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장 신앙은 형식적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는 삶에서 드러난다.
1. (5장) 하나님은 제사장과 이스라엘 족속과 왕족에게 심판이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이 사람들을 넘어뜨리는 함정(올무)이 되고, 사로잡는 새그물이 되었기 때문이다(1). 그래서 하나님의 징계가 그들에게 임한다(2).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돌아가지 못하는 데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에 음란한 마음을 가지게 되고 그 음란한 마음은 음행으로 이어지는 까닭이다(4). 여기까지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음을 탄식하는 호세아 선지자의 첫번째 설교이다.
2. 두 번째 설교가 시작되는데 이스라엘의 교만을 지적하는 설교다(5:5~6:3). 하나님을 모르는 결과는 교만으로 나타나게 되고 그 교만은 얼굴에 나타나는데, 이것이 이스라엘의 죄였고 유다도 예외는 아니었다(5). 비록 이들이 하나님을 찾는다 해도 그것은 그저 위기를 모면하려는 얄팍한 대응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응답하시지 않으실 것이다(6). 문제를 모면해 보려는 태도는 참 회개가 아니다. 실상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서 떠나셨다. 결국 전쟁이 일어나고 그 결과는 유다(베냐민)에도 미칠 것이다(8~10). 유다가 지계표를 옮긴다는 것은 자기 본분을 떠나 이스라엘처럼 타락함을 의미한다(10). 에브라임(이스라엘)이 이런 비참함—사람의 압제—을 겪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사람의 말을 듣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 좋아했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스려주실 텐데 말이다.
그들은 하나님 아는 지식을 버림으로써 하나님을 버렸다(4:6).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마치 옷을 먹는 좀처럼 부패하게 만드는 존재가 되셔서 그들을 멸하실 것이다(12).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암과 같은 존재가 되어 그들을 기어이 멸하실 것이라는 말이다. 비록 이스라엘과 유다는 자기들이 병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만, 그때도 이스라엘(에브라임)은 하나님께 오는 대신 앗수르의 도움을 청함으로써 고침을 받지 못할 것이다(13).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사자처럼 움키고 탈취하실 것이다(14). 포로로 잡혀갈 것에 대한 예언이다. 결국 그들이 고난 받을 때 하나님을 간절히 찾기까지 하나님은 얼굴을 돌리시고 기다리실 것이다(15).
3. (6장) 이제 백성들은 고난 속에서 참 회개의 태도로 하나님께 돌아가려고 한다(1). 그들에게는 자기들을 찢고 치셨으나 다시 낫게 해주시고 싸매어 주실 하나님께 대한 신뢰가 있다. 하나님은 머잖아(이틀과 셋째 날) 그들을 다시 살려 일으켜 주실 것이다(2). 그들은 뼈에 사무친 말로써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외치게 될 것이다(3). 하나님께서 새벽빛처럼 어둔 밤을 깨고 오실 것이고, 간절히 기다리던 늦은 비가 오듯이 찾아오실 것을 바라면서 말이다. 여기까지가 호세아 선지자의 두 번째 설교다. 이 설교도 하나님을 알자는 호소로 마치고 있다. 교만을 해결하는 명약은 하나님을 아는 길뿐이다.
4. 호세아 선지자의 세 번째 설교가 6:4부터 시작해서 7:7까지 계속된다. 이 설교의 주제는 이스라엘에 인애가 없다는 것을 지적한다. 이스라엘과 유다가 가졌다는 인애는 기껏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이 정함이 없는 것이었다(4). 인애(헤세드)는 하나님의 언약의 사랑이며 그 신실하신 성품에 기초한 변함없는 사랑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진 사랑은 하나님을 향해서나 이웃을 향해서나 결코 정함이 없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정말 원하시는 것은 형식적 예배가 아니다. 하나님의 성품인 인애를 삶 속에서 드러내면서 사는 것이다(6).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는 곳은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이 되었고(8) 제사장조차도 살인하려고 기다리는 강도 같이 되었으니(9) 하나님의 추수 때는 정해진 셈이다. 먼저는 이스라엘에게 그리고 유다에게 말이다(11).
5. 음란한 행동은 음란한 마음에서 나오고 음란한 마음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마음이다. 교만함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을 때 흘러나오는 본성이다. 하나님의 성품인 인애를 드러내고 살아가지 못하는 이유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문제가 생겨도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고 사람에게 도움을 청할 것이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도 진정한 회개가 아니라 문제해결과 위기 모면의 방책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진정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지 못한다. 형식적인 종교 행위는 존재한다. 예배도 드리고, 교회 생활도 한다. 하지만, 하나님을 알려는 갈망,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려는 마음도 없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예배 형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고 사는 것이다.
6. “하나님 아버지, 이 말씀을 통해서 저희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밝히 보게 하여 주시고, 참으로 주님을 더 알기를 원하는 갈망으로 저희를 채워주옵소서. 문제를 모면해 보려는 형식적이고 피상적인 회개가 아니라 마음 찢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회개를 허락하시고, 형식적 예배가 아니라 삶 속에서 주님의 선하신 성품을 반영하는 삶의 예배로 하나님을 섬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좋은 말씀 > 김형익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8 '삶의 우선순위가 무너지면 신앙도 무너진다'/김형익목사 (0) | 2016.04.21 |
---|---|
호7 '하나님 앞에서 분주함을 내려놓으라' / 김형익목사 (0) | 2016.04.20 |
호3~4 '하나님에 대한 무지가 죄다' / 김형익목사 (0) | 2016.04.18 |
호세아 2장 '교회를 향해서 따지고 또 따져 물어라' /김형익목사 (0) | 2016.04.17 |
호세아1장 '납득하기 어려운 명령' /김형익목사 (0) | 2016.04.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