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심판은 현재 우리의 삶이 하나님에 의해서 언젠가는 판단 받는다는 교리다. 여기서 예외는 없다. 교황도 판단 받을 것이며, 신학대학교 총장도 판단 받을 것이다. 목사의 목회 행위도 최후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지금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리 많은 칭찬을 받아도 최후의 심판을 건너뛸 수는 없다.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천만다행이다.
최후의 심판이 실감 가지 않을 수도 있다. 죽으면 그것으로 인생 자체가 끝나지 더 연장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옳은 말이다. 죽음으로 우리의 삶은 끝이다. 여기서 말하는 삶은 이 땅에서 실행되는 방식의 삶이다. 그런 삶이 끝났다고 해서 우리의 존재 자체가 말살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불교의 윤회설은 사람이 해탈하지 못하고 죽으면 다른 동물이나 또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교리다. 기독교 입장에서 볼 때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다른 방식의 삶이 연장된다는 주장에는 귀를 기울일 요소가 있다.
사람은 몸과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다. 몸은 죽어서 원소로 해체된다. 원소가 아주 없어지는 게 아니다. 내 몸을 구성하고 있던 원소가 남아있다는 게 분명하다면 죽음 후에 모든 게 말살되는 게 아니라는 것도 분명하다. 영혼도 그렇다. 한 인간의 영적 현상들은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 거 같지만 더 깊은 차원에서는 죽음 이후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것이다. 간단한 예로 죽은 아버지나 선생님의 정신을 자식이나 제자가 이어받는다면 영적 현상이 연장되는 것이다. 예수의 부활 경험은 제자들에게 연장되었다. 예수가 제자들 안에서 살아있는 것이다. 우리 각자의 삶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역사의 이전과 이후의 과정에서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뚫어본다면 죽음 이후의 삶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전과 이후에 벌어지는 삶의 내용이 다를 뿐이다. 사람의 삶과 해바라기의 삶이 다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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