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문 앞 광장으로 모이라!
(느8:1-9)
◆본문
1.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매
2.일곱째 달 초하루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회중 앞 곧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 이르러
3.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4.그 때에 학사 에스라가 특별히 지은 나무 강단에 서고 그의 곁 오른쪽에 선 자는 맛디댜와 스마와 아나야와 우리야와 힐기야와 마아세야요 그의 왼쪽에 선 자는 브다야와 미사엘과 말기야와 하숨과 하스밧다나와 스가랴와 므술람이라
5.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6.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7.예수아와 바니와 세레뱌와 야민과 악굽과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와 레위 사람들은 백성이 제자리에 서 있는 동안 그들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였는데
8.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9.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서론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벌써 종강입니다. 시간이 참 빠르지요?
어느 덧 한 학기를 마치고 종강예배로 드리게 되었습니다.
지난 한 학기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이제 다음 주부터 여름수련회가 시작되네요.
우리는 다음 주에는 안성수양관에서 열리는 여름 수련회에 참석하게 됩니다.
에스라가 성전 재건의 책이라면, 느혜미야서는 성벽 재건의 책입니다.
느헤미야서는 페르시아 왕의 참모였던 느혜미야가 BC444년 잠시 왕의 허락을 얻어
42,360명의 동포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도착 성벽을 52일 만에 재건하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성벽 재건 후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영적 부흥이었습니다.
이에 에스라와 느혜미야(9절)는 백성들이 영적 부흥을 위한 성회를 열었습니다.
본문 2절에 보면 ‘칠월 초하루에’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나팔절에 이스라엘 백성이 수문 앞 광장에 모여 성회를 연 것입니다.
수문 앞 광장은 예루살렘 성전의 남동쪽 문 앞의 광장으로 곧 기드론 골자기 기혼 샘 옆의 광장입니다.
당시 이 광장은 성회 뿐만아니라 재판과 공회가 열리던 성읍의 중심지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성벽 건축 후 개최된 성회 장면이 생생히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집회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부흥을 이루게 됩니다.
마침 우리는 다음 주 여름 수련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이에 저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배경으로 '수련회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다시 말해서 왜 우리가 여름수련회에 모여야 하는지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본론
그러면 왜 우리는 여름수련회로 모여야 할까요?
▶첫째; 특별한 ‘말씀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6절).
이스라엘 백성은 오늘 수문 앞 광장에 정기적으로 모였습니다.
특히 이스라엘의 3대절 기에는 30세 이상 모든 남자들이 모였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나팔절(민간력 7월 1일)입니다.
나팔절은 열흘 후에 있을 대속죄일(7월 10일)을 준비하는 절기로,
백성들이 자신과 민족의 죄를 자복하며 근신하는 기간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집회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집회가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사도행전2장의 오순절 집회였습니다.
그 집회의 강사는 예수님의 대표제자 베드로였습니다.
그 오순절 집회에서 선포된 말씀으로 하루에만 수 천명이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왔습니다.
‘또 여러 말(말씀)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행2:40-41)’
저는 2000년 여름 수련회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당시 수원과학대 새내기 박양근형제가 처음으로 수련회가 참석했습니다.
기독교 집회가 익숙지 않아 첫날에는 도망가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둘째 날 포기를 선언하고 귀가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가지장들이 겨우 설득해서 마지막 날까지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집회 마지막 날 이 형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 형제는 그 후 정말 열심히 캠퍼스 사역을 주도했습니다.
지금은 맏가지로 태권도장 관장이 되어 교회에서도 열심히 봉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성회에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럼 이제 1절에서 3절예 반복되는 단어가 무엇인지 보십시오.
바로 <율법책>입니다.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매’(1절)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2절)’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3절)’
오늘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즘 예배에 성경책을 가져 오지 않는 신자들이 많은데 참 안타깝습니다.
이번 수련회에는 성격 책을 꼭 챙기시기 바랍니다.
본문 1절 말씀을 자세히 보면 참 흥미롭습니다.
백성들이 학사 에스라에게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했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백성들은 오늘날처럼 ‘율법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성회의 중심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가끔 집회를 마치고 온 지체들에게 묻습니다. ‘어떤 시간에 가장 은혜 받았어?’
적지 않은 지체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찬양 시간입니다.’
물론 찬양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하지만 <말씀의 기초>가 없는 찬양이나 기도는 감정에 속기 쉽습니다.
이런 사람은 집회나 성회를 마치고 집에 가면 마치 거품이 꺼지듯이 푹 꺼져 버립니다.
말씀을 들어야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진정한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2절과 3절 말씀을 다시 한번 유의해서 읽겠습니다.
<제사장 에스라>(3절)를 <학사 에스라>(2절)로 불렀다는 것입니다.
에스라는 제사장으로서 율법학자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백성들은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3-5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3.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4.그 때에 학사 에스라가 특별히 지은 나무 강단에 서고 그의 곁 오른쪽에 선 자는 맛디댜와 스마와 아나야와 우리야와 힐기야와 마아세야요 그의 왼쪽에 선 자는 브다야와 미사엘과 말기야와 하숨과 하스밧다나와 스가랴와 므술람이라
5.에스라가 모든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당시 집회는 오전 내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3절).
요즘과 비교하면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당시 집회는 음향시설이 잘 되어있지 않아 육성으로 전달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4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말씀에 대한 사모함과 갈급함이 컸기 때문에 아마 시간 가는 줄 몰랐을 것입니다.
그 반증이 바로 6절입니다.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했다구요? 그렇습니다. ‘아멘! 아멘!’했습니다.
여러분도 이번 수련회에 참석하면 집회시간에 가능한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 아멘! 반응하기를 당부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름 수련회를 기대하십시오. 그리고 갈급한 심령으로 말씀을 사모하십시오.
여름 수련회는 우리 자신과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말씀이 있는 장소’입니다.
성회의 매 시간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기 바랍니다.
그리고 ‘아멘!’으로 반응하기를 바랍니다.
결국 시간 시간마다 주시는 말씀이 여러분을 변화시킬 줄 믿습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여름수련회로 모여야 할까요?
▶둘째; '회개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9절)
본문 9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
백성들은 말씀을 듣는 가운데 모두가 울었습니다(9절)
왜 그랬을까요? 자신들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회에는 이렇게 회개가 일어납니다.
여기서 잠깐 느8-9장의 구성을 보겠습니다.
우선 오늘 본문 1-12절은 나팔절 집회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13-18절은 초막절(성력 7월 15-21 일주일간)을 준수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9장 1-5절에 이스라엘 백성이 또 다시 모여 회개의 성회를 열었습니다.
느9:1 그 달 스무나흗 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 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2.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하고
3.이 날에 낮 사분의 일은 그 제자리에 서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낮 사분의 일은 죄를 자복하며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는데
여기서 1절의 ‘그 달 스무나흗 날’은 초막절 이틀 후를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 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어떻게 이렇게 한 달 내내 민족적 성회를 자주 열 수 있을까요?
이것이 부흥하는 민족의 모습입니다.
성령이 역사하면 이런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성회를 사모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모습은 신약 행2장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 말씀을 제가 읽겠습니다.
37.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단어가 바로 ‘찔림’(37)입니다.
회개는 하나님 앞에 죄가 들러날 때 일어납니다.
회개는 성령의 찔림이 있을 때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런 반응이 나타납니다.
...’ ‘우리가 어찌 할꼬!’(38)입니다.
이것은 바로 집회 가운데 성령께서 역사하신다는 증거입니다.
본문도 마찬 가지 그런 내용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성회에는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성령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모든 하나님의 성회에는 이처럼 반드시 회개가 일어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성회는 우리의 영적 크리닝(spiritual cleaning)의 장소입니다.
특별히 공동체의 죄를 함께 회개해야 합니다.
다음은 제가 지난 주 올렸던 칼럼입니다.
리민수칼럼2879 “더 이상 교회’를 위태롭게 하지 마십시오!”
<앞부분 생략>
물론 그 분이 ‘어떤 말’을 했을 때에는 분명한 목적과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분의 ‘망언’이 ‘계속’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한국교회와 복음에 ‘악영향’을 미친 다는 것이다.
내가 볼 때 이분이 ‘목사’인지 ‘정치인 인지’ 도대체 구분이 안 된다.
적어도 목사가 정치 사회적 발언을 할 때는 그 파장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목사가 정치 사회적 발언을 하거나 ‘항거’를 할 때는
오랜 시간 기도한 후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교계의 원로들을 찾아 의견을 수렴해서 신중히 발언해야 한다.
지금 일부 교계의 지도자들(?)이라는 분들이 한국교회를 망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성도들이 ‘호박씨 까듯’ 전도하면 목회자들은 한 번에 쏟아 버리는 현실이 정말 화가 난다.
한국교회의 이런 불미스러운 일들을 보면 사사 시대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사 시대도 지금처럼 주의 종들이 하나님 앞에 ‘두려움’이 없었다.
나도 부족하고 흠 많은 목사지만 그래도 ‘두려움’은 남아 있다.
나는 전목사님께 이런 충언을 드리고 싶다.
-‘정치’하지 마시고 ‘목회’에 전념 하십시오.
목사님 때문에 오히려 한국교회가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하나의 현상’은 ‘그것 이상’이 아닐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의 현상’은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습니다.
한 민족이 영적 심판을 받을 때는 그 과정이 있습니다.
하나는 백성이 타락하기 시작하여 목회자에 이르는 과정과
목회자들의 타락이 성도들의 타락을 이끄는 경우입니다.
전자는 보편적인 과정이지만 후자의 경우가 바로 남유다를 멸망에 이르게 한 아하스와 므낫세의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역대하 28:22 “이 아하스 왕이 곤고할(어려울)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했다고 했습니다.
왕하21:9 “이 백성이 듣지 아니하였고 므낫세의 꾐을 받고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여러 민족보다 더 심하였더라”
오늘 우리 시대를 보면 왜 사사시대가 떠오르면서 불길한 예감이 드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사시대는 백성들로부터 대제사장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타락했던 시기입니다.
나무로 말하면 뿌리부터 잎사귀까지 모두가 병들었다는 말입니다.
한 마디로 ‘만회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영적 위기’가 그렇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여러분!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심각한 영적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이사야 55: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대하7:14)’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그렇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가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겸손히 무릎 꿇어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나의 죄와 허물을 사하여 주옵소서!-
-우리 조상과 민족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지금은 이렇게 자복해야 할 때입니다.
이번 여름 수련회는 우리가 함께 하나님 앞에 무릎을 드려 죄를 자복해야 할 '회개의 장소'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여름수련회로 모여야 할까요?
▶셋째; ‘결단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BC444년경 일입니다.
이보다 12년 전에도 바로 이 장소에서 집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상황을 잠깐 소개하겠습니다.
당시에는 에스라가 포로민들을 이끌고 2차 귀환을 했습니다.
스룹바벨에 의해 성전이 재건 된지 거의 60년이 지났을 때의 일입니다.
에스라가 귀국해 보니 기막힌 일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금하신 이방여인과 통혼하여 가정을 이룬 백성들이 많은 것입니다.
이일에 지도자들이 앞장서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딸을 맞이하여 아내와 며느리로 삼아 거룩한 자손이 그 지방 사람들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방백들과 고관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하는지라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스9:2-3)‘
정말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에스라는 전 백성들에게 이렇게 명령합니다.(에스라10장)
7. 유다와 예루살렘에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들에게 공포하기를
<너희는 예루살렘(성전 앞 광장)으로 모이라>
8.누구든지 방백들과 장로들의 훈시를 따라 삼일 내에 오지 아니하면
그의 재산을 적몰하고 사로잡혔던 자의 모임에서 쫓아내리라 하매
9.유다와 베냐민 모든 사람들이 삼 일 내에 예루살렘에 모이니 때는 아홉째 달 이십일이라 무리가 하나님의 성전 앞 광장에 앉아서 이 일과 큰 비 때문에 떨고 있더니
10.제사장 에스라가 일어나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범죄하여 이방 여자를 아내로 삼아 이스라엘의 죄를 더하게 하였으니
11.이제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그의 뜻대로 행하여
그 지방 사람들과 이방 여인을 <끊어 버리라> 하니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스라의 이 말을 듣고 어떻게 했을까요?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스라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기고 결단했습니다.
12.모든 회중이 큰 소리로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의 말씀대로 우리가 마땅히 행할 것>이니이다. 아멘!
제 개인적으로도 수련회는 제 인생을 진로를 결정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대학 1학년 때인 1977년 겨울 금식사경회 에스더서 말씀을 듣고
캠퍼스 복음화의 비전을 받았고
대학 4학년 때인 1980년 8월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민족 대성회를 통해 민족 복음화의 비전을 받았습니다.
제가 대학 4학년 되는 여름의 일입니다.
그 집회는 연인원 100만 성도가 모였던 민족적 집회였습니다.
엄청난 무더위였지만 폭염보다 더 뜨거운 집회였습니다.
이렇듯 수련회는 저에게 제 일생의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진 곳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비상한 시국입니다.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전쟁보다 더 끔찍한 시대입니다.
부모 학대로 숨지는 어린이가 한 해 38명이라고 합니다.
요즘 하루가 머다하고 동반자살 뉴스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여러 경제지표들이 심상치 않습니다.
그 만큼 불경기 인데다가 정책적 시행착오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걱정은 청년들의 고용 부진에 따르는 여러 문제들입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바로 지금이 믿음의 청년들이 해야 할 일이 기도입니다.
바로 이럴 때 ‘우선순위’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나는 어떤 난관이 와도 믿음을 잃지 않겠다-는 신앙의 결기를 보여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는 어떤 풍파가 몰려와도 흔들림 없는 지체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신앙의 깊이와 뿌리가 없는 사람은
머지않아 세상 속에서 세상에 동화되고 멸망의 길로 갈 것입니다.
그 차이는 하나입니다.
바로 <신앙의 영적 내공>입니다.
‘영적 내공’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신앙의 훈련을 통해 축적되어진 ‘영적 견실함’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15:58)”
또한 영적 내공은 그 어떤 난관 앞에서도 ‘후퇴’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10:39)
이런 영적 내공은 꼭 신앙의 연륜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골리앗을 맞섰던 다윗을 보십시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여름수련회는 바로 신앙의 내공을 키우는 중요한 장소가 될 것입니다.
다양한 강사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과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비춰 보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인생의 목표와 진로가 결정되기도 하고 수정되기도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결단할 것입니다.
그곳이 우리가 인생의 노정을 새롭게 ‘결단할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여름수련회로 모여야 할 세 번 째 이유입니다.
◆결론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왜 여름수련회로 모여야 하는가?’에 대하여 알았습니다.
우리가 여름수련회에 참석해야 할 이유는
▶첫째; 특별한 ‘말씀의 장소’이기 때문이며,
▶둘째; '회개의 장소'이기 때문이며,
▶셋째; ‘결단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자세로 이번 여름 수련회에 참석해야 할까요?
첫째, 무엇보다 ‘사모함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둘째, 집회 중에는 ‘온전히 말씀을 집중하고 경청’해야 합니다.
셋째, 영적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 즉 결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먼저 ‘모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히브리서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범죄 할 때마다 부르셨습니다.
○스바냐 2장 1-2절
1 수치를 모르는 백성아 모일지어다 모일지어다
2 명령이 시행되기 전, 광음이 겨같이 날아 지나가기 전,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임하기
전,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그러할지어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다음 주 월요일에는 오늘 우리의 수문 앞 광장인 안성수양관으로 모이십시오.
그곳은 우리에게 야곱의 벧엘이 될 것입니다(창35:3).
그곳은 우리에게 사무엘의 미스바가 될 것입니다(삼상7:1-14) .
그곳은 우리에게 엘리야의 갈멜산상이 될 것입니다(삼상18:42).
그곳은 우리에게 예루살렘의 수문 앞 광장이 될 것입니다(느8:1).
올 6월의 안성은 뜨거울 것입니다.
그곳은 전국에서 모인 청년대학생들의 기도가 하늘을 찌를 것입니다.
주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우리에게 성령의 단비를 부어주실 것입니다.
성령이 하늘 가르며, 땅을 흔들며 임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곳에서 놀라운 경험을 할 줄 믿습니다.
사모함으로 준비하는 지혜로운 제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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