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박영선목사

전도 / 박영선목사

새벽지기1 2016. 6. 10. 07:31


전도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결론 짓게 되면" 그러면 전도는 못하게 됩니다" 라는 질문이 가장 크게 대두됩니다. 이 전도의 문제와 비슷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기록에 대한 문제입니다. 즉, 성경기록에 대하여" 성경기록은 다 신화이다. 희랍신화와도 같이 표현되어 있다." 라고 시비를 거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시비에 대하여 박형룡 박사는 그의 저서에서 답변하기를 " 이 사람아 , 사람이 석양에 지는 해를 보고 "석양의 해가 서산마루에 뉘엿뉘엿 지고 있다. 라고 말하지, 지구의 자전으로 말미암아 태양의 직사광선이 직립한 인간의 눈동자에 수직으로 비치고 있다. "라고 표현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라고 했습니다.


해가 서산 마루에 왜 걸리겠습니까? 어떻게 될려구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표현하는 법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것은 수사학에 관한 문제이며 , 한 사람의 상상력과 정서의 수준에 관한 문제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실을 다 알면서도 말은 그렇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전도할 때의 표현방식도 이와 같습니다. 예수를 믿으십시오.

예수를 믿어야 천국에 갑니다. 그렇게 살아서 되시겠습니까? 라고 우리는 얘기를 하는 법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구원받을 자인지 아닌지를 우리는 모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잘된 일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 이사람은 택한 자 저 사람은 택함 받지 못한 자 라고 알린다면, 우리는 전도라는 것을 할 기회가 없게 될 것입니다. 전도할 기회가 없으면 천국에서 상받을 이유가 없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구속사역의 동역자로 대접하시기 위하여 그 사실을 감추어놓으신 것을 우리는 기뻐해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전도를 하나 안 하나 똑같네! 라고 거꾸로 물어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결국은 놀고 싶다는 얘기에 불과합니다. 그런 분은 묻지 말고 그냥 노십시오. 놀다가 많이 얻어맞고 돌아오십시오. 성경은 "미련한 자를 고치는 방법은 채찍밖에 없다"고 잠언서를 통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행할 수 있는 영역과 우리가 이해해야 할 영역을 분리해서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을 향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된 사실을 표현하는 방법은 설명조가 아닙니다. 우리는 오늘도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고 외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이 조건이 된다는 뜻은 분명히 아닙니다.

기독교를 이것보다 더 좋게 , 더 잘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우리에겐 없습니다. 이렇게 선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금 이 말씀들을 근거로 해서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발전하기를 바랍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혜로 말미암아 분명한 결과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또한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에 대해서 하나님은 보통 일을 이런식으로 하시더라. 또 저런식은 안좋아하시더라 와같이 하나님의 성격을 분별해내는 감각이 풍부해져야 합니다. 요즈음 뜻밖에도 전도가 굉장히 기술화되어 가는 것을 봅니다. 다른 말로 하면 , 전도하는 자들이 완전히 테크니션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전도인들이 여러 가지로 성공의 확률이 높은 방법들을 고안하고 있는데, 이런 모든 노력이 단순히 방법을 모색한다는 뜻으로가 아니라 우리의 열심의 표현 으로 나타나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전도를 잘 하기 위해 테크닉화하는 것이 , 그렇게 하면 효과적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사실은 우리의 정성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 복음에 대한 우리의 열심이고 한 영혼을 사랑하는 정성이지 그래서 전도가 잘 된다는 법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전도란 미련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도란 것은 성경이 전도라는 방법을 우리에게 요구하여 우리가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방법으로 해서는 되지 않았음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 되어달라는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전도란 한 영혼을 구원하는 방법으로는 제일 나쁜 방법인 셈입니다.

그것은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과 같습니다. 한쪽은 전쟁의 달인이요 한쪽은 소년입니다. 한쪽은 거대한 힘과 장비를 갖춘자요 한쪽은 왜소하며 거기에다 아무런 살상도구도 없습니다. 이 싸움에서 다윗이 이김으로 다윗의 실력이 골리앗보다 뛰어났다고 생각한다면 성경의 의도와는 다른 것입니다. 다윗의 승리는 이스라엘의 보호자가 군사력이 아니라 만군의 주 여호와임을 분명케 하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윗의 승리야말로 다윗 자신에게는 승리할 인간적 조건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 전도란 논쟁이나 기적적 증명이나 또는 권세 같은 것이 전혀 배제된, 평범한 신자의 가장 평범한 권면이기에 사실 죄의 사슬과 그 권세를 깨뜨려 죽은 생명을 소생시키는 방법으로는 가장 무력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일꾼을 부르실 때 지혜자나 능한 자를 뽑지 않으신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서 세상의 지혜있는 자와 강한자를 부끄럽게 하시려 하기 때문이랍니다. 즉 , "세상의 지혜와 능력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깨우쳐주시고 값없이 주셔야 얻는 것이다. 이런 결론을 모든 구원을 얻은 자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에게 있어서 전도란 , 우리가 전도를 해야만 구원의 사역이 이뤄지고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못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 일이 이루어지는 어떤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들어 쓰시고 구속사에 우리를 동참케 해주시는 것이 전도입니다. 그것 자체가 은혜입니다. 그래서 전도란 것은 우리가 열심히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 능력이나 내 수준에 의한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값없이 은혜로 부르셨고, 다만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사 구원하신 것처럼 오늘도 한 영혼을 구원하시는 그 일에 나를 쓰셨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 전도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내 손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것이라는 사실을 가장 잘 나타내는 방법 또한 전도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쓰임을 받고, 그 쓰임받는 방법 자체가 전도이므로 그렇게 그 일에 일조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