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섭리의 거대한 수레바퀴
박영돈 목사
오늘 고려신학대학원 새벽기도회에서 전한 짤막한 메시지를 올립니다. 미흡한 내용이니 긍휼히 봐주십시오.
창 45:1-10절은 요셉의 기사에서 가장 감동적인 대목입니다. 요셉이 꾹 참았던 울음을 더 이상 억제하지 못하고 대성통곡합니다. 요셉의 통곡은 그동안 파란만장한 세월을 보내온 회한과 자신을 기구한 운명의 궁지로 몰아넣은 형들에 대한 한 맺힌 마음의 응어리가 눈 녹듯이 풀어지는 용서와 사랑의 격정이 분출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자신을 가장 낮고 비참한 자리에서 끌어올려 어린 날 자신에게 주셨던 꿈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은혜에 대한 감격이 깃들여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은혜 때문에 요셉은 형들을 넉넉히 용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셉은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45:7)라고 말하며 형들이 두려워하지 않도록 그들을 안심시킵니다. 7절에서 다시 이 말을 반복하며 더 구체적인 설명을 곁들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신 것은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그랬다는 것입니다. 8절에서는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형들의 죄책감을 덜어주려는 깊은 배려와 사랑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을 그들의 엄연한 악을 합리화하거나 그 책임을 약화시키는 말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이 말을 자칫 잘못하면 하나님이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 형들에게 요셉을 팔게 하셨다는 식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죄의 궁극적인 원인자가 되지요. 요셉의 형들은 요셉에게 천륜을 거스르는 패악을 저질렀습니다. 그들이 악을 행했어도 그것을 통해서 선을 이루시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신 역사입니다. 그러나 선을 이루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 악을 도모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에 정면으로 상충되는 일이지요. 요셉이 형들을 괴롭히는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 그렇게 완곡하게 표현했지만 그 말 저변에는 비록 형들이 자신에게 악을 행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서도 궁극적으로 선을 이루셨다는 섭리신앙이 깔려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악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요셉의 비전과 꿈을 결국 이루신 것은 단순히 요셉 개인을 잘되게 하신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아브라함의 후손을 구원하고 축복하시려고 하신 것이지요. 곧 하나님이 아브라함과의 언약, 즉 너와 네 후손을 축복하여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리라는 약속을 성실하게 지키시는 구원역사적인 사건이지요. 요셉의 기사를 개인의 감동적인 성공담이 아니라 구속사의 큰 틀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를 복음으로 부르셔서 아브라함과의 언약이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더 온전히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다 합력하여 그 뜻이 이루어지는데 어떤 식으로든 기여하도록 섭리하십니다. 이 구원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 섭리의 거대한 수레바퀴를 어떤 세력이나 악도 저지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이 바퀴에 짓이겨져 매끄러운 발판역할을 할 뿐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했습니다(롬 8:28). 요셉의 섭리신앙과 맥을 같이 하는 말씀이지요. 그 신앙의 신약적 버전인 셈입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복음으로 부르신 뜻을 거스르는 적대세력과 악이 가득합니다. 우리를 부르신 비전과 뜻을 좌절시키는 것 같은 악과 불행과 고난이 우리에게도 닥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악과 고난을 우리가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내버려두실 때가 있습니다. 요셉이 겪은 것 같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소망과 비전이 산산이 깨지는 것 같은 당혹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거기서 낙심하고 절망합니다. 아무리 기도하고 발버둥 쳐도 헤어 나올 수 없는 고난의 질곡이 지속되면서 우리는 혼비백산하게 됩니다. 아무리 부르짖어도 도움의 손길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했는데 현재 우리가 당하는 고난과 불의가 어떻게 선을 이루게 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답답합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모든 것이 암울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서도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하신 뜻을 끝내 이루시는 하나님 섭리의 거대한 수레바퀴는 한시도 멈추지 않고 돌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크고 놀라운 일을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짓누르는 악과 고난 속에서 우리를 연단하여 우리를 부르신 뜻을 이루시기에 합당한 그릇으로 빚어 가십니다. 우리의 완고한 자만심이 깨져서 성령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채널이 되게 하십니다. 결국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신다는 아브라함과의 언약이 성령 안에서 온전히 성취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짓누르는 고통스러운 환경과 문제까지도 우리를 결국 축복하는 방편으로 동원되었다는 것을 깨달게 하십니다. 나에게 악을 행하며 나를 괴롭힌 사람들도 나를 유익하게 한 축복의 도구였다고 요셉처럼 고백하게 되지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의 은혜가 선으로 악을 넉넉히 이기게 하십니다. 이 섭리 신앙이 현재 당하는 불의와 고난으로 인해 아주 낙심하지 않고 성급하게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악을 되갚는 통쾌한 승리를 희망할 수 있게 합니다. 성령 안에서 이 희망이 우리를 결코 부끄럽게 하지 않을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능력이 이 소망을 이루실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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