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무슨 일에든지 누구를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고린도후서2:10-11)
용서 받은 사람은 용서할 수 있고, 용서하는 사람이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조차도 많이 속습니다.
용서를 비는 사람,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 피해를 입혔으면 피해를 보상한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참용서라고 속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이미 일만 달란트 탕감(용서) 받았으니, 우리가 용서해야할 사람은 그 누구라도 일만 달란트에 비하면 겨우 일백 달란트 빚을 진 수준이기 때문에 따질 것도 없이 탕감(용서)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용서하는 사람은 용서받았고, 용서하는 사람은 용서받습니다.
바울이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고 하는데 사탄에게 속는 것, 사탄의 계책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용서하지 못하게 하고, 원한을 쌓아가게 하고, 이를 갈게 하고, 미워하고 증오하는 고통에 아주 오래오래 머물게 하는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이 용서 받았다면 용서받은 용서로 용서하는 것이 용서받은 증거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용서한다는 말조차도 감히 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
쉬운 용서는 용서가 아닙니다.
용서를 빌어서 우리 마음에 용서할 마음이 생긴 용서가 무슨 용서입니까?
용서할 수 없는 용서, 용서라는 말만 들어도 화가 나는 용서, 생각만 해도 진저리가 처지는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진짜 용서입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용서도, 우리의 인격의 성숙으로부터 오는 용서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부터 오는 용서, 성령의 감동으로부터 오는 용서입니다.
원한, 상처, 피해, 아픔을 끌어앉고 살지 말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끌어앉고 십자가의 사랑으로 용서의 자유를 누리시길 축복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온전히 따라가길 소망하는 이금환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