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현수:조직신학

신현수 박사의 조식신학 (59)

새벽지기1 2016. 6. 12. 22:55


이제부터 에밀 브루너(Emil Brunner)의 하나님 형상 이해를 살펴보려고 한다. 이 주제에 관한 그의 저술이 현대 신학자들 가운데 가장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하나님 형상론은 1939년에 출판된 ‘반역하는 인간’(Man in Revolt)에 잘 나타나 있다. 칼 바르트(Karl Barth)가 하나님 형상론을 발전시킨 것은 바로 그에 대한 반발이었다. 브루너와 바르트 사이의 하나님 형상에 관한 신학적 논쟁은 1945년 바르트가 그의 ‘교회교의학’(Church Dogmatics) 3권을 출판하기까지 15년간 지속되었다.


하지만 그 후로는 두 사람의 신학 사상이 변화하였다. 브루너는 주로 신학적 용어를 수정했고, 바르트는 자신의 사상을 매우 자세히 그리고 많이 발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브루너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래서 두 사람의 사상에는 공통적인 것이 놀라운 정도로 많았다, 비록 어떤 면에서는 여전히 다른 점이 남아 있지만. 그의 책에서 브루너는 전제 없이는 일관된 인간론을 가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사람이란 너무나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에 만일 그 본성이 지니고 있는 어떤 특성을 뽑아 근본적인 것으로 삼고 해석의 주된 원리로 사용하지 않고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 존재의 신비를 풀기 위해 여러 핵심 원리들이 시도되었다. 가령, 자연 현상의 인과관계 원리를 사용하면 자연주의적 인간관이 생기고, 영의 관념을 도입하면 유심론적인 인간관에 이르게 된다. 브루너에게 참된 해석의 원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것은 인간 이해가 구약과 신약이 인간에 관해 말한 것에 틀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하신 하나님의 아들 곧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질 때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성품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를 갖기 위해서는 성령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증거하고, 구약과 신약의 증언이 가리키는 그리스도를 구원의 주로 받아들이는 믿음을 일으키는 것이 필요하다.


두 말 할 것 없이, 브루너는 여러 학문이 자기 영역에서 인간과 인간의 본성에 관해 권위있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인간에 관한 기독교적 이해가 일반 상식에 바탕을 둔 경험이나 고유한 영역을 가지고 있는 학문이 인간에 관해 합리적으로 진술하는 것과 충돌되지 않는다는 것이 브루너의 첫째 원리이다. 그가 일반적으로 주장하는 원리는 어떠한 학문이 인간 본성의 핵심에 더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기독교 신학의 합리적 진술과 충돌되는 진술을 할 가능성이 더 많아진다는 것이다.


기독교적 지리학이나 수학이 결코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기독교 심리학이 있을 수 있다, 심리학이 감정이나 다른 기본적 과정을 다루는 과학만이 아니라 개인적 삶을 살아가는 인간 존재의 본성을 다루는 과학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기독교적 인간 이해의 원천일 뿐만 아니라 인간 존재의 원천이다. 인간 존재는 하나님의 말씀과 아주 특별한 관계를 갖는다. 인간에게 존재와 아는 것은 서로에게 아주 특별한 관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지음 받았다. “말씀이 없이는 그 어떤 것도 지음 받지 않았다.” 그러나 오직 사람에게만 이 말씀이 또한 빛 곧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된 빛”이다.
브루너에게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말한 것은 결코 은유로 말하는 것이나 비유가 아니라 사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 사람이 되듯이, 태초의 창조 때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음 받았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낳는다는 것이 말씀을 듣고 믿는 것 곧 하나님의 말씀과 영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뜻하듯이, 태초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람을 지으신 것은 사람이 단지 생성물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로 지음 받았다는 것을 뜻한다.<계속>

출처j...복음신문....피어선신학전문대학원 조직신학 교수...신 현 수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