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정성욱교수

'편집비평’식 성경이해에 맞서는 방법은? / 정성욱교수

새벽지기1 2016. 1. 28. 06:45

 

안녕하세요, 정성욱 목사님,

스피드 조직신학을 통해 일반 평신도로서 하나님을 좀더 조직적 이해하는 데 참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또 그동안 신앙생활 하면서 궁금하게 많아도 여쭈어 볼 분이 많지 않았는데,

그 책을 통해 정성욱 박사님께 직접 질문을 할 수 있는 카페를 알게 된것도 참 감사합니다.

 

제가 오늘 여쭤보고 싶은 질문은,

신약성경을 자세히 읽다보면 예수님의 행적들이 서로 불일치되는 듯 보이는 내용들이 발견되어지곤 합니다.

성경에 아무런 오류가 없다는 것을 믿고 있던 저로서는 좀 당황스럽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구글 검색과 네이버 검색을 통해서 이를 복음주의 관점에서 해석한 것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필자는 근래에 여러 목회자들에게 위에 예시한 것과 같은 복음서 내의 유사한 사건들에 대한

목회자들의 의견을 물어본 적이 있다. 이에 대한 대부분의 목회자들의 반응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식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복음서의 차이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는 현대의 비평적 성서해석의 공격에 대해 속수무책이다.

성경의 기록을 순전히 인간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평가하는 ‘편집비평’식 성서이해는 이미 신학자와 신학교육 속에

깊이 침투해 들어와 있다.

...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인정하고 있는 복음주의 노선의 목회자들에게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의 차이,

또는 복음서들간의 차이를 명확히 이해하고, 그 차이는 틀린 점이 아니라 다른 점이며,

그 이유가 합리적으로 제시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능력은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출처:월간활천 2006년 3월호 '왜 요한복음은 공관복음과 다른가'- 송창원)

 

이 글을 읽고 왜 예수님의 제자 선택과정이 단순한 모순이 아니라는 것도 이해하게 되었고

성경을 이해하는 송창원 박사님의 주장에 저도 공감하게 되습니다.

 

그래서 복음주의 관점에서 사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역사적 행적에 대해서

1. 위의 관점으로 잘 정리해 놓은 자료가 있는지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2. 또한 이런 이슈에 관한 정성욱 박사님의 의견은 어떠하신지 여쭙고 싶습니다. 

 

(오늘도 마태복음 3장을 읽던 도중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 때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확인했는데

11장서 왜 세례 요한이 옥에서 제자를 예수님께 보내어 그리스도이심을 확인하나? 이것이 오류가 아닌가 의심이 들었지만

또 다시 구글과 네이버 검색을 통해서 복음주의 관점으로 해석한 것을 접하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Re:'편집비평’식 성경이해에 맞서는 방법은?

글쓴이: 정성욱    08.03.13    http://cafe.daum.net/profchung/1brN/882

 

좋은 질문 감사합니다.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의 관계 혹은 네 복음서간의 불일치 등에 대한 좋은 질문 감사합니다.

 

우선 이해해야 될 것은 불일치가 '오류'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류가 즉 error가 아니라 차이나 다름 즉 difference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부활 사건을 기록할 때에도 어떤 복음서에는 천사를 하나만 언급하고

다른 복음서는 둘을 언급합니다. 이것을 복음주의권에서는 한 기자는 나타난 천사의 전체를 말하려고 했고 (즉 둘),

다른 기자는 이 둘 중에 여자들에게 말한 천사를 강조하려고 했다 (즉 하나)고 해석합니다.

저는 이러한 해석의 복음서간의 다름을 존중하는 바른 해석이라고 봅니다.

 

더 중요한 사실을 복음서 기자들 간에 보고내용이 다르다는 사실은 성경의 신빙성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신빙성을 더 높여준다는 것입니다.

즉 짜고 고스톱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죠.

각 복음서의 기자들을 성령께서 독특하게 부르시고, 그들에게 독특한 관심을 주시고,

독특한 방법과 논리에 의해서 독특하게 기록하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것이죠.

즉 복음서 기자의 다양성을 성령께서는 엄청나게 살리고 계신다는 겁니다.

 

이렇게 놀라운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네 복음서는

한 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정말 멋진 그림들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네 편의 복음서라는 퍼즐로 모자이크를 완성했을 때 비로소 예수님의 참된 모습이 완전하게 드러나는 것이죠.

다시 말하면 네 복음서의 다양성이 네 복음서가 말하려고 하는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전한 통일성을 이루고 있음을 우리는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태, 마가, 누가도 근본적으로는 공관복음서라고 볼 수 없습니다.

편의상 요한복음과 대비하기 위해서 공관복음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마태의 관점/관심과 마가, 누가의 것이 사실은 달랐습니다.

서로 다른 관점과 관심에서 복음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편집비평이란 성경이 원기자들에 의해서 완성품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후대의 학자들이나 제자들에 의해서 그들의 신학적 관심을 반영시키기 위해서

편집되었다는 주장이지요.

 

복음주의자들은 두 가지 태도를 취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편집비평 자체를 완전히 거부하는 방법입니다.

대다수의 복음주의자들이 이런 태도를 가집니다. 저도 이 태도를 취합니다.

둘은 편집비평 관점을 가진 학자들의 주장을 들어보고,

그 주장들이 기존의 복음주의적 연구결과들과 일관성이 있을 경우는 조심스럽게 수용하되,

기존의 복음주의적 연구결과들과 일관성이 없을 경우 거부하는 태도입니다.

소수의 복음주의자들이 이 태도를 유지합니다.

 

둘째 관점의 문제는

편집비평을 받아들이는 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상당히 기존 복음주의권의 연구결과에 반대된다는 점이지요...

 

좋은 자료로는 덴버신학교 신약학 교수 크렉 블롬버그가 쓴 복음서의 신빙성이란 책이 번역되어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