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음악가들은 뭐하고 있는 거야!"
영화관을 나서며 아내에게 불쑥 내뱉은 말입니다.
막 '카핑 베토벤 Copying Beethoven'이란 영화를 본 후였습니다.
음악가들이 발끈하시겠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 이유를 한번 들어보기 바랍니다.
카핑Copying이란, 악보를 필사하는 것을 뜻합니다.
음악가가 작곡하다 보면 지우고 고치고 휘갈겨 쓰게 마련이고, 그런 악보를 깨끗하게 정리해 주는 사람을 '카피스트 copyist'라고 합니다. 영화의 무대는 18세기 음악의 도시 비엔나, 베토벤은 날로 청력을 잃어가고 있는 와중에 자신의 9번 교향곡을 작곡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그린 악보를 연주용으로 정리해 줄 유능한 카피스트를 찾던 중, 음대 우등생인 안나 홀츠를 추천받습니다.
그렇게 만나 작업을 시작하게 된 안나 홀츠는 점점 베토벤의 음악을 가슴 깊이 이해하게 되고, 두 사람 사이에는 그 누구도 끼어들 수 없는 음악적 교감交感이 이루어지고 그 교감은 영혼의 차원까지 깊어집니다. 드디어 모든 작곡이 마무리되고 초연을 앞둔 날, 청력을 완전히 상실한 베토벤이 돌연 지휘를 맡겠다고 나섭니다.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마당에 어떻게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안나 홀츠는 베토벤을 마주 볼 수 있는 위치에 관객들이 볼 수 없도록 몸을 숨기고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베토벤은 안나 홀츠를 보며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기 시작합니다. 안나 홀츠가 베토벤의 귀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연주가 시작되고 베토벤과 안나 홀츠가 하나가 되고 합창단원들도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점점 빠져들어 하나가 되었습니다. 카메라는 자신들의 차례를 기다리는 합창단원들의 모습을 훑으며 보여줍니다. 기대에 차서 가쁜 호흡을 가다듬는 긴장되고 상기된 단원들의 모습! 드디어 합창의 순서가 되어 베토벤이 사인을 주자, 천상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렸습니다.
그 벅찬 감동을 어떻게 주체해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음악에 대해서 문외한입니다. 음악가를 아내로 두어서 많은 연주를 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감동을 받는 음악회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특히 오페라에서는 잠이 들기가 일쑤였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 하시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미술이나 과학이나 문학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을 보면 저의 음악에 대한 몰이해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대 음악가들은 뭐하고 있는 거야!"라는 말은, 대가의 그림 앞에서 "이것도 그림이라고 그렸나?"라는 말과 같은 수준의 것입니다. 음악은 안만큼 들리고 미술은 안만큼 보입니다. 그러니까 제 자신의 음악 수준이 제로라는 뜻입니다. 음악하시는 분들은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베토벤에게 왜 악성樂聖이라는 최고의 칭호를 붙여 주었는지 이해할 것 같습니다. 정말 훌륭한 예술가는 문외한도 감동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영화가 최고의 감동을 준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시나리오 작가가 그런 대본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베토벤의 음악을 누구보다도 깊이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그 영화를 만든 아그네츠 홀란드도 베토벤을 깊이 이해했고, 베토벤을 연기한 배우 에드 헤리스도, 안나 홀츠 역의 다이한 크루거도 베토벤을 이해했습니다. 베토벤의 마음을 읽어낸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그런 깊은 감동을 줄 수 없습니다.
좋은 음악가란, 탁원한 연주 기술에 앞서, 먼저 그 곳을 작곡한 사람을 깊이 이해한 사람입니다. 최고의 음악가란 작곡가에 대한 이해를 뛰어넘어 그 곳을 새로운 차원으로 높인 사람입니다. 그런데 베토벤의 음악이 최악의 음악 문외한인 저마저 감동시킬 수 있는 힘의 원천은 따로 있습니다. 영화 대사 중에 이런 말로 "당신의 음악은 외로운 종교 같군요." 안나 홀츠가 말합니다.
"모두들 내가 침묵 속에 사는 줄 알아. 하지만 내 머리 속엔 소리로 가득 차 있어, 절대 멈추지 않아. 음악이란 하나님이 속삭이는 것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야. 하나님께선 어떤 사람 귀에는 속삭이지만, 내게는 고함을 지르시네. 그래서 내 귀가 멀어버린 거야."
"음악은 하나님의 언어야. 음악가들은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지. 우린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어. 하나님의 입술을 읽고 하나님의 자식들을 태어나게 하지. 그게 음악가야."
베토벤은 하나님의 창조하신 세계를 온 몸으로 읽고 체험했고, 그 체험을 음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신자나 기독교 신자나 최고의 음악가나 저 같은 사람이나 모두 그의 음악에 감동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걸작품(포이에마)이 되어 모든 사람들을 감동시킬 '거룩한 책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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