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왈드 챔버스 목사의 영적인 안목은 매우 깊고 예리하다. 우리의 신앙 상식에 스며있는 오류를 짚어내고 분별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의 글은 우리의 신앙 습성에 매스를 가할 때가 많다. 하나님을 ‘위하는 것’과 ‘함께 하는 것’에 대해서도 그렇다. 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은 주님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이 곧 주님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챔버스 목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은 적고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많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것보다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기를 훨씬 좋아한다.”고 말함으로써 ‘위함’과 ‘거함’의 본질적 차이를 지적했다. 하나님을 위하는 것으로서 영성을 확보하려는 우리의 신앙 습성에 제동을 걸었다.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과 하나님을 ‘위하는 것’은 다르다. ‘안에 거함’은 ‘위함’의 길을 가게 하지만, ‘위함’의 길은 ‘안에 거함’의 길을 가게 하지 않는다. ‘위함’의 길을 가는 것은 ‘안에 거함’을 보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안에 거함’을 위협하고 방해할 수 있다. ‘위함’의 길은 목표 지향적이고 과업 지향적이기 때문에 ‘안에 거함’을 위협하고 간과하게 할 위험성이 매우 많다. 실제로 그렇다.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자들 중에는 하나님 안에 거하지 않는 자들이 많다. 신앙생활에 열심일수록 그리스도와 멀어지고, 신앙생활의 연륜이 오래일수록 종교적인 외식만 두꺼워지는 것이 보편적 현실이다.
예수님도 이 진실을 말씀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많은 열매를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요15:5-6). 사실이다. 신앙은 행함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신앙의 본질은 ‘나의 행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거함’에 있다. 행함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고, 믿음은 행함으로 온전케 된다는 야고보의 말(약2:17,22)은 백 번 옳다. 그러나 행함이 믿음보다 앞서는 것처럼 위태로운 일이 없다는 것 또한 백 번 옳다.
행함은 ‘위함’과 연결되어 있고, ‘위함’은 이룸(외적인 결과)과 연결되어 있다. 반면에 믿음은 ‘거함’에 연결되어 있고, ‘거함’은 수행(내적인 변화)과 연결되어 있다. 때문에 나는 ‘이룸’보다는 ‘수행’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성경적 신앙의 본질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이룸’은 종말론적으로 희망하는 것이 좋고, 하루하루의 삶은 하나님의 뜻을 붙잡고 하나님을 의뢰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주님 때문에 나는 희망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삶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전향하기를. 외적인 성취에서 내적인 변화로 전향하기를. 그리고 그러기 위해 바삐 가던 길을 멈추고 침묵과 고요에 잠기기를. 복잡함보다는 단순함, 화려함보다는 소박함을 사랑하기를. 모든 목회자들 또한 내가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 안에 머무르기를 최대한 힘쓰기를. 내가 주님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내 안에서 일하시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이요 목회일 테니까 말이다. 솔직히 말하자. 나는 하나님의 뜻을 몸에 익히는 ‘수행’을 하지 못한 것은 큰 허물이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은 큰 허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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