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에서 눈으로 볼 수 없는 신비스러운 일곱 번의 터치가 있었습니다. 지난 주일에 첫 번째로 성령 터치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요단강에서 세례를 주고 있던 요한을 찾아가심으로써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베풀라고 하셨을 때 요한은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뜻을 알아차리고 곧 물세례를 허락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나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와 예수님 위에 머무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 터치입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예수님의 공생애에서 성령 터치가 시발점이고 원동력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일한다면, 반드시 성령 터치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사역의 시작이고 원동력인 것입니다. 인간의 힘, 돈, 지식, 방법으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성령에 사로잡혀 능력을 덧입어야 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에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심
이제 예수님께 있었던 두 번째 터치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바로 말씀 터치입니다. 본문 1절 말씀입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예수님께서 성령 터치를 이루신 후 처음 하신 일은 하나님의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신 것입니다. 그것은 매우 독특한 영적인 일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건을 발견하고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께로 마귀가 온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아담과 이브에게 마귀가 먼저 찾아왔던 것과는 아주 대조적입니다. 또 하나는 예수님께서도 마귀를 찾아 가신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예수님과 마귀가 대면하게 되는데, 그것은 성령님께서 예수님을 이끌어 마귀에게로 오신 것입니다. 여기에 영적 의미가 있고 놀라운 사역의 비밀이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사역을 시키실 때, 우선 마귀의 시험을 이기게 하시고 그의 세력들을 물리치게 하십니다. 우리는 마귀의 세력을 먼저 꺾지 않고선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마귀의 특징은 한마디로 말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항상 숨어 있는 존재입니다. 어떤 음모를 꾸밀 때 주로 주동자들은 배후에 있고, 하수인들이 전면에 나서서 일을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조종하는 세력들은 뱀처럼 똬리를 틀고 배후에 숨어 포진합니다. 배후에서 조종하는 사탄의 세력들을 꺾지 않은 채 하수인들과 백 번 싸워 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 예수님의 생애에 대로를 여시기 위해 마귀를 굴복시키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성령님께서 예수님을 마귀에게 데리고 가신 이유를 찾으려면 창세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이브가 사탄의 꼬임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을 배신했습니다. 이후 모든 인류는 사탄과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거짓, 절망, 부패, 질병, 죽음 등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공중 권세 잡은 자가 우리를 밀 까부르듯 한다고 말했습니다. 베드로가 이런 말을 한 이유는 사탄이 밀 까부르듯 하는 데 본인이 많이 당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만큼 마귀한테 많이 놀아난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배후에서 조종하는 숨은 자와 대면
사탄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사탄의 별명을 들어보면 사탄의 존재를 쉽게 잘 알 수 있습니다. 사탄은 의외로 많은 별명을 갖고 있습니다. 성경은 사탄에 대해 ‘귀신의 왕, 시험하는 자, 바알세불, 원수, 악한 자, 밸리알, 대적하는 자, 속이는 자, 큰 용, 거짓의 아비, 살인자, 죄짓는 자, 무저갱의 사자, 옛뱀, 이 세상의 신, 공중 권세 잡은 자, 사망 세력을 잡은 자, 세상 임금, 세상 주관자, 리워야단(뱀, 악어, 괴물) 등 대략 20여 종류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마귀가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당하고 있는 모든 고통은 사탄의 별명에서 온 것이라 해도 무방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성령을 받으신 후 가장 먼저 하신 일은 무리들의 병을 고치시는 것도, 설교를 하시는 것도 아니라 마귀의 세력들을 잡는 것이었습니다. 2절 말씀을 봅니다.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예수님께서 마귀와 대면하시기 전에 40일 동안 금식하셨습니다. 사탄의 세력을 꺾기 위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바로 금식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 귀신들을 쫓아 내셨지만, 제자들은 귀신들을 쫓아 내지 못했습니다. 그때 제자들이 왜 자신들은 이런 일을 할 수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길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9:29).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금식하시고 준비하시며 기도하신 후에 대면한 마귀는 종이 호랑이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함부로 마귀에게 덤비지 말아야 합니다. 마귀는 매우 교활하고 사특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충분히 준비 되어 있지 못하면, 마귀는 우리를 밀 까부르듯 해 버립니다. 3절을 읽습니다.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마귀의 다양한 공격 방법
이제 예수님께 대한 마귀의 첫 번째 공격이 시작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마귀의 속성을 몇 가지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 마귀는 항상 먼저 시비를 걸어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면 다음으로 오는 순서가 마귀의 방해입니다. 받은 은혜를 쏟아 버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갖고 신앙 생활을 하려고 마음을 굳게 먹으면 곧 시험이 닥쳐옵니다. 마귀는 우리를 끊임없이 유혹하고 시험하여 자기 안으로 끌어들이려고 합니다.
둘, 마귀는 사람들의 약점을 이용해 교묘하게 파고들어 옵니다.
우리에게 열등감이 있거나 우월감으로 인한 자만과 교만이 있으면 그것을 교묘하게 이용합니다. 마귀는 우리의 약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존재입니다.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금식하신 것을 마귀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무엇이든지 먹고 싶어 하는 예수님의 굶주린 상황을 마귀는 이용합니다. 음식으로 유혹해 당장 끝장내리라고 판단하고 공격합니다.
셋, 마귀는 사람의 자존심을 건드려 시험에 빠지게 합니다.
마귀는 예수님에게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돌을 떡으로 만들어라. 그러면 네가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이고 메시야인 것을 증명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자존심을 건드립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과감하게 마귀를 대적하십니다. 4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말씀 터치’로 마귀를 대적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권위나 말씀을 인용해 마귀를 대적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권위와 능력을 가지고 계셨지만, 그를 사용해 마귀를 물리치시지 않았습니다. 신명기 8장 3절에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여기서 ‘말씀 터치’가 이뤄진 것입니다. 본문에서 “기록되었으되”라는 말씀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사역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큰 장애물로 대두되는 것이 마귀입니다. 그 마귀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우리가 금식과 기도로 준비한 후에 말씀으로 공격하면 마귀는 도망하고 맙니다.
그러나 마귀는 쉽게 물러나지 않는 존재입니다. 홍해가 갈라지기 전에 마귀는 열 번이나 나갔다가 들어오기를 반복합니다. 예수님께서 귀신 들린 자에게 귀신을 내쫓아주시고 조심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쫓아내었던 귀신이 저보다 더 악한 일곱 귀신을 데리고 다시 들어올 수 있다고 경고하셨습니다(마 12:45). 마귀가 한 번으로 물러서지 않는다는 사실은 5, 6절 말씀을 통해 더욱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마귀는 첫 공격이 실패하자 방법을 바꿔서 다시 예수님께 공격합니다. 마귀는 같은 방법으로 재차 공격하는 미련한 존재가 아닙니다. 분위기를 바꾸고 상황을 바꿔서 색다른 방법으로 공격합니다. 예수님께 대한 마귀의 두 번째 공격이 시작됩니다. 그는 예수님을 거룩한 성의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뛰어내리라고 도전합니다. 이것은 정신적인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적하자, 마귀도 성경 말씀을 인용해 공격을 해옵니다. 시편에 하나님께서 아들의 발등상도 상하지 않게 천사가 보호해 주신다고 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마귀를 대적하는 방법은 오로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의 유혹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적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 터치’를 이루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이 곧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7절 말씀을 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예수님께서 신명기 6장 16절에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라는 말씀으로 마귀를 꾸짖으십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의 응답은 모두 “기록하였으되”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첫 사역은 마귀를 잡으심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택한 자라도 집어 삼키려고 합니다. 마귀가 밀 까부르듯 우리를 마음대로 요리하는 때에 살아남는 방법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이라는 사실입니다. 8, 9절 말씀을 읽습니다.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여기서 “경배하면”이란 말씀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사탄 워십’(Worship)을 말합니다. 요즘 세상은 마귀가 유혹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마귀를 숭배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모든 대중 음악에는 마귀 숭배 사상이 들어 있습니다. 록큰롤, 힙합, 랩, 레게 등 최신 유행 가요에는 사탄, 섹스, 쾌락, 약물 복용에 관한 가사들로 넘쳐납니다. 사탄 숭배 사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뮤지션들은 음악을 연주할 때마다 귀신에게 경배하고 시작합니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굿거리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마귀의 마지막 전략이 사탄 숭배임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로마 시대나 지금 시대나 세상의 문명은 온통 사탄 숭배 사상으로 가득합니다. 잘못된 종교, 철학, 문화의 배후에는 사탄 숭배 사상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세상은 모두 죽음과 저주, 섹스와 쾌락, 사탄 숭배를 위해 먹고 마시며 춤추고 노래합니다.
마귀는 예수님께 자신을 경배하면 세상의 모든 권세를 주겠다고 유혹합니다. 이번에도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적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하나, 마귀는 세상의 부귀 영화에 대한 권세를 쥐고 있다는 것입니다. 소설 ‘파우스트’에서처럼, 인간이 영혼을 넘겨주면 그 대가로 사탄은 세상의 권세, 명예, 부를 줍니다. 둘, 연약한 인간은 마귀의 달콤한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셋, 마귀는 다양한 방법으로 계속 유혹한다는 것입니다. 물질적이고 본능적인 것으로, 정신적이고 명예와 관련된 것으로, 영적이고 신앙적인 것으로 공격합니다. 10절 말씀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마귀의 세 번째 공격에도 예수님께서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적하십니다. 신명기 6장 13절에 있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섬기며 그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는 말씀으로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귀신을 쫓아내야
예수님께서 처음부터 끝까지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신 원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바로 말씀 터치인 것입니다.히브리서 4장 12~13절 말씀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1절 말씀을 봅니다.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할렐루야! 여러 방법으로 예수님을 집요하게 공격하던 마귀는 결국 패배하여 예수님을 떠나게 됩니다. 우리에게서도 마귀가 떠나기를 축원합니다. 마귀가 떠난 우리는 지금 하나님께 예배하고 있습니다. 예배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에게 예배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하며 말씀을 읽는다면 귀신은 떠나게 됩니다. 마귀가 예수님에게서 떠나자, 곧 천사가 예수님께 수종 들으러 왔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에 하나님의 사자들이 동행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 우리의 눈물, 노력, 의지, 힘으로는 절대로 마귀를 물리칠 수 없습니다. 마귀를 물리치는 가장 나쁜 방법은 ‘떠나주세요’하면서 비는 것입니다. 떡이나 술을 갖다 놓고 귀신을 달래는 것입니다. 무당이 하는 일이란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달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귀신을 대적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과감히 명령해 쫓아내야 합니다. 무슨 일에서든지 악한 세력들에 맞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내쫓아야 합니다. 마귀를 물리치는 방법은 말씀 터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우리 안에 성령님이 계신 것을 찬양합니다.
우리 안에 말씀 터치가 있는 것을감사드립니다.
죽음의 세력, 절망의 세력, 저주의 세력인마귀가 예수님에게서 떠난 것처럼
우리에게서도 떠나게 도와주옵소서.
이 민족에게서도 떠나게 도와주옵소서.
북한 땅을 묶고 있는 어둠의 세력들이떠나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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