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교에서 은혜를 체험하다
가슴에 불덩이를 안고 신학교에 들어왔다가 가슴이 숯덩이같이 되어 졸업한다는 푸념을 과거 신학생들에게서 자주 들었다. 아직도 그런 불만을 가지고 있는 신학생들이 있겠지만, 요즘은 신학교에 대한 학생들의 만족도가 상당히 높아졌다. 오늘 몇 학생과 식사하며 담화를 나누었다. 한 학생은 목사의 아들인데 자신은 신학교에 들어와 진정으로 회심한 것 같다고 하며 신학교에서 받은 학적이고 영적인 유익이 말할 수 없이 크다고 하였다. 신학교에서 배우는 것만 잘 소화하면 목회를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두 여학생은 수업시간에 교만한 자아가 깨지고 변화됨을 계속 체험했다고 한다. 수업시간 중에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던 적이 많았다고 한다. 방금 마친 수요기도회를 인도한 젊은 교수님이 설교 후 찬송을 인도하지 못할 정도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치는 것을 보았다. 감정적인 표출이 꼭 은혜의 증거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신학교를 은혜 없는 메마르고 냉랭한 곳이라는 선입관으로만 보지 말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동안 신학교의 무용론까지 대두될 정도로 신학교는 매서운 비판과 독려의 채찍을 맞아왔다. 그 덕분에 교수들도 신학교의 갱신을 위해 나름대로 몸부림치고 있다. 본인은 몇 년 있으면 은퇴하지만 지금 후배교수들은 학문과 인격과 영성 면에서 나 같은 구닥다리와는 질이 다르다. 지금까지 신학교가 제 기능을 못했다면 그것은 나 같은 기성세대 교수들의 책임이 크다. 그러나 젊은 세대의 교수들과 학생들에게서는 한국교회 미래의 희망이 움터 옴을 본다. 부디 이들을 격려하고 지원해주기 바란다. 이 희망의 싹이 잘 피어올라 만개할 수 있는 최적의 여건과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이 교단과 교회들에게 주어진 시대적인 사명이다.
<박영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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