다. 짐 엘리어트와 다섯 명의 젊은이들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갔습니다. 젊은이들은 식인 인디언들과의 첫 만남에서 순교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짐 엘리어트의 부인 엘리자베스 엘리어트가 죽은 남편의 일기를 토대로 ‘전능자의 그늘’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에 보면 “보배도 하나, 시선도 하나, 주님도 하나이면 된다. 하나님, 마른 막대기 같은 저의 삶에 불을 붙이사 주님을 위해 온전히 소멸하게 하소서. 하나님, 저의 삶은 주님의 것이니 모두 태워 주소서. 저는 오래 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 저의 생명을 취하소서. 주님의 뜻이라면 저의 피를 취하소서. 주님의 삼키는 불로 저의 피를 태우소서. 저의 것이 아니기에 아끼지 않습니다. 주님, 가지소서. 모두 가지소서. 세상을 위한 희생으로 부으소서. 피는 주님의 제단 앞에 흐를 때만 가치가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직무를 책임지는 그리스도인
우리가 세상을 향해 주님의 말씀을 전파해야 함을 거듭 강조해도 지나친 것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마지막 유언같이 세상에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라고 권고합니다. 로마서 10장 13절과 14절에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일을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외치지 않고 전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듣지 못합니다. 듣지 않고선 주님의 이름을 부를 수 없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선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상황이 좋든지 나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게 되시길 기도합니다. 짐 엘리어트가 ‘주여, 나의 생명을 취하소서. 마른 막대기와 같은 나의 생명을 취하셔서 주님의 도구로 삼으소서’라고 기도한 것과 같이 주님의 말씀 전파에 도구가 되는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있는 영혼들을 향하여 복음을 증거하는 전도인의 직무를 다 해야겠습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마른 막대기와 같은 우리의 삶에 불을 댕겨 주소서.
주님을 위하여 온전히 소멸케 하여 주소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주님의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세상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소서.
주님의 도구로 삼아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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