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로이드 존스

로이드 존스, 십자가와 구속(4) 제4장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새벽지기1 2016. 5. 2. 15:15


제 4 장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갈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 바울은 자기가 이스라엘 사람이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베냐민 지파에 속한 사람이요, 팔일 만에 할례 받았다는 사실을 자랑하곤 했다. 또한 율법의 지식에 능한 사람이요, 지극히 종교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자랑했다. 그는 언제나 강하고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모든 것은 끝장이 난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우리는 무엇을 자랑하고 뽐내고 있는가? 그것의 대답은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가를 알게 한다. 그리스도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기 사상의 중심에 놓고 자랑하며 그것에 의하여 가장 깊이 감동을 받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지 못한 데도 자기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만일 그리스도의 십자가보다 자기 나라를 더 자랑한다면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이다.

 

- 바울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는 이유는 구원이 바로 그 십자가로 말미암기 때문임을 알았다. 우리를 구원한 것은 십자가 위에서의 주님의 죽으심이다.

세상은 위대한 영웅들, 큰 일을 한 사람들을 기억하기를 좋아하고 그들에 대해서 읽고 바라보고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그들을 자기들의 자랑으로 삼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그러한 방식으로 죽은 것이 하나님의 아들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인가를 이해한다면 그 외에 다른 모든 것은 의미가 없어진다. 십자가가 영원한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속성들, 하나님의 지혜, 세상과 우주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 등을 어떻게 우리에게 드러내 주는지 알게 된다. 그 십자가에서 그의 사랑과 자비와 긍휼과 불쌍히 여겨주심과 오래 참으심이 나타난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의 완전성과 구원받도록 하기 위해서 궁리하신 그 방도에 대한 것도 알게 된다. 우리가 이 모든 것을 알게 될 때 우리 앞에 어느 것도 서 있을 수가 없다.

 

- 바울이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은 십자가가 그에 대해서 하는 일 때문이다. 바울은 자기에 관한 한 그 십자가가 세상을 못박아 죽였다고 말한다. 그 십자가가 세상을 제거시켰다.

세상과 세상을 대표하는 모든 것이야말로 세상의 인간 역사 속에서 일어났던 비극들의 주요 원인이다. 우리의 모든 시련과 환난을 산출하는 것도 세상이다. 세상에서 건져 주는 오직 유일한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십자가를 자랑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다. 한 타입은 세상에 속해 있으면서 세상 사람이라는 사실을 자랑한다. 또 다른 타입은 더 이상 자기가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자랑한다. 자기들은 외인이요, 나그네요, 여행자요, 순례자들로 이 시간 세계를 지나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한다. 아벨이나 가인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아담 안에서 타락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다같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세상을 향하는 이상향을 가지고 태어난다. 바울은 자기가 처해 있는 그 세상에서 건져내어 전적으로 새로운 영역에 서게 하는 것이 십자가이기 때문에 십자가를 자랑하며 감사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 십자가가 우리에 대하여 세상을 십자가에 못박았고, 바꾸어서 그는 대신 세상에 대해서 십자가에 못박힌 바 된 것이다.

 

- 세상의 의미는 무엇인가? 세상이란 물질적인 우주를 의미하지 않고 사고방식이나 관점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 아버지를 떠나서 생각하고 보고 영위하는 삶을 의미한다. 삶과 죽음과 인간과 다른 모든 것을 하나님과 성경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계시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보는 관점이다. 세상은 과학이나 철학, 인간적 사상 같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 없이 이런 모든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집합하여 놓은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사람의 탐구를 통해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다고 말한다(고전1:21).

 

- 또 바울은 세상이란 이 세상의 풍속을 따라서 영위되는 삶이라고 말한다(엡2:1-2). 그 사고방식은 인간적인 생각과 능력에만 의존하여 있다. 그 나름의 교훈과 관점을 가지고 있다. 그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전혀 들어 있지 않다. 그것은 사람을 중심에 놓는 방식이요, 사람을 궁극적인 권위로 만드는 사고방식이다. 그것은 이 세상밖에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는 관점이다. 그것이 바로 사람들 대다수를 통제하고 있는 생각이요, 그리스도인이 아닌 모든 사람들을 조정하고 있다. 그들은 초자연적인 것이나 기적적인 것이나 영적인 것을 믿지 않는다. 사람 위에 사람보다 초월하는 어떤 것도 믿지 않는다.

 

-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라고 말할 때에 바울은 자기가 그러한 사고방식에서 건짐을 받은 사실을 자랑한다.

 

- 세상적 사고방식의 특징은 탐욕이다. 탐욕은 강한 욕심을 말한다. 성경은 이생은 욕심의 조정을 받는 삶이라고 말한다. 비그리스도인들은 이 말을 부정하며 자기들은 지성에 의해서만 통제를 받는다고 말한다. 인간은 그 속에 엄청난 충동을 가진 존재이다. 내면에 원초적인 본능들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이성보다 더 강력한 것이 정욕과 욕심과 엄청난 충동이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행한다. 그것은 탐욕과 불순한 정욕 같은 것들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 요한은 그것을 “육신의 정욕”이라는 말로 특징지어 말하고 있다. 세상의 삶은 주로 몸을 위해서 영위되는 삶이라는 뜻이다. 먹고 마시고 섹스를 위해 살고 있다.

“안목의 정욕”도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외모와 겉치레와 화려함을 숭배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음과는 다른 외적인 모든 것이다. 안목이란 말이 뜻하는 것은 체면과 부정직함과 위선을 말한다. 모든 것이 외양을 위해 드려진다. 사실과 실체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것은 위장과 회칠이요, 그 뒤에는 상한 심령이 없다. 주님께서는 바리세인에게 “너희는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고 청결히 하나 안은 그렇지 않다-그 안에서 너희들은 무엇을 발견하는가? 그 안에는 더러운 것들과 쓰레기가 있을 것이다. 거기서 너희들은 어리석은 것만 발견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이다. 그런 다음 모든 것을 덮어 가리고는 야심과 교만(헛된 긍지) 정욕이 삶의 긍지를 형성하고 그런 것을 자랑한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위해서 살아가며 그 속에서 영광을 취한다. 위대하고 중요해지기를 원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생의 자랑이다. 이것이 세상에 속한 사람의 삶에 대한 성경의 분석이다.

 

-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세상을 이처럼 무섭게 만드는 것이다.

가인의 죄는 바로 그것이었다. 하나님께 제사를 지낼 때 피 있는 희생제물로 드려야 된다는 하나님의 법을 동생은 지켰지만 가인은 그렇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지적해 주실 때 만일 가인이 속죄제를 드릴 수만 있다면 용서 받을 수도 있었고 회복될 수도 있었지만 그는 반역했었다. 세상적인 사고방식은 언제나 그러한 결과를 가져온다.

 

- 전쟁은 궁극적으로 가진 자와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 사이의 투쟁이다. 인간 역사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억누르고, 강한 자가 강한 자를 대적하여 싸우는 일의 연속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탐욕이고 이것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특징 지어지는 세상적 사고방식이다. 성경 외에는 세상의 진정한 본질과 성격을 보여 주는 것이 없다.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신 그가 왜 세상에 오셔야만 했는가? 세상은 너무나 포악하고 썩어서 하나님의 아들이 오지 않고는 그 어느 것도 세상을 구원할 수 없었다. 그 주님이 오심으로써 우리의 눈이 열려 세상의 상태를 보게 된 것이다. 만일 어느 다른 것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이 그 일을 해냈을 것이다. 율법은 철저히 실패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야 했다.

 

- 예수님은 외모에는 이생에서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안목의 정욕을 불러 일으킬 만한 것도 없었다. 그는 온유하고 겸손했고 정결하고 거룩했고 자신을 드려 섬겼으며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히 복종하였다. 그런데 세상은 그를 미워하고 핍박하였고 배척하였다. 그 분보다 살인자를 원했고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 오늘날에도 세상 사람들은 십자가를 비웃으며 그들의 조상들이 행했던 그 일을 하고 있다.

 

- 세상은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강조하나 예수님은 영혼을 강조하셨다. “사람이 ---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막8:36-37) 그 분은 세상의 물질적인 복이나 세상을 개선하기 위해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 오직 사람들의 영혼을 위해서 죽으셨다. 우리 영혼을 구원하기 위함이다. 그는 부자와 나사로 비유를 말씀하셨다. 주님은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나사로와 지옥의 고통을 당하는 부자를 그린다. 여러분은 세상의 생각과 사고방식, 하나님 아들의 생각과 사고방식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알 수 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만나는 순간, 곧바로 세상을 여러분의 원수요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게 되고 그 속에 죽음의 원리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더 이상 세상을 위해서 살거나 그것을 뽐내지 않을 것이다.

 

- 성경의 메시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세상이 끝이 있으며 끝은 심판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다시 세상에 오실 것이고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하나님과 대적하는 모든 것은 심판받을 것이며 멸망 당할 것이다. 당혹한 인간들이 “바벨론이여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계14:8)라고 울부짖게 될 날이 오고 있다. 바벨론은 그리스도 없는 세상이다. 그처럼 위대하고 놀랍던 바벨론, 모든 왕들과 임금이 왕래하던 그 바벨론 사람들은 바벨론이 얼마나 위대한가라고 자랑한 그것이 그리스도 없는 세상이다. 요한계시록 20:12-13은 책이 펼쳐지고 그 앞에 각 사람이 서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 중 어느 누구든지 세상에 임할 그 멸망에서 건져내는 것은 십자가뿐이다.

 

-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다 세상에 속하여 태어났다. 세상에서 구별되지 않는 한 그 운명을 함께 당할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세상에 속한 모든 사람들에게 임할 심판을 스스로 담당하시고 죽으셨고 형벌을 받고 계셨다. 이 모든 것을 알았다면 여러분은 세상에서 구별되어 나온 자들이다. 그래서 세상이 멸망하게 될 때 여러분은 구원받고 멸망에 사로 잡혀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흑암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긴 자이다. 나는 그리스도의 나라, 빛의 나라, 영광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에 속해 있고 세상은 나와 상관이 없다. 내 시민권은 하늘에 있고 거기서부터 구주를 기다린다. 또한 우리가 영원히 그 주와 함께 거하게 될 것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