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란 국민의 찬송가에는 ‘‘주 나의 하나님이여, 당신은 나의 방패시며 의지할만한 분이십니다’’라는 가사가 있는데, 지금도 애국자들은 공식 집회석상이나 길거리에서 이 찬송을 부른다. 그런데 이 가사는 3000년 전 시편 기자가 읊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시 84:11)는 구절과 병행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늘날 우리의 생활에 있어서는 방패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오늘날의 전쟁은 대포와 속사포를 무기로 하여 서로 먼 거리에 떨어져서 하는 것이다. 군인들은 이것을 피하기 위해서 땅에 엎드리거나 아니면 흉벽 뒤에 숨는다. 그러나 다윗이 시편을 기록한 당시의 전쟁은 대체로 두 사람이 서로 아주 가까이 서서 싸우는 것이었다. 때때로 상대방의 발을 걷어차기도 하고 서로 칼을 휘두름으로써 둘 중에 어느 한사람이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지기 전에는 절대로 싸움이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그러한 싸움에서란 방패는 그것을 가진 사람의 생명과 같은 것이었다. 방패 없이 방패를 가진 사람과 싸운다면 반드시 질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고대인들에게 있어서 방패는 전쟁의 주요 무기였다. 아프리가 야만인에게 있어서는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방패는 화살을 막아 내고 창의 공격을 막으며 칼의 일격을 피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므로 손수 방패를 사용하여 싸움에서 이긴 수많은 예루살렘 거민들이 시온의 바깥들에 모여 찬양 소리를 드높이며 여호와를 ”의지할 만한 방패’이시라고 영광을 돌릴 때에, 어떤 점에선 우리가 결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 자신은 그들의 방패 되신 하나님을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방패는 몸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서, 적 앞에서 다른 어떤 사람이 들어 주는 것이 아니고 아무리 극한 상황에서라도 싸우는 사람 자신이 들고 있어야만 했다는 사실이다. 군인은 왼손으로 방패를 잡아들고 있다가 공격을 당하게 되면 무의식적으로 방패를 잡은 팔을 들어 올려서 방패로 자신의 얼굴이나 가슴을 가려서 부상의 위험을 피하게 된다. 이러한 교전( 交戰)의 경우에 팔을 내놓지 않고 몸의 더 많은 부분을 가리기 위해서, 또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으로서 방패를 만들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사람 키만큼 되는 긴 방패를 만들었으나 후에는 칼의 일격을 피할 수 있는 짧은 방패 또는 둥근 방패를 만들었다. 그래서 싸움을 할 때에는 방패를 잡은 사람은 스스로 방패를 어떤 때는 이렇게 어떤 때는 저렇게 움직여서 적의 공격을 막아 냈던 것이다.
“하나님은 나의 방패’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먼 곳에서 우리를 보호해 주신다는 것이나 우리 쪽에서는 전혀 노력을 하지 않아도 우리를 지켜 주신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은 나의 방패’’라는 말은 신앙적인 용어이다. 이러한 고백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주 가까이 계시고 우리의 신앙이 그분을 붙들고 있으며 우리들을 공격하는 자에 대한 우리의 보호자로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우리의 신앙으로써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또 느낄 수 있게 된다.
죽음의 위험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어머니는 자기의 자녀 앞에 서서 사랑하는 자녀를 자기 자신의 몸으로 가리게 된다. 이런 경우에 어머니는 자녀의 방패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 역시 아직 그분을 알지 못하며 그분을 믿는 신앙을 행동으로 옮길 수 없는 어린 아이의 방패가 되어 주신다. 그러나 하나님을 방패라고 하는 이 구절은 그와 같은 데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 말은 어렵고 힘든 씨움에서 몸소 방패를 붙잡고 싸워 그것으로 생명을 건졌던 사람의 체험적 고백인 것이다. 방패가 인간에게 하는 역할은 독수리로 보자면 그 날개가 맡고 있는 것과 같다. 말하자면 방패란 군인의 몸의 일부인 것이다.
방패는 군인의 팔과 더불어 있는 것으로서 그가 씨움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그가 방패를 얼마나 민첩하게 잘 움직 이느냐 하는 데서 좌우된다. 마찬가지로 주 하나님은 그분을 의뢰하며 믿고, 곤란하고 위험한 상황에서도 변함없는 믿음을 지키며, 이 믿음에 의해 하나님은 그들이 팔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 하는 방향 제시를 해 주신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의 방패가 되시는 것이다.
방패는 전쟁과 투쟁을 위한 것이다. 우리를 영적으로 육적으로, 멸망시키려고 대항해 일어나는 모든 것들과 싸우기 위해서 방패가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은 전염병, 천재지변, 그리고 우발적인 죽음의 위험에 대해서도 우리의 방패가 되신다. 그런데 수동적으로 복종만 하고 우리를 숨겨 주고 보호하는 일은 하나님께 맡겨 버리면 된다는 뜻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방패가 되신다는 비유가 그릇 해석되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질병과 페스트, 홍수와 화재를 막아 주는 방패가 되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용하신 모든 방어 수단을 최선을 다해 활용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도 기도함으로써 행동할 용기를 얻고 믿음에 의해서 하나님을 우리의 방패, 즉 우리가 스스로 적을 대적해야 하는 방패로 삼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영혼에 있어서도 이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우리는 죄를 피해야만 한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우리는 죄와 더불어 싸워야만 한다. 우리는 죄 안에 있는 호전적인 세력이 우리를 무너뜨리려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런 세력의 배후에는 사탄의 계략이 숨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탄은 몰래 우리를 압제하며 영혼을 죽이려 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그에 맞설 방패를 가지고 있지 않거나 그 방패를 신속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지 못하다면 사탄은 분명히 우리에게 달려들어 우리를 넘어드리고 말 것이다.
사실상 하나님께서는 육신을 위한 싸움에서보다 여러분의 영혼을 위한 싸움에서 훨씬 더 방패의 역을 잘 감당해 주신다. 그러나 영적인 씨움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 있다. 즉 여러분 자신이 몸소 자신의 영혼을 위하여 싸워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분 스스로 자신의 영혼을 멸망시키려고 노리고 있는 적의 동태를 파악하여 그를 향하여 칼을 들어 올림과 동시에 자신 의 영혼을자신의 방패 뒤에 숨겨야만한다.
여러분 영혼을 위한 전쟁에서 하나님이 여러분의 방패이시라는 말은 다음과 같은 뜻이다. 여러분은 스스로 하나님께 손을 뻗쳐야만 한다 그리고 스스로 여러분에게 가능한 모든 영적인 저항 수단을 가지고 이 씨움에 임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때에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방패가 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여러분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탄을 대적하기 위해 하나님 곧 여러분의 방패를 들어 올리는 것이다.
이제 이스커천(escutcheon)이라는 방패의 무늬에 대해 언급하려고 한다. 방패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그 위에 자신의 문장(紋章)을 아로새겼다. 이것은 자기를 아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기 위한 부호인 것이다. 사람들은 이 방패의 무늬를 보고 그 뒤에 누가 숨어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 문장은 곧 주인의 화신( 化身)인 것이다. 방패의 무늬를 보고 상대방은 자기 적수의 방어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그분을 의뢰하는 사람들의 방패가 되신다. 사람들이 교만하게 제멋대로 그 위에다가 사자나 황소의 머리를 그려서는 안 된다. 오직 하나님을 믿는 신자만이 그 방패 위에다 아주 겸손하고 온유하게 자신을 낮추면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믿는 마음으로 여호와의 이름만을 새길 수 있는 것이다.
여호와를 여러분의 방패로 삼는다는 것은 자연과 사탄의 세력 앞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버티는 것이다. 그리고 불타 없어질 세상을 향하여 우리는 살아 계신 만군의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는 우리들만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앞에서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으신 예수님이 손수 지도하고 계신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우리는 적들을 향하여 자신이 인간 영혼의 최고의 힘, 즉 세상이 감당치 못할 믿음의 능력을 갖고 있노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이제 하나님이 우리의 방패시라는 고백이 얼마나 넓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우리는 이미 앞장에 나온 하나님은 우리의 태양, 즉 우리 생명 자체의 태양이란 비유의 포괄적 의미를 살펴본 바 있다. 이 장에서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전쟁 중에 우리의 목숨을 구원해 줄 방패와 둥근 방패가 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러분은 또한 모든 긴급한 상태와 영적, 육적인 전투에서 이 방패를 벽에 걸어 두지 말고 활발하고 열정적이며 용감한 믿음을 가지고 이 거룩한 둥근 방패를 사용해야만 하나님이 여러분의 방패시라는 가슴 벅찬 노래가 실제적인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느끼게 될 것이다.
출처 자기부인 / 글쓴이 /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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