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하나님의 나라(18)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5. 17. 04:30

'교회는 비판과 무관심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현재의 사회 형태와 정치 형태를 최대한 성실하게 고려해야 하며, 오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빛에서 그것을 평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고 있는 하나님 나라는 어떠한 타계적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현 사회의 운명이다. 여기서 우리는 세계 문제를 다룰 때 교회와 세계의 차이를 분명히 할 수 있다. 그 차이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라도 명백히 해야 하며, 사회를 위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양자는 같은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심과 사회에 대한 관심 중에서 양자택일 하는 게 아니다. 차라리 사회에 대한 관심 때문에 우리는 그 목적과 운명, 즉 하나님 나라에 관심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행동하는 것은 사회를 위해서 행동하는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행동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심 없이 교회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결국 교회를 불필요한 기구로 전락시킨다.'(판넨베르크, 신학과 하나님 나라, 118쪽)

 

기독교 신앙의 타계주의가 얼마나 위험한지는 앞에서 판넨베르크의 말을 몇 번 인용했으니 그대도 기억하실 거라 보오. 굳이 판넨베르크의 글을 읽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웬만큼 세상에 대한 인식이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소. 일종의 영육이원론이라 할 수 있소. 한국교회에는 이런 신앙에 크게 기울어 있소이다. 그것은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본다.”는 식의 신앙,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을 거요.

 

어떤 사람들은 그런 신앙이 왜 문제냐, 그것이 바로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 아니냐, 하고 생각할 거요. 모든 자랑거리를 배설물처럼 여긴다거나, 십자가와 부활 이외에는 모든 관심을 껐다는 바울의 말을 그 증거로 삼으려고 할 거요. 바울이 말하려는 것은 사람들이 내세우는 자기 의에 대한 경고일 뿐이지 세상에 대한 무관심이 옳다는 뜻이 아니라오. 이런 문제에 대한 설명을 더 하지 않아도 그대는 충분히 이해할 거라 믿소. 한 가지만 짚겠소. 내가 이미 앞에서 말한 것인지 모르지만, 중요한 것이니 이해해 주시구려.

 

우리는 하나님을 세계 창조자로 믿고 있소. 창조 신앙을 유지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아무도 세상을 거부하지 못하오. 사람의 몸을 거부하지 못하오. 이 역사를 무시하지 못하오. 그런 구체적인 세상, 몸, 역사에 대한 관심이 없다는 것은 곧 창조의 하나님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는 증거라오. 종말에 일어나게 될 새 하늘과 새 땅은 이 하늘과 이 땅의 변형이오. 지금 우리의 삶이 배재된 새 하늘과 새 땅은 없소이다.

 

조금 심하게 말하더라도 이해를 바라오. 오늘 한국의 많은 신자들이 비성서적, 비신학적, 비상식적인 신앙행태를 보이고 있소이다. 교회를 중심으로 작동되는 열정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소.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이 이끌어가고 있는 세상과는 무관하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지 자기들만 예수 믿고 축복받아 행복하게 살다 죽어서 천당 가면 된다는 종교적 이기주의에 물들어 있소. 철저한 타계주의에 빠진 거요.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에서는 교묘하게 정치적 발언을 쏟아낸다오. 한 마디로 코미디 아니겠소?

 

그대마저 그렇다는 말은 아니니, 화를 내지 마시오. 그리고 절망하지도 마시오. 하나님이 어디 교회를 보고 일을 하시겠소?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신다오. 우리는 그분의 일에 방해거리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최선이 아닐까 하오. (2010년 4월1일, 목요일, 하루 종일 봄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