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김형익목사

신앙과 기쁨, 그리고 은혜에 관하여 /김형익목사

새벽지기1 2016. 3. 22. 08:55


 

 

신앙에 대해서


성경이 가르치는 신앙이 어떤 것인지 보면 볼수록 신앙의 진수는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당대의 최고 주권자 느부갓네살 대왕 앞에서 밝혔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는 말 속에 담겨져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가끔 자신을 돌아보면서, 제 안의 막연한 기대감들이 있기 때문에 장래의 은혜에 대한 믿음과 섞여있는 것을 봅니다. 가령, 내년쯤에는 하나님께서 교회에 은혜를 부어주셔서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들을 더욱 보내주시고, 믿는 자들의 수를 더하여 주시겠지 하는 기대감과 같은 것입니다. 제가 성경에서 배운 신앙의 진수는 ‘만일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이라는 질문을 하게 합니다. 너도 다니엘의 친구들처럼 말할 수 있는가 도전합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에 대한 저의 신뢰에 섞여 있는 것은 아닌지?


이런 돌아봄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공부하고 묵상하면서 얻는 유익입니다. 하나님께 돌이키고 순전함을 구하게 됩니다. “제 신앙이 불순물이 없는 순전한 신앙,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과 영광만을 구하는 신앙이 되게 해주십시오.” 때로 하나님의 완전하신 지혜와 그 성품과 능력을 드러내어 하나님을 더 깊이 신뢰하도록 하는 대신, ‘미래에 대한 그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게 함으로써 교인들의 신앙을 호도한 적은 없는지 돌아봅니다. “내가 인생에서 구하고 바라는 소박한 바램들을 하나님께서 단 하나도 허락하시지 않을지라도” 나는 하나님을 섬기겠는가?”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을 ‘장래의 은혜’와 혼동하고 있지는 않은지 보게 하는 질문입니다.

기쁨에 대해서


15년쯤 전에 신앙에 있어서 기쁨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하나님의 기쁨에 대한 놀라운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제게는 복음을 새로 발견한 것 같은 기쁨이었습니다. 그래서 ‘죠이’선교교회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기쁨의 진수는 하박국 선지자가 표현한 말에 가장 잘 드러나 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 3:17~18).” 기독교 기쁨의 진수는 ‘비록’이라는 말로 표현됩니다. 비록 아무 것도 되는 일이 없지만, 여전히 계시고 동일하시고 은혜 베푸시고 선을 베풀어주시기를 기뻐하시는 그 하나님 때문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땅을 슬픔의 사람으로 사셨던 주 예수님의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잘 되는 일로 인해서 기뻐하는 것은 좋은 일이고, 주님의 은혜지만, 그렇지 않은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여전히 빛나고 신자는 하나님 때문에 기뻐하고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기쁨은 저의 많은 슬픔(그 많은 ‘비록’의 케이스들로부터 발생하는) 속에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배웁니다. 그래서 기뻐합니다.

은혜에 관하여


바울은 자기의 구하는 것을 거절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는 대답을 듣습니다(고후 12).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주님의 은혜는 나에게 충분하고, ‘비록…없어도’ 주님의 은혜는 족하다는 말씀입니다. 가끔 힘들 때면, 하나님께서 나를 너무 심하게 다루신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아니, 왜 이런 하찮은 기도도 안 들어주시고?”하는 불평도 마음에 있습니다. 이러는 한, 여기 은혜가 설 자리는 없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제 인생에 어떤 일이 벌어져도, 제 상황이 어떨지라도, 주님의 은혜는 제게 이미 그 현재의 시간에 충분하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은혜의 진수입니다. 이 자리에서 평생 살기 원합니다. 여러분과 함께 말입니다. 이 엄청난 신앙, 영광스러운 기쁨, 그리고 충분하고도 충분한 은혜의 삶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