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눈부시게 빛나던 어느 토요일 오후, 런던 중심가에 자리한 유서깊은 한 교회의 강단에 떨림으로 서 보았습니다. 그곳은 지난 세기 최고의 강해설교가로 일컫어 지는 마틴 로이드 존스가 설교했던 웨스트민스터 채플의 그 강단이었습니다. 성경에 복종하기 보다는 성경을 판단하는 자유주의 신학의 사조 속에서 하나님의 계시의 완전성을 믿으며, 표류하던 복음주의 신학을 철저한 말씀의 기초 위에 굳게 세우며 변함없이 동일한 복음의 능력을 힘있게 선포했던 바로 그 강단이었습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의 설교를 단 한편이라도 읽어본 사람은 그의 말씀의 깊이와 넓이에 압도당하게 됩니다. 세계적인 복음주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인 제임스 패커가 “설교에 대하여 내가 배운 모든 것은 로이드 존스의 설교로부터이다.” 라고 고백할 정도로 성경적인 강해설교의 진수를 보여준 그의 설교와 말씀사역은 세계의 강단과 한국의 강단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러한 그의 설교는 웨스트민스터 채플에서 무려 13년간 강해한 금세기 현대판 기독교 고전이라 일컫어지는 그의 로마서 강해설교와 8년간 강해한 에베소서 설교에서 명확히 드러납니다. 그러나 금세기 가장 위대한 강해설교가요, 또한 목사들의 목사로 평가 받았던 이 위대한 설교가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 그의 삶 속에 찾아오신 하나님의 개입하심이 있었습니다.
로이드 존스의 회심과 소명
영국 웨일즈의 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그의 나이 23세에 의학박사로 성공의 길을 걷고 있던 한 젊은이요, 교회의 모범적인 교인이었던 로이드 존스는 20대 초반의 어느날 자신의 회심에 관하여 새로운 자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의 나이 18세의 이른 나이에 출석하던 채링 크로스 교회의 주일학교 부장으로 봉사할 정도로 교회에서 성실한 교인으로 인정받던 로이드 존스였지만 성경의 진리에 철저하게 비추어 볼 때 자신이 가정이나 교회가 생각하는 것과 반대로 전혀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이러한 자각과 함께 자신이 추구하는 세상의 명예와 성공의 부질없음과 인생의 불확실성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회심에 관하여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성경이 말씀하시는 죄의 실재에 관한 깊은 인식과 자신 속에 존재하는 죄성에 관한 깊은 자각이었습니다. 로이드 존스는 죄라고 하는 것이 단순히 부도덕적인 행위라기보다 훨씬 근원적이고 깊은 것임을 인식하게 되었는데, 그는 성경의 증거대로 자신이 죄와 허물로 하나님께 죽어있고 하나님을 대항하는 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죄에 대한 깊은 인식은 필연적으로 그로 하여금 죄와 사망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깊이 깨닫도록 하였습니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경험에 관하여 훗날 그의 설교들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나로 죄인임을 알게 하셨고, 나의 존재의 근원에서 잘못되었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많은 신앙의 거성들의 회심이 종종 필연적으로 사역에의 헌신으로 연결되듯, 로이드 존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로이드 존스는 자신의 진찰실에서 만나는 많은 환자들을 통하여 그들의 진정한 문제는 의료적이거나 지적인 것이 아니라, 도덕적 공허감과 영적 공백이며, 그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은 의약품이 아니라, 자신이 필요했던 복음임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사역자로 헌신하기까지는 내적으로 극심한 투쟁을 거쳐야 했습니다. 로이드 존스는 목회로의 소명에 관하여 끊임없이 의식하고 있었지만 이에 관하여 한동안 주저하였는데, 그것은 목회란 하나님에 의해 이 사역에 뛰어 들도록 거의 강권받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만이 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며, 또한 자신이 복음 설교자가 될 만한 자격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내적 갈등은 자신의 무가치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시고 자신을 구원하셨다는 확신으로 극복되었습니다. 훗날, 그는 사역자로서의 자신의 헌신에 관하여 자신이 목회자가 된 것은 저항할 수 없는, 강권하시는 하나님의 손과 영혼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아베라본과 웨스트민스터 채플
많은 동료들의 놀라움 속에 그는 웨일즈 지역의 작은 한 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사역을 시작하면서 당시에 유행하던 연극회나 음악회, 간증과 같이 흥미거리로 사람들을 끌려고 했던 모든 교회의 활동들을 없애 버렸습니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그러한 방법이 전혀 성경적이지 않으며 사람들을 참으로 모을 수 있는 것은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진정한 설교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죄인에게 있어서 필요한 것은 단순히 더 즐겁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죄인임을 인식하는 것과 복음을 통하여 참된 회심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로이드 존스는 복음은 경험에 기초한 것이 아닌 객관적 사실에 기초한 것임을 확신하고 성경에 기반을 둔 강해설교를 시작하였습니다. 피상적인 복음의 내용을 다루던 당시의 교회 상황 속에서 철저하게 성경에 기반을 둔 그의 강해설교는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의 설교를 통하여 명목상의 신자로 오랫동안 교회 생활을 하고 있었던 그 교회의 신자를 비롯한 많은 불신자들이 회심케 되는 역사가 일어났는데, 그중에는 그 교회의 사무원도 있었습니다. 복음의 진리를 얼버무리거나 희석시키는 당시의 교회 흐름 속에서 인간의 죄와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리고 중생의 필요성에 관한 그의 ‘다른 설교’는 자유주의 신학이 우세한 웨일즈 지역에서 성령의 놀라운 기름 부으심 속에 많은 회심자를 얻게 하였습니다.
이후 로이드 존스는 그의 설교의 한 회중으로 참여하였던 캠벨 몰간의 요청으로 1938년부터 1968년까지 그의 뒤를 이어 웨스트민스터 채플에서 은퇴하기까지 약 30년간 목회를 하게 됩니다. 웨스트민스터 채플에서 섬기는 동안 그의 사역은 더욱 크게 확장 되었는데, 그는 설교와 강연을 통하여 당시에 위축되어 있었던 복음주의 신학을 공고히 하고 IVF를 비롯한 여러 복음주의 기관들의 신학적 기반의 정립과 설립에 크게 공헌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이 기간동안 영국의 교회지도자들과 함께 자유주의 신학에 대항하는 복음주의에 입각한 대학의 설립의 필요성으로 탄생한 런던 바이블 칼리지의 설립과 교회사의 훌륭한 신앙의 유산들을 계승하고 연구하기 위한 복음주의 도서관(Evangelical Library)의 건립,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컨퍼런스의 설립, 그리고 지난 교회사의 찬란한 복음주의 저작들을 발굴하고 출판하는 진리의 깃발(Banner of Truth)사의 설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신학적으로 혼란스러웠던 당시의 교회 상황 속에서 영국 복음주의의 회복과 부흥에 끼친 그의 영향은, 존 스토트가 이야기 한 것처럼 2차대전 이후 복음주의 지도자들 중 어느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하늘의 설교자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그의 삶은 단순히 영국의 복음주의 지도자, 혹은 위대한 설교가, 그것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모자람이 있습니다. 미력하나마 그의 삶과 설교를 연구하면서 깨달은 그의 진정한 위대함은 교회사의 거인들의 삶에서 쉽게 발견될 수 있듯, 오히려 그의 내면에 흐르는 신학과 그 정신에 있습니다. 그는 진정 복음이 무엇인지를 알았고 그래서 이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았고 그리고 이 복음의 영광을 위하여 끝까지 ‘한 길’을 걸어갔던 사람입니다. 그의 삶은 어찌보면 그가 흠모했던 바울을 너무나 닮았습니다. 설교를 위하여 평생을 소명적인 연구와 독서, 그리고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참된 부흥을 갈망했던 그의 삶의 이야기는 마치 현대의 살아있는 한 사도를 보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그에 관한 글들과 이야기들은 이러한 그의 진실함을 드러내어 줍니다. 예를 들어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있었던 아라베본을 떠나던 송별의 밤에서조차 그를 존경하고 칭송하는 사람들에게 “나에 대해 말하지 마십시오. 오직 내 구주에 대해서만 말하십시오” 라고 부탁하던 내용이나 웨스트민스터 채플에서의 사역기간 중 그에게 상담왔던 다른 교회의 동료 목회자의 슬픔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던 모습이나 그의 놀라운 강해설교와 인격을 칭송하던 한 기자에게 “나는 단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죄인일 뿐” 이라고 고백하던 그의 말들을 통하여 참된 복음의 영광을 알았던 이 거인의 깊이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습니다.
1926년 12월, 그가 사역자로 헌신하고 아라베본에서 첫 주일 행했던 말씀의 본문이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 라는 것과 그의 나이 81세로 순례자의 삶을 마친 후 웨일즈의 그의 묘비에 기록된 문구가 바로 그것과 동일한 문구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설교자로서의 하늘의 소명을 가장 고귀하고 영광스럽게 여기며, 거짓없는 믿음과 신실함으로 생애의 마지막 날까지 그리스도와 십자가만을 사랑하고 자랑했던, 그 하늘의 설교자가 오늘 다시 그립습니다. (활천 1월호 손동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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