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직장 큐티

눈을 뜨고도 볼 수 없는가?(마가복음 8:22-26) / 원용일 목사

새벽지기1 2025. 3. 27. 06:15

눈을 뜨고도 볼 수 없는가?
(마가복음 8:22-26)

‘정결’이라는 관점으로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신(7장) 후 예수님은 한층 더 십자가로 가까이 제자를 이끄십니다. 벳새다에서 한 시각장애인을 고쳐주신 일을 통해 십자가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주십니다.

마가복음 8:22-26
22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 대시기를 구하거늘
23 예수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24 쳐다보며 이르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25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
26 예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이르시되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치유 이적이 많았는데 뱃새다에서 한 시각장애인을 고쳐주신 일에는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시각장애인을 예수님이 동네 밖으로 데리고 나가 무리와 떨어져서 이적을 베푸십니다. 더욱 이상한 점은 예수님이 시각장애인을 한 번에 고쳐주지 않으신 겁니다. 처음에는 먼 곳을 잘 못 봤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다시 안수하셨고 그제야 그 사람이 먼 곳까지도 분명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두 번에 나누어 시각장애인을 고치신 일이 특이하고 예수님이 그를 집으로 보내며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특이한 이적이 제자들의 영적 상태를 보여준다는 합리적 의심을 해볼 만합니다(27-30절).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첫째, 장애인을 동네 밖으로 데려가시듯이 예수님은 제자들을 멀리 빌립보 가이사랴로 데려가십니다. 둘째, 시각장애인을 두 번 고치신 것처럼 제자들의 예수님에 대한 이해가 두 단계를 거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먼저 사람들은 예수님을 세례 요한, 엘리야, 선지자 같은 사람이라고 보고 있다고 대답합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신 예수님께,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주는 그리스도’시라고 합니다. 제자들도 사람들의 이해와 비슷하게 예수님을 알고 있다가 이제 예수님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말도 비슷합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30절).

십자가로 가셔야 할 예수님은 매우 답답함을 느끼셨습니다. 떡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로 4천 명을 먹이신 이적(1-9절) 후에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또 한 번 갈등을 겪습니다(10-12절).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는 사람들을 보고 예수님이 깊이 탄식하셨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무리 중에서 뽑아서 데리고 다니며 가르쳐 온 제자들도 역시 예수님의 십자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18절).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제자들은 눈은 뜨고 있었으나 보지 못했습니다. 눈을 제대로 뜨게 하기 위해 주님은 한 시각장애인을 고쳐주셨습니다. 벳새다 시각 장애인의 치유 이적을 통해 제자들이 예수님을 제대로 바라보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도 눈을 떠서 밝히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대 제자들이여! 눈을 떠서 보고 깨달아 알라! 십자가를 바라보라!’

일하는 사람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구속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제자들의 잘못된 안목에서 벗어나게 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인도해 주소서. (by 원용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