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조병수교수

시집가고자 함이니 (딤전 5:11-12)

새벽지기1 2017. 1. 24. 08:42


기독교는 금욕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세상살이를 완전히 끊고 산이든 들이든 어느 폐쇄된 공간에 갇혀 수도사처럼 생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살이에서 멀어질수록 훌륭한 영적인 신자가 된다고 생각을 한다. 사실 이런 생각은 역사적인 문제였다. 기독교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피세주의를 염원했던 개인과 단체가 수없이 많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오늘날에도 기독교를 이원론적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에게서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이다. 우리 주위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심지어 신앙교육을 잘 받았다고 하는 신자들까지도 기독교를 금욕 종교로 받아들이는 오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독교는 금욕종교 아니다

디모데전서만 잘 읽어보아도 이런 생각이 얼마나 그릇된 것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이미 앞에서 사도 바울은 기독교가 혼인을 금하고 음식을 폐하는 종교가 아니라는 생각을 분명하게 밝혔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이런 경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거센 비판을 가하는 것을 마다 않았던 것을 볼 때 확실하게 드러난다(딤전 4:3). 특히 사도 바울은 정상적인 혼인생활이야 말로 기독교가 지향하는 올바른 세상살이의 특징들 가운데 중요한 하나임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사도 바울이 감독과 집사는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고 말할 때, 더 나아가서 명부에 올릴 과부는 한 남편의 아내이었어야 한다고 말할 때 이런 생각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젊은 과부들은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가고자 하기 때문에 명부에 올리는 것을 거절하라고 말했을 때(11절) 기독교를 금욕주의에 편승시키려고 했던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젊은 과부가 다시 혼인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금지하기는커녕 오히려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다. “나는 젊은(과부들이) 시집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기를 바란다”(딤전 5:14). 사도 바울이 젊은 과부들을 거절하라고 말하는 이유는 이들이 마치 혼인문제에는 초연한 것처럼 행동하면서 주님께만 헌신하겠다고 장담하고는 결국 시집가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젊은 과부들이 혼인하는 그 자체에 잘못이 있다는 말이 아니라 혼인을 포기하고 주님을 따르겠다고 한 후에 결국은 혼인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말이다.


사도 바울은 이런 행동을 가리켜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것”(11절)이며 “처음 믿음을 저버리는 것”(12절)이라고 불렀다. 젊은 과부들이 처음부터 재혼을 통하여 주님께 영광을 돌리겠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탄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주님께 헌신하기 위하여 혼인도 고사하겠다고 결심한 후에 결국은 시집을 가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것이며 처음 믿음을 저버리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것과 처음 믿음을 저버리는 이유를 정욕 때문이라고 간주하였다. 사실 여기에 사용된 정욕이라는 말이 꼭 성적인 욕구를 가리키는 것만은 아니다. 이 단어는 무엇인가에 과욕을 부리는 태도를 의미할 때 사용된다. 예를 들어 사치에 과욕을 부린다든가 하는 경우이다(계18:7,9 참조).


여기에서는 이 단어가 혼인이라는 말과 함께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문맥상 정욕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처음에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때문에 혼인도 마다하던 사람이 나중에는 성적인 욕구를 이기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너무나도 허망한 일이다. 그런데 이런 허망한 일이 어디 정욕과만 관계되는 일이겠는가? 이것은 우리의 모든 세상살이에도 관련되는 일이지 않은가?

금욕 과잉 욕심으로 변질 돼

기독교가 금욕종교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면 세상살이를 신앙적으로 승화시키는 법을 터득해야 할 것이다.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주님의 영광을 표현하는 것이 될 수 있다면(고전 10:31) 주님을 위해서 혼인하지 않겠다고 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혼인을 주님의 영광을 표현하는 것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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