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프란시스 쉐퍼

쉐퍼의 사회 개혁운동의 시대적 이해(10) '시민 불복종 운동'

새벽지기1 2016. 6. 2. 07:14


시민 불복종 운동

1973년의 낙태 합법화의 결정을 반대하면서 시작된 그의 진리의 실천 운동은 1974년에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것인가?』를 제작하고 저술하면서 그 이론을 세웠으며,『인간,그 존엄한 생명』(Whatever Happended to the Human Race?)를 제작과 저술함으로서 좀더 적극적인 입장을 나타냈던 쉐퍼는 1981년에 복음주의 교회에 떨어진 폭탄과도 같은 책을 저술하였다. 이책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독재정부에 저항하든지 아니면 그들을 너그럽게 용서하든지 둘중의 하나라고 선언한 『Christian Manifesto기독교 선언(1981)』이었다.

이러한 행동에 대하여 쉐퍼에 대한 적극적인 비판세력이 생기기도 하였으며, 또 어떤이들은 이 책을 통하여 큰 자극을 받기도 하였다. 『Christian Manifesto기독교 선언(1981)』은 쉐퍼로 하여금 처음으로 정치적 행동주의자라는 이름을 갖게 했다. 쉐퍼는 낙태 문제에 대한 대법원의 모습이 절대적인 기준을 가진 판결이 아니라 다수의 원함을 판결하는 자의적인 법안임을 비판하면서 그러한 법안이 생성된 배경에는 세계관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음을 분명히 하였다. 이러한 비판을 서적과 영화, 그리고 강연을 통하여 알린 쉐퍼는 이것이 법의 문제만이 아니라 바로 정치적인 문제까지도 포함하고 있음을 인식하였다.

특별히 정부에 대한 그의 선언은 그의 후기 사역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사회학적인 법의 현실에 대해서 그리스도인 법률가들과 교회 지도자들 그리고 교육자들이 경고의 나팔을 불지 않았기에 오늘날과 같은 인본주의 세계관이 세상을 움직이는 결과가 되었다고 비판을 한다. 특별히 복음주의 지도자들의 침묵을 비판하기를 그들 역시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도 거의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보아왔던 지도자들은 과도하게 염세적인 기독교,즉 플라톤적 영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복음주의 지도자들의 영성은 삶의 전 영역에 걸친 그리스도의 주권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종종 영성은 매우 작은 영역에 가두어 졌습니다. 종종 복음주의자들의 궁극적인 목적이 자신들의 계획만을 보호하려는 것처럼 보여 졌습니다"

쉐퍼는 이러한 복음주의 지도자들의 모습은 여러 원인중에 하나인 잘못된 영성에 기인한 것이라고 분석하면서 18세기의 부흥운동을 찬양하는 많은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18세기 부흥운동을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고 강조한다. 18세기의 부흥운동의 요체는 개인 구원운동과 더불어 사회참여 운동도 요구하였다는 것이다. 앞에서 살펴 보았던 웨슬리,휫필드,샤프츠베리경,윌버포스 뿐 아니라 휘튼대학의 설립자인 블랜처드, 그리고 오벨린 대학의 학장이었던 찰스 피니와 같은 복음주의자들은 노예제도와 같은 사회참여에 놀라운 관심을 가졌다는 것이다. 쉐퍼는 이들 모두는 단호하게 "만약 법이 옳지 못하다면 불복종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면서 오늘날 복음주의적 지도자들이 이러한 유산을 잃어버렸다고 꼬집고 있다.

쉐퍼는 국가의 독재적인 모습에 대하여 그리스도인이 하여야 할 일을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이 국가에 대하여 가져야 될 한계선[Boottom Line]이 무엇인가?를 인식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인식은 국가에 대한 성경적인 개념이 무엇이고 성경적인 그리스도인이 부당한 국가에 대하여 어떠한 위치에 있어야 하는 가를 성경적인 원리와 역사적인 원리를 통하여 그는 접근하고 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기반을 가진 삶과 국가의 관계이다. 쉐퍼는 유물론을 가진 사람들은 국가에 복종하는 유일한 이유가 단지 국가가 강제력을 가지고 보호해 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를 믿는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다른 사고를 가지고 있다.그것은 국가의 권위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쉐퍼는 국가의 권위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다면 다음의 문제가 따라온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국가에 권위를 주셨다면 그 국가는 자율적입니까? 우리는 그 국가가 어떻든지간에 무조건 복종해야 합니까?라는 것이다. 쉐퍼는 이에 대하여 분명한 어조로 대답한다.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삶의 모든 영역들과 마찬가지로 국가도 하나님의 법아래 있기 때문이다.

쉐퍼는 롬14:1-4절의 말씀을 통하여 국가는 하나님께서 자율적인 권위가 아닌 대리자로서 권한을 국가에 주셨다는 것이다. 즉 국가는 정의를 실현하는 대표자가 되어야 하며, 그릇 행하는 사람에게 징벌함으로서 악을 견제하고 사회안에서 선을 보호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직무를 감당 하지 못할 때는 참된 권한을 얻지 못하게 된다고 하였다. 또한 베드로전서2:13-17에서도 국가는 악을 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옳은 일하는 사람을 격려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가가 합법적인 기능을 넘어서 독재적인 기능을 할 때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해야하는 하는가?초 법적인 발동을 국가가 자의적으로 할 때 국가에 대하여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가? 즉,우리나라의 유신헌법이라든가, 광주를 무력으로 진압한 세력들에 대하여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바른 그리스도인의 모습인가 하는 것이다. 또한 낙태 시술의 합법화와 같은 국가의 권한이 아닌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에 대한 판결에 있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 나라의 선례는 기도속의 침묵이었다. 이것이 가장 선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쉐퍼는 이것은 바른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다.

쉐퍼는 초대 교회의 성도들의 모습을 예로들면서 이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 로마 제국 시대에 왜 크리스챤들이 사자굴에 던짐을 당했습니까? 기독교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신앙적인 이유이다. 그러나 로마제국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시민의 저항이며,시민의 반역이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모습과도 같은 것이다. 신사참배를 반대한 것은 신앙의 입장에서는 신앙행위이지만 일본의 입장에서는 반역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소수의 사람들이[매우 부끄러운 모습]죄인들이 가는 감옥에 끌려가고 죽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쉐퍼는 말하기를

"한계선이란 국가에 불복종하는 것이 권리일뿐 아니라 의무이다."

쉐퍼는 그리스도인들은 초대 교회처럼 국가가 명하는 것이 하나님의 율법에 어긋날 때 국가에 불복종해 왔으며, 특히 종교개혁이 일어나는 곳마다 민중의 저항과 피흘리는 거역이 있었다는 것이다.

쉐퍼는 이러한 시민 불복종의 모습을 사무엘 러더포드의 『Lex Rex』에서 찾고 있다. 러더포드는 17세기 특유의 "왕의 천부인권" 즉, 왕이나 국가가 하나님의 사신으로 권한을 부여 받았기 때문에 왕의 말이 법이라는 사상을 공격하였다. 그는 모든 인간은 왕이라 할지라도 법의 지배 아래 있으며, 그 위에 군림 할 수없다는 것이다. 러더포드는 롬13장을 인용하여 국가는 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것임으로 하나님의 법에 위배되는 국가행위는 불법이며 폭정이라는 것이다. 러더포드는 폭군 정부란 비도덕적인것이라고 못박았다. 또한 그는 위법적인 정부에 항거할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는 몇가지 관점을 제시하였다.  
"첫째는 모든 폭정은 마귀에게서 온 것이며,그것에 저항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저항하는 것이다.

둘째로 통치자는 조건부로 권력을 얻은 것이므로 그 조건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때 그 권력을 국민이 빼앗을 수가 있다."

쉐퍼는 이러한 러더포드의 이론에 근거하여 오늘날의 행정부에 대하여 성경에 위배되는 것들이 있다면 당연히 불복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쉐퍼는 비합법적인 국가의 행위에 대하여 러더포드의 중요한 교훈를 밝힌다. 즉, 한통치자가 국민에 대해 단 한가지의 잘못을 범했다고 해서 그것으로 그를 저버리는 것이 아니다. 그런식의 행정 정책이 계속되어 그 나라의 정치체제가 무너지게 될 위험이 있을 때 그런 때는 그의 권력과 세력을 빼앗아야 된다는 것이다.

쉐퍼는 이러한 시민 불복종 운동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좌시하면서 자기가 말하는 문장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요청하고 있다.

"만약 시민 불복종과 같은 한계선이 없었다면 국가는 자율적이 되었을 테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 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으로 자명한 이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