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에리히 프롬의 장기 베스트셀러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을 몇몇 성도와 함께 다시 읽고 있다.
책 제목이 암시하듯 이 책은 사랑에 대한 보편적 오해를 겨냥하고 있다.
사랑은 어느 날 우연히 찾아오는 것이라는 오해,
사랑할 대상 혹은 사랑받을 대상을 만나기가 어려울 뿐이지
제대로 만나기만 하면 누구나 사랑받고 사랑할 수 있다는 오해,
사랑은 굳이 배울 필요가 없다는 오해,
사랑은 즐거운 감정이라는 오해를 겨냥하고 있다.
즉 사랑은 지식과 의지적인 노력을 통해 갈고 닦아야 하는 기술이라는 것이다.
옳다. 사랑은 기술이다.
사랑은 테크닉이나 스킬(Technic, Skill)로서의 기술이 아니라 아트(Art)로서의 기술이다.
사랑은 연애의 기술이 아니라 삶의 기술이다.
예수님은 율법 중의 율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고,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대답하셨다(마22:34-40).
이 말은 사랑이 곧 삶이라는 말이다. 사랑이 삶의 핵심이요 전부라는 말이다.
사랑이 삶의 원소요 에너지요 기술이라는 말이다.
인간은 모름지기 사랑을 위해 존재한다는 말이다.
사랑 없이는 인간이 될 수도, 인간답게 살아갈 수도 없는 존재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마땅히 사랑의 기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기술을 배우고 익혀야 하리라.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사랑의 기술을 가르치고 배우게 해야 하리라.
아니, ‘사랑학’이야말로 온 생애의 필수 과목이어야 하리라.
국어, 영어, 수학, 과학보다 사랑을 공부하는 시간이 더 많아야 하리라.
실습을 포함한 사랑학 전 과정을 이수하게 한 후 사회로 내보내야 하리라.
이것이 가장 인간다운 교육과정이리라.
이것이 세상을 바꾸는 진정한 혁명이리라.
물론 사랑은 평생 배우고 익혀도 턱없이 부족한 공부다
사랑처럼 어렵고, 사랑처럼 고도의 이해와 의지가 요청되는 것도 없다.
사랑은 정말 완전 정복이 어려운 최고의 기술이다. 아니, 최상의 예술이다.
그런데 최상의 예술인 사랑을 가르치고 배우는 학교가 없다.
다들 진짜는 빼놓고 엉뚱한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데 돈과 시간과 삶을 낭비하고 있다.
다들 사랑에 울고 사랑에 몸부림치면서도 정작 사랑을 배우려 하지는 않는다.
오류다. 심각한 오류다.
사랑은 배울 필요가 없다는 오해가 하도 깊어서 빚어진 오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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