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그렇다면 사물이나 사람이 생기기 전에 말씀이 존재했다는 뜻이다.
그것이 가능한가?
여기서 말씀은 단순히 사람들의 의사소통을 위한 말이 아니라
만물의 조화를 가능하게 하는 생명의 힘이다.
헬라 사람들은 그 힘이 바로 언어, 즉 로고스라고 생각했다.
플라톤 식으로 말하면 이데아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바로 이데아로부터 나왔다.
이데아가 보이지는 않지만 사물보다 선재한다는 뜻이다.
이 말은 일리가 있다.
어떤 사물은 단순한 사물에 불과하다.
거기에 이름을 붙일 때만 그것의 의미 있는 사건이 된다.
이런 점에서 사물보다 말이 먼저 있었다고 봐도 된다.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라고 한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것도 이런 이유다.
성경이라는 문자 자체가 하나님은 아니지만
문자가 없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시기 때문에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말씀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하셨고,
창조 행위에 주도권을 행사하셨다.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최선의 길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세계로 깊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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