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주기도(2)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6. 19. 06:20

     오늘 우리 모두는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라는 기도를 드릴 마음이 없소. 생존의 위기를 느끼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오. 일용할 양식이 아니라 이제는 ‘well food’를 찾는 실정이오. 아무도 주기도의 저 대목을 절실하게 대하지 않소. 그렇다면 주기도를 바꿔야 하는 것 아니겠소? “우리에게 맛있고 열량 낮고 건강을 보장하는 양식을 주소서.” 이런 식의 기도는 기도가 아니오. 이런 조건으로는 사람이 구원받을 수도 없고, 행복할 수도 없소. 기도는 영적 호흡이며,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하지 않소? 그렇다면 기도는 영적인 차원의 삶을 가리키오. 아무리 좋은 먹을거리를 먹는다고 해도 우리의 영적인 삶이 풍요로워지는 건 아니오.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오.”(눅 6:20)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상기해보시오. 가난한 사람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일용할 양식이오. 거기에 집중하고 있소. 그런 사람이 행복하다는 주님의 말씀은 실제 상황이라기보다는 역설이라고 생각하오? 그건 역설적 실제요. 이렇게 생각해보시오. 사람에게는 절대적인 것이 하나만 작용하오. 숨을 들이쉬면서 동시에 내쉴 수는 없소. 젊은 연인들은 오직 ‘그대’만을 사랑할 수 있소. 일용할 양식에 모든 마음을 쏟는 사람은 다른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오. 구원이 두려움과 걱정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한다면 가난한 사람은 일반 사람들의 걱정과 두려움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되오. 그건 사실이오. 노숙자들을 보시오. 그들은 다른 걱정을 하지 않소. 그날 밥 먹고 살아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한 거요. 마음이 단순해진다는 거요. 이런 점에서는 도박꾼들이나 마약중독자들의 삶이 일반사람들보다 구원에 더 가깝소. 문제는 도박꾼들과 마약중독자들이 순전하게 한 가지에 매달리지 못하고 일반사람들보다 더 많은 걱정을 한다는 것이오.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삶은 어린이들의 삶과도 비슷하오. 그대도 똑같이 경험했겠지만 어릴 때는 ‘놀이’ 하나에 심취할 수 있소.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 하는 여러 가지 걱정과는 거리가 먼 삶이오. 그 순간만은 부자 집 아이나 가난한 집 아이나 아무런 차별 없이 모두가 한 통속이 되어 버리오.

 

     오늘 우리는 어떻소? 일용한 양식이 아니라 그 이외의 것을 구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소. 물질적인 풍요의 시절에 영적인 가난을 살고 있소. 내가 지금 그대에게 설교를 하려는 게 아니라 우리의 실질적인 삶을 말하는 거요. 우리가 다시 어린아이의 영성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듯이,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의 삶이 아니면 행복할 수 없소. 문제는 그게 쉽지 않다는 데 있소. 그게 무슨 이유라고 생각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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