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베스트셀러가 된 책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하버드 대학의 마이클 샌델 교수가 말하는 정의란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민하는 것”입니다.
즉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곧 정의입니다.
너무나 간단히 결론을 내린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드디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살벌한 적자생존의 경쟁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 만들기”가 대세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에 동참해야 합니다.
“더불어, 함께”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21세기의 시대정신이며, 난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본질이자, 키워드입니다.
여전히 사람들은 경쟁하고 탐욕을 부리고 대립하고 권모술수를 쓸 것입니다. 그러나 “더불어, 함께”라는 본질을 결코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2장에서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 두 사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디모데를, “자식이 아비에게 함과 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한”(빌 2:22) 사람이라고 하였고,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이는 뜻을 같이 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 밖에 내게 없음이라.”(빌 2:20)고 하였습니다.
또 에바브로디도를,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빌 3:25)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나름의 의도와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도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모든 삶의 기초가 됩니다. 우리 인간들이 불행한 이유, 교회가 타락하고 기독교가 변질되는 이유는, 하나님의 의도를 오해하고 왜곡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봐야 하는 본질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뜻과 의도대로 세상은 움직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과 의도는 언제나 ‘사랑’과 ‘창조’입니다. 즉 생명을 살리고 더욱 풍성케 하는 것입니다.
둘째, 세상이 아무리 예측할 수 없이 흐른다고 해도, 그 원인은 언제나 인간의 탐욕입니다. 인간은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모두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온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의 자녀들이므로 작은 것 같으나 큰 영향을 미칩니다. 좋은 의도를 가지면 좋은 영향을, 나쁜 의도를 가지면 나쁜 영향을 미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과 복음을 전하는 일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생명을 살리고 더욱 풍성케 하시는 예수님께서, 죽는 일에 몰두하는 줄도 몰랐던 바울 자신을 불러 살리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오직 살 길인 예수님과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중입니다. 감옥에 갇힌 것도, 빌립보 교회에 유대주의자들이 들어와 소란케 하고 교인들 간에 불화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를 보내는 것도, 자신의 지위와 영향력과 세력을 유지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직 살 길인 하나님의 뜻을 바로 세워 빌립보 교인들로 하여금 제대로 올바로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도 사도 바울과 같습니다.
곧 예수님의 생각과 같습니다. 그래서 디모데를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진실’입니다, 헬라어로 “에일리크리네이스”인 진실은 ‘완전무결한 태양빛으로 시험하다’입니다. 이 혼란스럽고 혼탁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어떻게 이겨내야 하나? 경쟁력, 외모, 재산과 배경, 학벌, 정직과 성실, 통찰력, 재능, 의지력, 용기 등등 그 모든 것을 능가하는 것이 ‘진실’입니다.
‘진실’이 최고의 병기입니다.
언제나 예수님의 완전무결한 빛 아래서, “나는 왜 이것을 원하며, 어떤 의도로 이 일을 하는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대답해야 합니다. 그 어떤 의도와 목적도 예수님의 완전무결한 빛 아래에선 밝히 드러나며,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그 그림자는 내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시들고 병들게 만듭니다. 오직 진실만이 예수님의 완전무결한 빛을 통과하며 그림자가 생기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상대방에 대해서 “그대는 진실한가?”를 묻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나를 향해 “너는 진실한가?”를 물으시고,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해 “하나님은 과연 진실한가?”를 묻습니다. 이 질문은, 다른 말로 하면 “그대는 나를 사랑하는가?”입니다.
하나님을 ‘진짜로’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을 ‘진짜로’ 사랑할 때 비로소 진실할 수 있습니다.
진실할 때만이 나는 살아나고 사람들을 살려냅니다.
드디어 많은 사람들이 더불어서 함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동의를 한 것입니다. 그 일에 초점을 맞추면 하나님께서 먹이십니다. 그것도 베풀고도 넘칠 만큼, 너무나 충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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