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을 준비하는 말씀을 들은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비웃었습니다. 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입니다. 먼 미래가 아니라 당장의 즐거움을 위하여 사는 자들입니다. 돈을 좋아하는 자라는 예수님의 평가는 많은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욕망을 채우기위한 악세라리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을 향하여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고 떠들지만 하나님은 마음을 아신다고 말씀합니다. 사람 앞에서 높아지는 자는 낮아집니다. 교만은 패망의 앞잡이입니다. 돈을 다스리지않고 사랑하는 자들은 일만 악을 만들어 낼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을 향하여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합니다. 율법은 복음 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이제 율법은 복음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감당합니다. 율법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복음 안에서 더욱 분명하게 자기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복음으로 율법을 바르게 해석해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의 왜곡된 해석을 예수님은 복음 안에서 교정하여 주십니다.
예수님은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갸기를 통하여 복음을 전하십니다. 나사로가 부자의 집에서 구걸하며 살았는데 죽어 천국에 아브라함 품에 안겼습니다. 부자 역시도 죽었습니다. 그런데 부자는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지옥의 고통을 당하고 있는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물 한방을 요청하지만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자신의 형제에게는 이 고통에 오지 못하도록 나사로를 보내어 말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모세와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는 자는 죽은 자가 살아돌아가도 듣지 않을 것이라 말씀합니다.
복음 초청을 듣지 않는 자는 어떠한 충격에도 듣지 않을 것이라 말씀합니다. 구원은 복음을 들을 때 주어집니다. 그러나 돈을 사랑하는 자들은 복음 듣기를 싫어합니다. 아니 비웃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는 이유입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돈을 사랑하는 것은 외식입니다. 돈을 사랑하면 율법을 따라 살 수 없습니다. 돈은 사랑이 아니라 관리 대상입니다. 돈을 관리하는 청지기로 부름받았습니다. 그래서 주인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이것이 율법이고 복음입니다. 복음은 율법의 정신을 삶의 규범으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돈을 사랑하다가 망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돈을 자랑하다가 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빙자하여 돈을 추구하는 집회는 음부에 떨어지는 통로입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교회와 삶서 돈과 권력을 사랑하는 교회와 삶으로 변질되고 있지 않는지 돌아봅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부를지 나를 돌아봅니다. 돈을 사랑하고 스스로 높아지기를 탐하는 싸움에서 이겨 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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