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권인목사

이원론적 사고에서 벗어나라

새벽지기1 2015. 6. 18. 16:19

 

신앙의 세속화, 세속의 거룩화

 

그리스도인은 보통 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을 반대 개념으로 이해한다.

영적인 것은 세속적이지 않고, 세속적인 것은 영적이지 않다고 말이다.

예를 들면 깊은 산속에서 침묵 정진하는 스님이나 주님을 위해 독신을 고수하는 신부를 보면 왠지 세속적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세상사에 무관심하거나 등 돌린 사람은 영적으로 보이고, 세상사에 빠삭한 사람은 왠지 세속적으로 보인다. 기도, 성경 읽기, 전도, 선교, 예배는 영적인 일이고 친구를 만나거나 직장에서 일하는 것은 세속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목사는 영적인 일 이외에 다른 일을 하면 안 되며, 예수님을 잘 믿고 따르려면 세상에서 발을 빼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은 대체로 삶의 영역을 성()과 속()으로, 즉 성스러운 영역과 세속적인 영역으로 구분하고,

이 두 영역을 서로 대립하는 세계라고 생각한다.

더욱 심한 경우는 아예 기독교적 영역과 비기독교적 영역으로 분리하기도 한다.

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을 분리하거나 대립적으로 이해하는 '성속 이원론'이 꼭 그리스도인에게만 있는 건 아니다.

'성속 이원론'은 서양 철학의 뿌리라 할 수 있는 플라톤의 이원론에서 비롯되었을 뿐 아니라,

헬라 사상의 근저에 깊이 깔려 있는 사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상은 신앙의 유무나 종교에 상관없이 거의 모든 인간에게 보편화되어 있고,

인간의 심성과 뇌리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

 

'성속 이원론'을 전적으로 부정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모든 사람은 온전치 못하며, 온전치 못한 사람은 세상사에 관심을 기울이고

세상사에 깊이 발을 담그면 담글수록 영적으로 성장하기보다는 세속적으로 기울어지기 십상일 수밖에 없다.

성경이 그토록 열심히 땅엣 것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것을 사모하라고,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귀 있는 자는 주의 말씀을 들으라고 말한 것도 아마 세상사에 관심을 기울이고 세상사에 깊이 발을 담그면 담글수록 세속에 물들기 쉬운 게 사람이기 때문이었으리라.

 

하지만 그런 현실성에도 불구하고 '성속 이원론'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는 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이 대립하는 세계가 아니라 하나로 통합된 세계이고,

하나님이 창조한 사람 또한 영혼과 육신이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하나로 통합된 존재이다.

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이 서로 조화를 이룸으로써 온전함을 이루는 삼위일체적 통합의 세계이다.

 

이 세계는 전혀 이원론적이지 않다.

영적인 세계는 실체이고 물질적인 세계는 환영이나 그림자에 지나지 않거나,

영적인 것은 하나님에게 속하고 세속적인 것은 마귀에게 속한 것이 아니다.

영적인 세계와 물질적인 세계 모두 하나님에게 속했을 뿐이다.

더욱이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는 분리와 대립의 세계가 아니라 조화와 통합의 세계이다.

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이 분리되거나 대립해서는 안 되는 조화와 통합의 세계이다.

이것이 히브리 사상과 헬라 사상의 큰 차이이며 성경에서 그려주고 있는 사상이다.

 

'성속 이원론'은 결코 성경적 세계관과 공존할 수 없다.

하나님이 창조한 이 세상은 '성속 이원론'의 세계가 아니라 '성속 일원론'의 세계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성속 일원론에 눈뜬 사람은 신앙으로 온 세상을 품는다.

영적인 것뿐 아니라 세속적인 것까지도 신앙 안에 품는다.

모든 영적인 일은 세속의 일상으로 내려오고, 모든 세속의 일상은 영적으로 승화된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은 형제를 사랑하는 것으로,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심을 인정하는 일은 역사에 참여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구원은 매일의 일상을 하나님 나라 방식의 삶으로 구체화된다.

바로 이것이 참 신앙이다.

 

온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 온 세상의 역사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아는 참 신앙이다.

무릇 세속의 일상으로 내려오지 않은 신앙은 자기 확신이거나 종교적 망상에 지나지 않으며,

영적으로 승화되지 않은 세속의 일상은 생존투쟁이거나 생명을 소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고로 모든 신앙은 세속화되어야하고, 모든 세속은 신앙화 되어야 한다.

신앙의 세속화와 세속의 신앙화야말로 진정한 일상의 영성이며 참된 성경적 신앙이다.

 

땅을 경시하고 하늘만 중시하는 천국직행 우상화

 

그리스도교 본래 원 주류는 "하늘이 땅에 임하여, 땅을 변화시켜 땅에 임한 하늘세상"을 이루는 것이라고 고백해 왔다.

이것이 이른바 '성육신적 영성'이다.

"말씀이 육신을 입어 우리 가운데 임했는데, 그 안에 은혜와 진리가 충만했다"(1:14)는 증언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3:16)는 성경구절이 진실로 중요한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을 증언한다. 그리스도교는 이 세상과 땅을 소홀히 하거나, 기피하거나, 잠시 지나갈 '간이역'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 되는 종교인 것이다.

 

함석헌은 이렇게 말한다. 목적은 하늘에 있으나 일은 땅에 있다. 땅을 박차지 않고 날아오르는 새는 하나도 없다.

예수께서도 기도를 가르치실 때에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셨지

땅을 버리고 곧 하늘로 올라가게 해주십사 하시지 않은 것은 깊이 새겨 알아야 할 말씀이다.

 

현실을 피하고 구원은 없다. 현재의 고통은 문제 아니 된다는 소리는 민중을 속여 영원한 압박에 비겁하게 굴복케 하면서 그들의 피땀으로 수고한 결과를 짜먹자는 지배자의 앞잡이 종교가만이 하는 소리다.

거룩한 하나님의 발이 땅을 디디고 흙이 묻은 것, 그것이 곧 민중이다. 하나님 섬김은 민중 섬김에 있다.

하늘이 허공에, 죽은 후에, 있는 줄 아는 것이 잘못이란 말이다.

허공에 있는 것이 햇빛이 아니요 땅에 내려와야 빛이요 열이듯이, 하늘은 무한 막막한 허공에 있지 않고 땅에 와 있다.

땅 중의 땅, 흙 중의 흙이 어디냐? 네 가슴이요 내 가슴 아닌가?

 

"하늘나라가 너희 안에, 혹은 너희 사이에 있다"는 말은 왜 그렇게 쑥 빼놓는가?

 

 

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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