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씀을 하신 뒤에, 여드레쯤 되어서,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셨다. 예수께서 기도하고 계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변하고, 그 옷이 눈부시게 희어지고 빛이 났다. 그런데 갑자기 두 사람이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였다. 그들은 영광에 싸여 나타나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그의 떠나가심에 대하여 말하고 있었다. 베드로와 그 일행은 잠을 이기지 못해서 졸다가, 깨어나서 예수의 영광을 보고, 또 그와 함께 서 있는 그 두 사람을 보았다. 그 두 사람이 예수에게서 막 떠나가려고 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여기서 지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가 초막 셋을 지어서, 하나에는 선생님을, 하나에는 모세를, 하나에는 엘리야를 모시겠습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말하였다. 그가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구름이 일어나서 그 세 사람을 휩쌌다. 그들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니, 제자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났다. "이는 내 아들이요, 내가 택한 자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그 소리가 끝났을 때에, 예수만이 거기에 계셨다. 제자들은 입을 다물고, 그들이 본 것을 얼마 동안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1. 죽음의 세상
좋으신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소망과 새롭게 하시는 은혜가 저와 여러분 위에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이번 주 수요일은 경칩입니다. 꽃샘추위가 남아 있지만, 곳곳에서 봄기운이 조금씩 느껴집니다. 저녁에 조깅을 하다보면 금방 땀이 납니다. 남도에는 산수유가 피고 있다지요. 요즘 저는 출근할 때마다 교회 화단을 유심히 살펴봅니다. 우리 교회 화단에도 산수유가 있는데 꽃봉오리가 조그맣게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몇 주 후면 꽃이 필 것 같습니다.
곳곳에서 생명의 기운이 드러나고 있지만,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인간 세상에는 생명의 기운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2023년 6월 이후 시작된 전지구적 이상고온은 지난달까지 19개월째 지속되고 있습니다. 산업화 대비 지구 평균기온이 1.54도 상승하여 마지노선이었던 1.5도를 이미 넘어버렸습니다. 경북 청송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사과재배지역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작년 가을, 청송의 사과 농가들은 다른 해보다 60~70%밖에 수확을 못했습니다. 30~40%의 사과가 고온 때문에 표면이 터져버린 것입니다. 이대로 계속 가면 50년 후에는 국내 사과재배농가가 사라질 것이라고 합니다. 지난 설날에 거창 교회의 사모님께서 직접 재배해 보내주신 20여 가지의 농산물 선물세트에는 편지도 들어 있었는데, 편지 내용 중에는 이런 것도 있었습니다. ‘지난해에는 이상고온으로 팥과 콩이 영글지 않아 수확을 못해 재작년 것들을 보내드립니다’ 그런 일이 어디 우리나라 청송과 거창에서만 일어났을까요? 유엔사막화방지협약이라는 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지구온난화로 최근 30년 동안 지구 표면의 3/4이 영구히 건조해졌고, 경작지의 40%가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식물들만 피해를 입은 것이 아닙니다. 포유류, 조류, 양서류, 어류 등의 동물들이 서식지가 파괴되면서 수십 년 내에 55%가 멸종을 맞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지구가 계속 뜨거워지고 몸살을 앓고 동식물들이 죽어가는 것은 우리 인간의 책임입니다. 인간은 자연을 이용하고 착취만 할 뿐 그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연뿐 아니라 다른 인간도 이용하고 착취만 할 뿐 그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월요일인 2월 24일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난 지 만3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러시아는 옛 러시아의 영광을 재현한다는 명목으로 우크라이나를 침략했습니다. 명백한 범죄적 전쟁이었습니다. 3년간의 전쟁으로 우크라이나는 43,000여 명의 군인이 죽었고, 천만 명의 피난민이 발생했으며, 국토의 20%를 빼앗겼습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을 위해 나섰습니다. 그런데 트럼프는 러시아나 우크라이나를 위해 나선 것이 아니라 철저히 미국의 이익을 위해 나선 것입니다. 우크라이나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안전을 보장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의 광물 채굴 수익의 50%를 요구할 뿐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을 막아줄 것을 약속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트럼프는 전쟁을 먼저 일으킨 러시아를 향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으며 그저 러시아와 경제협력 관계를 맺음으로 경제적 이익을 얻으려 할 뿐입니다. 그뿐 아니라 트럼프는 미국이 인종과 계층과 성별간의 차별을 줄이고자 지난 60년간 지켜온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정책, 소위 DEI 정책을 포기하고 ‘백인 남성’중심의 정책을 노골적으로 펼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트럼프는 ‘미국을 하나님 아래 하나의 국가로 통합하겠다’라고 말했고, 미국의 우파 기독교는 ‘트럼프는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라고 칭송하고 있습니다. 이상합니다. 트럼프와 미국 우파 기독교는 우리와 다른 성경을 보는 것 같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는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사자가 살진 짐승 함께 풀을 뜯는 세상이라고 했지, 이리와 표범과 사자가 어린양과 새끼 염소와 살진 짐승을 잡아먹는 세상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세계에서 극우화되고 있는 나라는 미국 하나가 아닙니다. 세계 여러 나라가 빠르게 극우화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생명이 생명답게, 모든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인간은 인간만 생명답게 여기고, 어떤 인종만, 어떤 계층만, 어떤 성별만 사람답게 여길까요? 왜 자기만을 귀하게 여길 뿐 다른 생명과 다른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일까요? 분명한 것은 인류가 모두 그런 이기적인 태도를 버리지 못한다면 모두가 머지않아 공멸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2. 예수, 죽음을 향해 나아가다
오늘은 교회력으로 주현절 마지막 주일이며 산상변화주일입니다. 주현절 마지막 주일은 늘 산상변화주일입니다. 그리고 산상변화주일이 있는 주간의 수요일은 재의 수요일, 성회수요일입니다. 그날부터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산상변화에 대한 성경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시던 제자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더불어 산에 기도하러 올라가셨습니다. 그곳에서 기도하실 때 예수님의 얼굴 모습이 변하고 그 옷은 눈부시게 희어지고 빛이 났습니다.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갑자기 어디선가 두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였습니다.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은 예수님의 떠나심에 대해 말하였습니다. 이 놀랍고 중요한 일이 이루어지고 있을 때 제자들은 잠을 이기지 못하고 졸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졸다가 깨어서 예수님이 빛나는 모습으로 변한 것도 보았고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청했습니다. “주님, 이대로 여기서 계속 지내는 게 좋겠습니다. 초막 셋을 지어 하나에는 선생님을, 하나에는 모세를, 하나에는 엘리야를 모시겠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잠이 덜 깨서 그랬는지, 아니면 황홀경에 취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두려워서 그랬는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그런 말을 했습니다. 그 이후에 신비한 사건이 하나 더 일어났습니다. 베드로가 그 말을 할 때에 구름이 일어나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휩쌌습니다. 그리고는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이는 내 아들이요, 내가 택한 자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마태복음은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나는 그를 좋아한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라는 소리가 났다고 했습니다. 소리와 구름이 사라진 이후 제자들이 보니, 엘리야와 모세는 사라졌고 예수님만 그 자리에 서 계셨습니다.
변화산에서 일어난 세 가지 신비한 사건은 예수님에게서 일어난 사건이기도 했지만, 제자들에게 일어난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제자들은 그날 그 산에서 예수님이야말로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오신 분임을 깨닫게 되었고, 예수님이야말로 모세로 대표되는 율법과 엘리야로 대표되는 예언을 당신의 삶으로 성취하실 분임을 깨닫게 되었으며, 예수님이야말로 진정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이요, 자신들은 그분의 말씀을 따라야 함을 절실히 깨달은 것입니다. 그런 체험, 이 세상의 모든 어둠을 밝힐 참 빛을 만나는 체험, 하나님의 말씀을 삶으로 온전히 구현한 사람을 만나는 체험,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를 만한 사람을 만나는 체험은 얼마나 귀한 체험입니까? 우리는 정말 좋은 경험을 하게 되면 그 순간과 그 장소에 한정 없이 머물고만 싶어집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곳에 초막을 짓고 지내자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반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산에서 하룻밤을 머무시고 바로 산 아래로 제자들과 내려오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죽음이 기다리는 곳, 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가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불의한 권력자인 로마가 다스리던 어둠의 시대였고, 로마에 빌붙은 성전체제가 권력과 부를 위해 율법과 예언의 정신을 저버린 시대였습니다. 그런 시대에 누군가는 어둠 속에 빛을 밝혀야 했고 무너진 율법과 예언을 바로 세워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을 하는 이를 로마와 성전체제가 가만히 둘 리가 없었습니다. 제국과 민족과 성전과 하나님의 이름으로 죽일 것이 뻔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변화산은 예수님에게 있어 변화의 자리였다기보다는 결단의 자리였습니다. 예수님도 살고 싶은 생명이었습니다. 그랬기에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여, 하실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옮겨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그런 고뇌와 번민의 순간마다 예수님을 든든하게 붙잡아준 것은 하나님이셨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음성이 세례 받을 때도 들렸고 변화산에서도 들렸습니다. 그 두 번뿐이었을까요? 어렵고 힘들 때마다 예수님은 그 하나님의 음성에 의지해 힘을 내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도우심에 힘입어 죽음을 향해 나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의 죽음을 향해 나아가신 것이 아니라 모두의 생명을 향해 나아가신 것입니다. 구원의 길이란 바로 그것입니다. 모두를 살리기 위해 나 하나를 죽음의 자리에 내놓을 수 있는 마음이 구원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 반대의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자기 하나 살리기 위해 모두를 죽음과 위험으로 내몰며 살아갑니다.
3. 죽음에서 생명으로
1933년 히틀러가 독일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는 독재를 했습니다. 국민들의 언론 출판 집회를 금지시키고 나치당 이외의 모든 정당을 해산시켰습니다. 히틀러는 막강한 권력으로 경제를 부흥시키고 군대를 강화했습니다. 이에 일반 독일인뿐 아니라 독일교회도 일제히 히틀러의 통치를 반겼습니다. 히틀러를 하나님이 보내주신 분, 구세주라고 칭송했습니다. 이에 대해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는 ‘우상숭배’라고 라디오 방송에서 비판했습니다. 그때부터 본회퍼는 나치의 감시를 받아야 했습니다. 본회퍼는 그릇된 방향으로 가는 독일교회에서 나와 ‘고백교회’를 따로 만들었습니다. 본회퍼는 잠시 미국에 간 적이 있는데 미국에서 계속 살 수도 있었지만, ‘나는 독일인들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독일재건에 참여할 권리가 없다’며 다시 독일로 돌아왔습니다. 본회퍼는 나치와 히틀러를 쓰러뜨리기 위해 지하저항운동에 가담했습니다. 그러다가 1942년 나치 전복음모가 발각되어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죽기를 각오하고 저항운동에 가담하였지만, 막상 감옥에 갇히자 외로움과 두려움과 무력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쓴 시가 <나는 누구인가>입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 나는 누구인가? 남들은 내게 감방에서 나오는 모습이 마치 성에서 나오는 영주 같다는데, 남들은 내가 간수들과 대화하는 모습이 마치 그들에게 명령하는 것 같다는데, 남들은 내가 늘 승리한 사람 같다는데... 새장에 갇힌 새처럼 불안하고 병약한 나, 빛과 꽃과 새소리에 주리고 따스한 말과 따스한 인정에 목말라하는 나, 기도에도 생각에도 일에도 지친 멍한 나, 풀이 죽어 작별을 준비하는 나는 누구인가. 오, 하나님! 내가 누구인지 당신은 아시오니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이후 본회퍼는 히틀러 암살에 적극 가담했던 것이 밝혀져 1945년 4월 9일, 부활절이 며칠 지나지 않은 날 사형당했습니다. 그는 사형당하러 가기 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이것으로 끝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새로운 삶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본회퍼가 죽고 나서 두 통의 편지가 그의 어머니와 약혼녀에게 전해졌습니다. 편지에는 그가 죽음을 맞이하기 전 연말에 쓴 시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 시를 가사로 해서 만든 찬양이 있습니다.
- 그 선한 힘에 고요히 감싸여 그 놀라운 평화를 누리며
나 그대들과 함께 걸어가네 나 그대들과 한 해를 여네
촛불 밝고 따스히 타올라 우리의 어둠 살라버리고
다시 하나가 되게 이끄소서 당신의 빛이 빛나는 이 밤
그 선한 힘이 우리를 감싸시니 그 어떤 일에도 희망 가득
주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셔 하루 또 하루가 새로워
본회퍼, 그 또한 예수님처럼 죽음을 향해 나아갔지만, 모두의 생명을 향해 나아갔던 사람이었습니다. 죽음의 세상 속에 생명의 세상을 가져온 사람이었습니다.
사순절 순례가 시작됩니다. 세상은 계속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죽음의 세상, 죽임의 세상일 것입니다. 그런 세상에 맞서기에 우리는 너무 연약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한 힘이 우리를 감싸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본회퍼처럼 죽음의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한 힘에 감싸여 생명의 세상을 열어가는 청파의 교우들과 이 시대 믿음의 사람들이 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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