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김형익목사

[기독교강요](21) 이신칭의(3.11~13) 김형익목사

새벽지기1 2016. 6. 20. 12:53


의롭다 하심

: 이신칭의는 기독교가 서고 넘어지는 교리(마르틴 루터)


1. 성도의 구원에 있는 이중적 은혜
A. 칭의: 그리스도의 대리적 속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아버지로 모시는 은혜
B. 성화: 그리스도의 영에 의해서 거룩하게 됨으로써 흠 없고 순결한 삶으로 나아가는 은혜


2. 칭의 안에 있는 두 가지 은혜(롬 4:6~7)
A. 죄사함: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의 가리움을 받는 사람’(롬 4:7)
i. 칭의 없는 죄사함은 없다(3.11.3).
ii. 죄가 그리스도의 의로 덮여졌다.
B.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 ‘의로 여기심을 받는’(롬 4:6)
i. 칭의로써 죄사함을 받은 사람은 죄짓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 피조물이 된다.
ii.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로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의를 얻는다.


3. 칭의는 구원진리의 정수이고(합 2:4; 롬 1:16; 3:28; 엡 2:8), 종교(기독교)의 중심축이다(3.11.1).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


4. 칭의는 의의 전가의 상태, 즉 성도가 전가 받은 의를 누리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그 본질이 있다(3.11.21~23).

그리스도로 옷 입고 그의 몸에 접붙임을 받은(연합) 성도에게는 그분의 의가 전가된다. 성도들은 신비한 연합으로 그분과 교제한다.


5. 이 연합은 오직 믿음으로 일어난다. 믿음은 구원의 도구적 원인이며 공로가 아니다.
A.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기 때문에(갈 3:21~22)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을 사람은 없다(3.11.19).
B. 값없이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되고(롬 3:24) 하나님은 자신을 믿는 자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다(롬 4:5).
C. “믿음은 의를 받기 위한 그릇이다.”(3.11.7) “칭의에 있어 믿음은 수동적인 것에 불과하다. 믿는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는 일에 무엇을 기여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없는 것을 그리스도께로부터 받게 하는 것에 불과하다.”(3.13.5)


6. [믿음과 행위의 관계]
A. 믿음의 의와 행위의 의는 양립할 수 없다. '믿음으로 아버지께로부터 난 의'(빌 3:9) 밖에 없다(3.11.13). 로마카톨릭은 두 의가 함께 작용한다고 본다. 즉, 믿음의 선물을 받은 자가 믿음으로 선행을 함으로 의에 이른다는 것이다.
B. 우리는 자신의 행위를 보지 말고 아버지의 자비와 아들의 순종에서 공로를 찾아야 한다(이것이 믿음이다). 믿음의 의는 하나님의 자비와 그리스도의 완전함을 의뢰하고 확신하며 바라는 것이다(롬 11:6). (3.11, 14, 16).
C. 의롭다 함을 얻는 믿음은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이다(갈 5:6). 믿음에는 사랑이 따른다.


7. [법정적 칭의]

칭의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를 법정적으로 선포하심에 있다. 하나님 앞에 의로운 인생은 없다(시 143:2; 130:3). 인간 앞에 자책할 것이 없어도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인생은 없다(고전 4:4).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의는 더러운 걸레다(사 64:4).
적용: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의 특성


8. [주님의 영광을 끝까지 보존한다(3.13.1~2)]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조금이라도 인식하는 자들, 또 중생한 자들은 자기를 자랑하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한다. 자기 영광을 벗어버려야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
A.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했을 때(고전 1:31; 렘 9:23~24) 그가 말하는 뜻은 사람이 자기를 자랑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손상된다는 것이 아닌가? 확실히 바울은 이 말씀을 이런 뜻에서 해석해서 우리가 주만을 자랑하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라고 가르쳤다(고전 1:30~31). 그가 말하는 뜻은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반역하며 하나님의 영광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진다는 것이다. (3.13.1).
B. 우리는 자신에 대한 자랑을 완전히 버리지 않고서는 결코 참으로 하나님을 자랑할 수 없다. (3.13.2)
C. 자랑치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엡 2:8~9)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라.


9.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양심이 평화를 누린다. (3.13.3~5)
A.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자유함으로 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직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선언하신 죄용서와 칭의만이 양심을 자유하게 한다. (3.13.4)
B. 이신칭의는 양심에 평안과 기쁨을 준다(롬 5:1). 이 확신은 오직 성령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다. (3.13.5).
C. 하나님의 노여우심을 푼 그리스도의 희생을 생각하라.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노를 견디면서 수행하신 속죄 행위가 하나님의 노여우심을 풀었다는 확신이 없는 사람은 언제나 떨고 있을 것이다. 요컨대 우리는 우리의 구속자이신 그리스도의 심한 고통에서만 우리의 평안을 찾아야 한다. (3.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