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과 저주말씀을 선포하다!
(수8:30-35 축복과 저주의 의식)
▶본문
30.그 때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에발 산에 한 제단을 쌓았으니
31.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한 것과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든 제단이라 무리가 여호와께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그 위에 드렸으며
32.여호수아가 거기서 모세가 기록한 율법을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그 돌에 기록하매
33.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관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 산 앞에, 절반은 에발 산 앞에 섰으니 이는 전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령한 대로 함이라
34.그 후에 여호수아가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 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으니
35.모세가 명령한 것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온 회중과 여자들과 아이와 그들 중에 동행하는 거류민들 앞에서 낭독하지 아니한 말이 하나도 없었더라
▶해석과 설명
◦‘그 때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에발 산에 한 제단을 쌓았으니’(30절)
여리고 전투(6장)에 이어 아이 성 전투에서도 마침내 승리(1-29절)했다. 여호수아는 계속 가나한 정복 정착 전쟁을 수행하기에 앞서 먼저 아주 중요한 종교의식을 거행하기 위해 에발산에 한 제단을 쌓았다. 한편, ‘에발산’은 일명 ‘저주의 산’이라고 부른다. 본문에는 에발산과 함께 그리심산 두 산이 등장한다.
☀참고-에발 산과 그리심산
◦에발산(Mt. Ebal)
‘벌거숭이 산’, ‘민둥산’이란 뜻으로 일명 ‘저주의 산’이라 부른다. 사마리아 지방에 있는 아이 성에서 북쪽 약 32㎞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해발 925m의 높은 산으로 계곡에서부터 367m 높이에 솟아 있고, 맞은편 그리심 산(일명 ‘축복의 산’)보다는 약 58m 더 높다. 에발산이 ‘저주의 산’으로 불리게 된 것은 모세가 가나안을 정복하면 이 산에서 저주의 율법이 선포하도록 했기 때문(신 11:29; 27:4-26)이며, 실제로 오늘 본문에서 저주의 율법을 돌비에 새기고 낭독했기 때문이다.
◦그리심 산(Mt. Gerizim)
‘그리심’은 ‘자르다’는 뜻으로 일명 ‘축복의 산’이라고 부른다. 팔레스타인 중부 골짜기에 있는 세겜을 중심으로 남쪽에 위치한 해발 867m의 산이며, 군사 요충지. 반면 세겜 북방에는 에발 산(해발 925m)이 그리심 산을 마주보며 위치하였다. 오늘 본문에서 여호수아는 축복의 율법을 돌비에 새기고 낭독했다(33절) 훗날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유다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지을 즈음, 혈통적으로 선민의 순수성을 잃어버린 사마리아인들은 이곳 그리심 산에 자신들의 성전을 세워 신앙의 본거지로 삼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경전인 ‘사마리아 오경’에 따라 성전을 세웠고,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했던 산도 그리심 산이라 하였다(창 22:2). 또 여호수아가 세운 ‘여호와의 성소’ 역시 그리심 산에 있었다고 주장했다(수 24:25-26). 이런 전통에 따라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 산에 있는 자신들의 성전에서 매년 절기를 지켰고, 오늘날까지도 이곳에서는 매년 3대 절기(유월절, 오순절, 초막절)가 지켜져 많은 관광객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만난 사마리아은 역시 그들의 예배처는 그리심 산임을 강조하였다(요 4:20-21).
◦‘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한 것과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든 제단이라
무리가 여호와께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그 위에 드렸으며’(31절)
여호수아가 첫번째 행한 의식은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는 것’이었다. 모세는 모압 평지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가나안에 들어가면 이 산에서 축복을, 마주보는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도록 지시했다. 즉,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너를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 너는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신11:29)’고 했던 것을 가리킨다. 한편, 제단을 만들 때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들라는 말씀은 인위성(포장, 위선)이 없는 ‘순수함’을 상징하는 돌로 제단을 만들라는 것이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번제물과 화목제물’로 제사를 드렸다. ‘번제’는 성도가 하나님께 나갈 때 의무적으로 드리는 희생제사이며, ‘화목제’는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과 교제의 마음을 담아 드리는 자원제(스스로 자원하여 드리는 제사)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모든 제사의 대신이 되었고 마침이 되셨다.
◦‘여호수아가 거기서 모세가 기록한 율법을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그 돌에 기록하매’(32절)
여호수아가 두번째 행한 의식은 ‘모세의 율법을 돌에 기록하는 것’이었다. 여호수아는 신11:29의 모세의 명령을 따라 제단을 만들어 제사를 드린 후 모세의 율법을 돌에 기록 했다.여호수아가 돌에 기록한 것은 십계명과 신28장의 내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돌’이란 제단을 만들기 위해 준비한 돌이 아니라 글씨를 새길 수 있도록 만든 석회 바른 돌을 말한다(신27:2-4).
◦‘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관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 산 앞에, 절반은 에발 산 앞에 섰으니
이는 전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령한 대로 함이라’(33절)
여호수아가 세번째 행한 의식은 ‘율법을 백성들 앞에서 낭독하는 것’이었다. 이는 여호수아가 신27장의 언약을 선포함으로서 하나님의 명령을 성실히 수행했던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여호수아가 율법을 낭독할 때에 온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 있는 자리에서 율법을 낭독했다. 여기서 ‘이방인’이란? 출애굽 당시(출12:38) 이스라엘과 함께 애굽을 탈출한 사람들이거나, 그 후 광야에서 여러 이유로 합류하게 된 사람들을 말한다. 이처럼 이방인들이 이 거룩한 의식에 참여하게 된 것은 구속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편, 여호수아는 율법의 말씀을 선포하기 전 ‘여호와의 언약궤의 좌우’에 이스라엘 12지파를 반으로 나누어 6지파는 그리심 산 앞에, 다른 6지파는 에발산 앞에 각각 세웠다.
◦‘그 후에 여호수아가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 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으니
모세가 명령한 것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온 회중과 여자들과 아이와
그들 중에 동행하는 거류민들 앞에서 낭독하지 아니한 말이 하나도 없었더라’(35절)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12지파를 반으로 나누어 6지파는 그리심 산 앞에, 다른 6지파는 에발산 앞에 세우게 하고,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각각 축복과 저주의 율법을 선포했다. 모세가 명령한 것 중에서 ‘낭독하지 아니한 말’이 하나도 없었다. 한편, 에발 산 기슭과 그리심산 기슭 사이에 위치해 있던 골짜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여 모세의 기록한 율법을 경청하기에 알맞은 장소였다. 백성들은 선포되는 말씀에 ‘아멘’으로 화답해야만 했다.
“모든 백성은 응답하여 말하되 아멘 할지니라(신27:12-26)”
◆묵상과 적용
◦영적 ‘하프타임(Half time)’!
‘하프타임(Half time)’주로 운동경기에서 많이 사용하는 용어다.
하지만 정작 ‘하프타임(Half time)’이 필요한 시간은 인생에서다.
보통 ‘하프타임(Half time)’은 ‘재충전’의 시간이며, 후반전의 새로운 전략 수정시간이다.
그래서 인생이 Half time은 대단히 중요하다.
Half time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우리는 본문에서 ‘하프타임(Half time)’의 진리를 발견한다.
여호수아! 아이성 공격시 실패하고 만다.
요단강을 도하하고 여리고를 함락한 후 의외의 일격을 당한다.
그들은 북쪽으로 48km 떨어진 에발산으로 이동한 후 ‘하프타임(Half time)’을 갖는다.
그들은 지금 전쟁을 하는게 아니라, 제단을 쌓고 있는 것이다.
왜 하필 에발산(저주의 산)인가?
에발산은 갈보리 십자가 사건의 예표라고 할 수 있다.
십자가는 ‘에발산의 저주’가 ‘그리심산의 축복’을 변한 곳이다.
그러면 ‘하프타임(Half time)’은 어디서 시작해야 하는가?
십자가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내가 어떻게 구원 받았는가로 부터 출발해야 한다.
‘하프타임(Half time)’은 십자가의 보혈로 나의 영혼의 아픈 상처를 치유하는 시간이다.
‘하프타임(Half time)’은 십자가 앞에서 성령의 위로를 받는 시간이다.
‘하프타임(Half time)’은 십자가 능력으로 재충전 받는 시간이다.
그리고 본분에서 주목할 구절이 있다.
바로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제단을 쌓았다는 말이다.
에발산의 제단은 자연석 즉 다듬지 않은 돌로 쌓았다.
인위적으로 꾸미고 치장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는 가면과 가식을 벗어 버리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순순한 모습과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오라는 말이다.
지금은 모두가 방학 중이다.
지금이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그 ‘하프타임(Half tim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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