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이재훈목사

분별 있는 사랑을 위한 기도 (빌립보서 1:9~11)

새벽지기1 2018. 3. 16. 11:57


“지혜와 총명으로 분별력 있는 사랑이 더욱 풍성해지고,
순결하고 흠 없고, 열매로 충만하고, 영광 올리는 삶 사십시오.” 

 

기도를 배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기도함으로써 기도를 배우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믿음의 사람들의 기도를 들음으로써 기도를 배우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부모를 통해 언어를 배우듯이 믿음의 선배들의 기도소리를 들음으로써 기도를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부모가 기도소리를 들려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의 기도를 통해서 기도를 배웁니다. 아브라함의 기도, 다니엘의 기도, 모세의 기도, 다윗의 기도, 한나의 기도, 사무엘의 기도, 사도 바울의 기도를 통해 기도의 영적보화가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특히 사도 바울은 자신이 어떤 기도를 드리고 있는지를 편지에 기록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교회와 성도들을 위하여 드렸던 기도를 편지에 요약해서 적어놓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자신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성도들이 읽음으로써 마치 함께 기도하는 것처럼 영적인 양육을 받는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면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에 사도 바울이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쓴 편지에 적어 놓은 기도가 나옵니다. 사도 바울의 기도는 중보기도가 대부분입니다. 기도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중보기도로 전 세계를 품고 열방을 위해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 기도를 놀랍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사회를 향하여 지적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비판과 지적만으로는 절대 세상이 변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위대한 사람은 이 사회를 품고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누군가에게 권면하고, 교훈을 주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위해 충분히 기도하고, 그 사람이 변화되고자하는 내용을 전해준다면 그 영혼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위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으로 여러분 모두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께서 내 증인이십니다”(8절).

사도 바울은 사랑으로 기도했습니다. 사랑과 기도는 비례합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해주고, 나눠도 그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는다면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교회 성도들은 사도 바울에게 기쁨과 감사를 주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지금보다 더 성숙하기를 기도했습니다.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현재 영적 상태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의 영성에 대해서도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배고픔과 목마름 그리고 변화

 

“나는 이미 얻었거나 이미 온전해진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것을 붙잡으려고 좇아갑니다. 이는 나도 그리스도 예수께 붙잡혔기 때문입니다”(12절).

사도 바울의 서신을 통해 우리는 복음을 깨닫고, 십자가의 진리를 깨닫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미 얻은 것도 아니요, 붙잡은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잡으려고 쫓아가고 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닮아가는 일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빌립보교회 성도들은 자신의 형편과 처지에 철저하게 만족했습니다. 여러분, 환경, 물질, 형편에 대하여는 철저하게 만족하되 우리의 영혼이 주님을 닮아가는 일에 있어서는 만족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 두 가지가 정반대가 될 때가 있습니다. 환경과 상황에 대해서는 만족함이 없으면서 신앙생활에 대해서는 ‘ 이만하면 됐지’ 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교만에 빠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그러했듯이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지금의 신앙생활에 만족하지 않고, 더 깊은 영성으로 변화되기를 갈망했습니다. 그 갈망이 기도로 변했습니다.


여러분, 살아있는 생명은 언제나 변화합니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은 갈증을 느끼는 것입니다. 배고픔과 목마름을 느낍니다. 배고픔과 목마름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만약 우리의 영혼이 영적인 배고픔이 없다면 어떨까요. 영혼이 병들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갈망, 변화에 대한 굶주림과 목마름, 하나님께 대한 갈망이 우리의 영혼이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시편 119편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펴서 읽지 않으면 영혼의 배고픔이 찾아와서 견딜 수 없다고 했습니다. 굶주림에 사로잡힌 사람이 음식을 보고 헐레벌떡 먹듯이 하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기도하는 시간은 가는 줄도 모릅니다. 이러한 갈망이 사도 바울 자신에게 있었고,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있기를 원했습니다. 

 

지혜와 총명으로 분별 있는 사랑을

 

“나는 여러분의 사랑이 지혜와 모든 총명으로 더욱 풍성하게 돼서”(9절).

여기서 중요한 기도제목 두 가지가 나옵니다. 첫째, 그들의 사랑이 지혜와 총명으로 더욱 더 풍성해지기를 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사랑에 주목했습니다. 빌립보교회 성도들은 분명 사랑이 있는 성도들이었습니다. 사랑이 없었다면 첫날부터 지금까지 복음의 코이노니아 역사에 헌신적으로 참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랑이 머물러 있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여러분, 영적 갈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있는 사랑이 더욱 풍성해지기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이나 어떤 사람과 부딪히면 “하나님 이 상황 좀 어떻게 해주세요”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사랑이 더 풍성해지기를 원하십니다. 고난이 닥쳐오면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이 사랑입니다. 어려움이 닥치면 가장 먼저 식어버리는 것이 사랑입니다. 내가 아프면 다른 사람 생각이 잘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난 속에서도, 어떤 상황 속에도 사랑이 풍성하게 흘러넘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이 어떻게 풍성해집니까. 지혜와 총명으로 풍성해진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지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하고, 진리를 깨닫는 지식을 의미합니다. 단순한 정보가 아닙니다. 진리를 깨닫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지식이 지혜입니다. 총명은 지혜와 친척관계입니다. 내면을 보는 눈을 의미합니다. 내면의 나침반입니다. 이 지혜와 총명을 통해서 사랑이 풍성해집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이지만 무분별한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는 때로 무조건적인 사랑과 무분별한 사랑을 혼합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도 누구든지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랑이지만 분별 있게 사랑해야 합니다. 누군가를 분별 있게 도와줘야 합니다. 선교를 잘못 이해하면 가난한 사람들을 물질적으로만 도와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방법은 위험합니다. 그래서 지혜와 총명으로 사랑이 풍성해져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그리스도인을 핍박했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들의 사랑은 지혜와 총명으로 분별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잡으러 온 자들을 향하여 제자들은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쫓아 저들을 진멸하라하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에게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은 있었지만 지혜와 총명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랑은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최선의 것이 무엇인지

 

둘째, 최선의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게 기도했습니다.

“최선의 것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10절).

이 기도제목의 핵심은 분별을 위한 기도입니다. 최선의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악한 것과 선한 것을 분별하고, 선한 것과 더 선한 것을 분별하고, 더 선한 것과 가장 선한 것을 분별해야 합니다. 악한 것과 선한 것을 분별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선한 것과 더 선한 것을 분별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더 선한 것과 가장 선한 것을 분별하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이 세상의 많은 다툼과 분열은 각자가 선하다고 믿는 것끼리의 충돌입니다. 어느 것이 더 선한지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선한 것, 지극히 선한 것이 무엇입니까. 로마서 12장 말씀대로 ‘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하신 뜻’ 입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능력, 이해력, 통찰력, 하나님의 인도하심,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가 그를 위하여 얼마나 기도를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어거스틴의 <고백록> 후반부를 보면 어머니에 대한 존경과 사랑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교회 성도들 향하여 최선의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기 위하여 기도한 것처럼 어거스틴의 어머니도 그가 최선의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기를 소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 덕분에 어거스틴이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이여, 내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영적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십시오”(롬 1~2절).

여기서 세 가지 중요한 단어가 나옵니다. 1절에 ‘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는 것은 헌신을 의미합니다. 둘째,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변하라”는 단어도 중요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십시오”라는 말씀은 분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것을 정리하면 드림, 변화, 분별입니다. 우리는 때로 이 말씀을 거꾸로 해석합니다. 내가 먼저 분별해야 되고, 그 다음에 변화를 받고, 그 다음에 드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적 체험의 순서는 정반대입니다. 우리의 몸을 거룩한 산제물로 드리면 마음에 변화가 오고, 그 변화된 마음이 분별력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이 순서를 거꾸로 적용하면 안 됩니다. 먼저 드려진 삶에서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고, 분별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평생토록 이뤄지는 것입니다. 기도와 묵상을 쉬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깊은 교제를 나누고 있을 때 이뤄집니다.


우리가 사랑이 지혜와 총명으로 풍성해지고 최선의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면 어떤 삶을 살게 됩니까.

첫째, 순결하여 흠이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순결이라는 단어는 햇빛 앞에서 비춰본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나온 영어단어가 ‘ Sincerity’ 입니다. 신실하다. 순수하다. 순결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햇빛 앞에 비춰진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어둠속에서도 빛 가운데 있는 것과 같고, 깊은 밤에도 한낮에 있는 것과 같고, 어디에 있든지 예배당에 있는 것과 같고, 은밀한 공간에서도 모든 사람 앞에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이 바로 순결하여 흠이 없는 것입니다.

둘째, 의의 열매로 충만한 삶을 살게 됩니다. 순결하여 흠이 없는 삶은 의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주님이 의롭다하신 그 의의 씨앗이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열매를 의미합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의의 열매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 열매를 때에 따라 사랑, 기쁨, 위로, 격려, 섬김이라고 합니다.

셋째,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순결하고 흠이 없는 삶이 의의 열매를 맺고, 결국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의 따님인 룻 그레이엄은 성도란 예수님을 믿기 쉽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예수님 믿기 쉽게 만드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저 사람을 보니 참 예수님 믿고 싶다”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입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위하여 드린 기도가 우리 마음속에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사랑이 지혜와 총명으로 풍성해지기를 원합니다. 날마다 삶 속에서 최선의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