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로이드 존스

[스크랩] 참 크리스찬인지 어떻게 아는가/ 마틴 로이드존스[2/2.끝]

새벽지기1 2015. 12. 28. 08:18

6. 참된 영적 체험은 그 근원이 다르다


이런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박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당신 의견에 동의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위대하심과 거룩함을 바라보고, 예수님이 죄인들을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아는 것이 제 가슴속에 은총이 있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지요. 마귀들 역시 이런 것들을 알 수 있다는 말에 동감입니다. 하지만 마귀들이 지니지 못한 것들도 전 갖고 있습니다. 기쁨, 평안, 사랑이 그것이죠. 마귀들은 이런 걸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구원받았음을 확실히 보여준 것이죠.”

 

네. 당신이 악마가 가질 수 있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을 지니고 있다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마귀가 가질 수 있는 것보다 더 나은 게 전혀 없다. 사람이 사랑과 기쁨 등을 경험하는데 그것이 마귀와 다른 것, 다른 환경에서 연유했다고 할 수는 없다. 이런 느낌의 원인들이랄지 그 출처라는 것이 악마적인 것과 완전히 다른 것일 수밖에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경험들이 하등 악마적 경험들보다 나은 게 없다는 얘기다. 좀 더 설명을 하겠다.

 

앞에서 마귀와 저주받는 자들에 대해 논의했는데 이들과 관련된 모든 것들은 본성적 이해 (natural understanding)와 자기애(self love)라는 두 가지 주된 원인에서 나온다.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할 때 본성적 이해와 자기애 이 두 가지 요인이 자신의 느낌과 어떤 상황에 대한 반응양태를 결정한다. 비록 자신은 사악하더라도 본성적 이해로 보면 하나님이 거룩하다는 걸 알게 된다. (본성적 이해에 입각해 보면) 하나님은 무한하지만 사람들은 유한하다. 하나님은 강력하지만 사람들은 연약하다. 자기애 때문에 종교와 영원의 세계의 중요성을 느끼고 그리고 구원을 추구하게 된다. 


본성적 이해와 자기애 두 가지 요인이 함께 작동하면 마귀나 저주받은 인간도 하나님의 경외로우신 위엄을 알게 된다. 하나님이 자신들의 심판주가 되리라는 것도 이들은 안다. 하나님의 심판은 완벽하고 이들에게 내려질 형벌은 영원하리라는 것도 이들은 안다. 그래서 마귀와 저주받은 인간들은 본성적 이해와 자기에 대한 사랑 그리고 모든 살아있는 감각 때문에 심판날에 그리스도와 그 성도들이 외적으로 드러내는 영광을 보게 될 때 그들에게 임하는 고통을 감지하게 될 것이다.

 

마귀는 그렇지 못한데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기쁨과 평안과 사랑을 느끼는 이유는 마귀나 인간의 마음밭이 다르기 때문이라기보다 처한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마음속에 들어있는 요인은 마귀나 인간이나 똑같다. (마귀가 처한 것과 인간의 환경이 다른) 예를 들어 보면 성령이 지금 세상에서 모든 인간이 가능한 한 사악하지 않도록 만들려고 역사하고 있다. (데살로니가 후서 2 : 17) 


이것은 가능한 대로 줄곧 사악하기만 한 마귀와는 대조적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자비를 베푸사 곡식들에게 비를 주고(마 5 : 45) 태양의 온기를 주는 등과 같이 모든 사람들에게 선물들을 준다. 이것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인생을 살면서 인간관계, 쾌락, 음악, 건강, 등등 행복에 이르는 많은 것들을 자주 받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는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하기 위해 죽으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런 환경에 사람들이 처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본성적 이해로 보면 마귀가 절대 느낄 수 없는 것들을 사람들은 느낄 수 있게 된다.

 

자기애는 인간의 가슴에 작용하는 강력한 힘이다. 너무도 그 힘이 강력하여 (하나님의) 은총이 없이도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게 한다. 


그러나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느니라.” (누 6 : 32) 하나님이 자비로우신 분임을 알고 하나님을 믿어 나쁠 것도 없다는 걸 알고, 그렇기 때문에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나님에 대한 당신의 사랑이 단지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또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위해 죽었다는 복음 등을 들어서 생긴 당신의 감정에서 나온 것일 뿐이라면 하나님에 대한 당신의 사랑의 근원은 자기애일 뿐이다. 이런 자기애는 마귀의 마음속에서도 활개치고 있다.

 

마귀의 상황을 생각해 보라. 마귀는 자신의 사악함이 끝이 없다는 걸 안다. 하나님이 지금 현재 자신들의 대적이고 앞으로도 늘 그러하리라는 사실도 마귀는 안다. 마귀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지만 이들은 여전히 활동적이고 전투적이다. 


그런데 한 번 바꾸어 생각해 보라. 사람이 갖고 있는 희망이 마귀에게도 있다면 어떻게 될까? 하나님을 잘 알고 있는 마귀의 사악함이 움츠려든다면 어떻게 될까?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극에 달한 나머지 하나님이 마귀의 친구가 될지도 모른다고 마귀가 갑자기 상상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마귀를 용서하고 그 죄와 모든 것들을 용납하여 마귀를 천국에 들어오게 할까? (그렇게 되면) 오, 우리가 천국에서 참된 기쁨과 경이로움과 감사함을 보게 될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모든 사람이 사랑하는데, 그렇다면 마귀야말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니) 하나님을 그 누구보다 더 사랑하는 자가 아니겠는가? 마귀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니 이것보다 더 짜릿하고 흥분되는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미혹을 당하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닌가? 마귀는 이런 미혹을 점점 강화시키고 있다. 마귀는 이런 짓을 오래도록 수행해 왔으며 이 일에 능통하다.



7. 참된 영적 체험은 정서를 변화시킨다

  

자, 이제 이런 질문을 생각해 보자. 지금까지 열거한 이런 모든 다양한 체험과 느낌이라는 것들이 마귀가 조작할 수 있는 것에서 나왔다고 한다면 어떤 류의 체험이 진정으로 영적이며 거룩한 것인가?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확실한 징표가 되려면 내 가슴속에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가? 성령으로부터 온 것은 마귀의 것과 어떻게 다른가?

 

일단 이렇게 답을 드리겠다. 마음속에 하나님의 선한 은혜의 징표로 나타나는 느낌이나 체험은 마귀의 체험과 그 근원과 결과에서 다르다.


하나님께로 온 것은 그 근원에서 느껴지는 것이 너무나도 거룩한 아름다움과 하나님의 것으로 드러나는 사랑스러움이다. 마음속에서 그것을 감지해 볼 때 아니 자기 자신의 가슴으로 느낄 때 성스러운 마력(하나님의 잡아당김)에 포로가 되는 것 같다.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라는 분명한 징표이다.

 

마귀나 지옥에서 저주받은 자는 이와 같은 것을 지금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절대 조금도 경험할 수 없다. 타락하기 전 마귀는 하나님에 대한 거룩함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타락하면서 마귀는 이것을 상실했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만은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마귀도 하나님의 전능함과 공의로움과 거룩함 등을 명백하게 알고 있다. 마귀는 하나님에 대한 많은 사실들을 안다. 하지만 이제 하나님이 진정 어떤 분인지 마귀는 조그마한 단서조차 잡지 못한다. 


마치 소경이 색깔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마귀들은 하나님의 경외로운 위엄을 강하게 감지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보지 못한다. 마귀들은 수천 년 동안 인간들에 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아주 가까이서 주의깊게 지켜보았지만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약간이라도 보지 못했다. 마귀들이 아무리 하나님에 대해 많이 안다 하더라도 (실제로 하나님에 대해 앞에서 언급했듯이 많이 안다) 마귀의 지식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하는 보다 높고 영적인 지식에는 절대 이르지 못한다. 


오히려 마귀가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알면 알수록 마귀는 하나님을 더욱 더 미워한다.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주로 하나님의 거룩함과 도덕적 우월에 있다. 이것을 마귀는 가장 미워한다. 하나님이 거룩하기 때문에 마귀가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덜 거룩하다면 아마 마귀도 하나님을 덜 미워할 것이다.


 마귀는 그 어떤 존재라도 거룩한 존재이기만 하면 미워할 것이 분명하다. 무한히 거룩하고 무한히 지혜롭고 무한히 전능하신 하나님을 마귀는 가장 확실히 미워한다.


오늘날에 살고 있는 자를 포함해 사악한 자들은 심판날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들을 보게 될 것이다. 단 그리스도의 아름다움과 사랑은 보지 못할 것이다. 환히 빛나는 심판의 날에 가장 강력한 빛이 비치니 사악한 자들 앞에 그리스도에 관하여 드러나지 않을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악인들은 볼 것이다.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마 13 : 26) 악인들은 그리스도의 외적 영광을 볼 것이다. 이 영광은 우리가 지금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훨씬 더 대단할 것이다. 


악인들도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분명히 확신하고 있다는 걸 당신은 안다. 악인들은 자신의 모든 죄악이 재연되고 평가될 때 그리스도의 전지전능함을 확실히 깨닫게 될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형벌이 선언될 때 그리스도의 공의를 직접적으로 알게 될 것이다. 모든 이들이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을 때, 모든 이들이 예수님을 주라 고백할 때 그리스도의 권위는 확고히 서게 되리라. (빌립보 2 : 10, 11) 


악인들이 지옥에 던져지고 고통의 죽음의 최종 상태에 이르게 될 때 거룩한 위엄은 너무나 분명히 악인들에게 나타날 것이다. (계 20 : 14, 15) 이 일이 일어날 때 하나님에 대한 악인의 모든 지식은 그것이 아무리 참된 것이고 강력한 것일지라도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관계로 아무 소용이 없으며, 전혀 모르는 것만도 못하게 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느냐 마느냐가 성령의 구원의 은총과 마귀적 체험을 구별짓는 잣대가 된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고 느끼는 것이 다른 모든 체험과 참된 기독교인의 체험을 구별한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의 믿음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기초한다. 택함받은 백성은 참으로 뛰어난 복음을 접할 때 거룩한 구원의 계획에 담겨있는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을 감지한다. 그의 마음은 이것이 하나님이구나, 내가 전심으로 이것을 믿는구나, 라는 확신을 하게 된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 4 : 3 - 4절에서 말하고 있듯이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즉 앞서도 설명했듯이 불신자는 복음이 있음을 보고 복음의 사실들을 이해하지만 복음의 빛을 보지는 못한다. 


복음의 빛은 그리스도의 영광이요 그 거룩함과 아름다움이다. 고린도후서 4 : 6 말씀을 보자.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복음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고, 그리스도에 대한 구원하는 믿음을 지닐 수 있는 것은 우리 마음에 비췬 거룩한 빛 때문이다. 이 초자연적인 빛 때문에 예수님의 최상의 아름다움과 사랑이 가득함을 우리가 보게 되고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로서 부족함이 없음을 확신하게 된다. 


바로 이렇게 영광스럽고 엄위로우신 구세주만이 우리와 같이 죄악에 절어 지옥에 가야 마땅한 죄인과 무한히 거룩한 하나님 사이에 서서 중재자가 될 수 있다. 이런 초자연적 빛이 있어 우리는 다른 어떤 걸로도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를 확실히 지키시는 그리스도를 인식하게 된다.



8. 진정한 영적 체험은 다른 결과를 낳는다         


아주 사악한 죄인이 그리스도의 거룩한 사랑을 보게 될 때 왜 하나님이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구원하려 하는지 더 이상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피가 어떻게 죄값을 대신하는지 그는 과거에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알 수 있고 그 보혈이 극악한 죄의 대가라는 것이 얼마나 보배로운지 알 수 있다. 


이제 이 영혼은 자기 자신의 가치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중보와 보혈과 순종의 가치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을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런 그리스도의 가치를 보게 될 때 이 불쌍하고 죄만은 영혼도 어떤 설교나 책자에서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안식을 갖게 된다.

 

누구든 자기 자신의 눈으로 온전한 믿음과 신뢰의 토대(기초, 원천)를 보게 될 때 그 믿음은 구원에 이르는(구원하는) 믿음(saving faith)이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요 6 : 40)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지금 저희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께로서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요 17 : 6 ~ 8)

 

그리스도의 거룩함과 아름다움이, 그 모습이 인간의 의지를 사로잡고 인간의 가슴을 마력처럼 끌어당긴다. 


외적으로 하나님의 장엄함을 나타내는 영광스러운 모습에 인간들은 압도당하게 되며 어쩌면 그 모습을 견디어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 영광의 모습을 심판날에 볼 것이다. 그때 악인들은 하나님 앞에 불리워 갈 것이다. 악인들도 이 영광의 광경에 당연히 압도당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 가슴속에 있는 적의는 그대로 강력하게 남아 대적하고자 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도덕적이며 영적인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지고의 사랑을 담은 한 줄기 광선이 가슴속에 비취어 그 안에 있는 모든 적대감을 압도한다. 이 광선의 비췸을 받은 영혼은 마치 전능한 권능으로 이끌리듯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어 사랑의 구세주를 이해하게 될 뿐만 아니라 전적으로 영접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이 참된 회심자의 삶을 살면서 참된 구원에 이르는 믿음의 시작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위해 죽었다고 막연하게 느끼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이 정도의 애매한 느낌만으로도 일종의 사랑과 기쁨을 갖게 해준다. 왜냐하면 자신의 죄로 인한 처벌을 면하게 된 것에 감사를 느끼기 때문이다. 이런 느낌은 사실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전적으로 자기애에 기초한 느낌이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거짓된 믿음으로 미혹되어 있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가슴속에 느낄 때 하나님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갖게 해준다. 바로 거룩한 빛이 하나님 본성인 최고의 사랑을 비추어주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에 기초한 사랑은 자기애에서 나오는 그런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자기애에 기초한 사랑은 인간은 물론 마귀도 가질 수 있는 사랑이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모습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참된 사랑은 그 영혼에 영적이며 거룩한 기쁨을 누리게 해준다. 이 기쁨은 하나님 안에서의 기쁨이요 예수님 안에서 뛸 듯이 기뻐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 안에는 기쁨이 없다. 하나님 안에서만 참 기쁨이 있다. 



9.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모습 - 하나님이 준 최대의 선물


거룩한 것들에게 드러나는 아름다움의 모습을 보면 하나님의 것들을 따르고 싶어하는 진실하면서 간절한 욕구를 갖게 한다. 


이런 욕구는 마귀의 욕망과는 다르다. 마귀는 자신의 파멸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그런 운명이 어떻게든 달라지기를 소망한다. 이런 소망에 기초하여 마귀의 욕망은 발생한다.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모습에서 나온 욕구는 어린아이가 젖을 달라고 갈망하듯이 자연적이며 자유로운 욕구이다. 기독교인의 욕구가 마귀의 욕망과 아주 다르기 때문에 그 욕구와 욕망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은총에서 나온 경험과 거짓 것을 구별하는데 도움이 된다. 


거짓된 영적 경험은 교만을 낳는 경향이 있다. 이 교만은 마귀가 지은 특별한 죄이다.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디모데전서 3 : 6) 교만은 때론 큰 겸손으로 위장을 하기도 하지만 거짓된 영적 경험의 필연적 결과이다. 거짓 경험은 자아로 무장되어 있고 자아를 토대로 자란다. 거짓 경험은 이런 저런 식으로 자기를 과시하며 살아간다. 


하나님에 대해 큰 사랑을 가질 수 있고 하나님에 대한 자기 사랑이 큰 것을 자랑스러워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매우 겸손하고 자기의 겸손에 대해 아주 자랑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나오는 감정과 경험은 이와는 정확히 정반대이다. 


하나님이 마음속에 진정으로 역사할 때 겸손이 생긴다. 과시하거나 자기를 높이려는 마음은 전혀 생기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거룩하고 경외로우며 영광스러운 아름다움을 인식하면 교만은 죽으며 그 심령은 겸손해진다. 하나님의 사랑의 빛이, 아니 그 빛만이 그 심령의 추함을 드러낸다. 누구라도 이 빛을 참으로 잡으면 하나님을 더욱더 크게 하고 자기 자신을 더욱더 작게 만드는 그런 지속적인 과정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의 은총이 마음속에 역사하게 될 때 나타나는 또 다른 결과 하나는 모든 악을 미워하게 되고 거룩한 마음과 삶으로 하나님께 응답한다는 것이다. 


거짓된 경험을 했을 때도 일정한 정도의 열정을 불러일으킬 수는 있다. 흔히들 말하는 종교적이라는 그런 열정이 굉장히 발휘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열정은 선한 역사에 적용될 열정이 아니다. 이들의 종교는 하나님에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바치는 예배다. 


이런 맥락을 생각하면서 사도 야고보가 하는 말을 들어보자.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마귀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줄 알고자 하느냐?” (야 2 : 19 ~20) 다시 말해, 행위 곧 선한 역사가 마음속에 하나님의 은총을 진정으로 경험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요한1서 2 : 3 ~ 4)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마음속에서 뛸 듯이 기쁠 때 그 기쁨을 어떻게 달리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모습에서 나오는 내적 선량함과 참된 종교성은 얼마나 뛰어난 것인가? 여기 있는 여러분은 천국의 천사와 성도들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경이로운 경험들을 갖고 있다. 여기 있는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 그 분 자체를 경험하는 최상의 경험을 갖고 있다. 우리는 단지 피조물에 지나지 않지만 하나님 자체의 아름다움에 참여한 것이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베드로 후서 1 : 4)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우리를 징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케 하시느니라” (히 12 : 10)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하심의 권능으로 하나님과 그의 백성은 서로 내주하게 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요한 1서 4 : 16)

 

이런 특별한 관계 때문에 이 관계에 들어선 자는 어떤 피조물 못지 않게 행복하고 축복될 수밖에 없다. 이 관계는 하나님이 주시는 특별한 선물이다. 이 선물은 하나님이 특별히 좋아하는 자에게만 주는 것이다. 


금이나 은이나 다이아몬드나 세상 왕국들은 성경에서 이르는 개나 돼지에게 하나님이 줘 버리라고 내버려두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보는(beholding) 이 엄청난 선물은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는 자녀들에게만 주는 특별한 은총이다. 


육과 혈로는 이 선물을 줄 수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 선물을 하사할 수 있다. 이런 특별한 선물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죽음으로써 자기 택한 자들을 위해 얻은 것이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의 영원한 사랑을 최고로 나타내는 징표요, 그리스도의 수고로 얻은 최상의 열매요, 그리스도의 피로 산 가장 귀한 품목인 것이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이 선물을 받음으로써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빛을 발하게 된다. 이 선물이 다른 어떤 것보다 성도들의 위로가 된다. 이 선물을 소유한 심령이 멸망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바로 영생의 선물인 것이다. 영생이 시작된 것이다. 이 선물을 가진 자는 절대 죽을 수 없다. 


영광의 빛이 밝아오는 것이다. 이 선물은 천국에서 오며 천국의 품성quality을 지니고 있다. 이 선물을 가진 자를 천국으로 옮길 것이다. 이 선물을 가진 자들이 황야에서 방황하거나 파도에 떠밀려 바다 위에 던져질 수도 있다. 그러나 끝내는 천국에 도달할 것이다. 천국에서 천국의 불꽃이 온전해지고 늘어날 것이다. 천국에서는 성도들의 영혼이 환히 빛나며 순수한 불꽃으로 변할 것이며 아버지의 왕국에서 태양처럼 빛을 발할 것이다. 아멘.

 

로이드존스연구사이트

출처 : 물과피와성령(water and blood and the Holy Spirit)
글쓴이 : 새언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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