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 위의 자리
엡 1:22절에 특별한 표현이 나온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다는 표현은 이미 앞에서 짚었다. 그런데 ‘만물 위에’라는 부사구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그리스도가 만물 위에 존재한다는 뜻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교회가 만물 위에 존재한다는 뜻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에베소서를 기록한 사람이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표현했는지를 지금 우리가 100%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어떤 쪽에 해당되든지 교회가 만물 위에 존재한다는 뜻이 완전히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만물 위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이기 때문이다.
‘만물 위’라는 표현은 영적인 것이다. 교회가 세상의 권력보다 더 큰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그런 권력은 중세기 로마가톨릭교회의 교황에게 주어졌던 것으로 충분하다. 그런 방식의 권력은 오히려 교회의 교회다움을 상실하게 했다. 교회가 만물 위에 존재한다는 말은 역설적으로 만물을 섬긴다는 뜻에 가깝다. 예컨대 물을 보라. 물의 힘은 절대적이다. 만물은 물 없이 살아갈 수 없다. 그러나 물은 만물 위에서 군림하지 않는다. 오히려 낮은 자리로 내려가고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생명 현상을 가능하게 한다. 교회도 물처럼 순전히 섬김의 방식으로 만물 위에 존재할 수 있다.
‘만물 위’라는 표현을 좀더 정확하고 좀더 폭 넓게 이해하려면 ‘만물’의 속성을 알아야 한다. 만물은 두 가지 속성이 있다. 하나는 만물이 하나님의 창조물이라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만물이 무상하다는 사실이다. 한편으로는 창조의 품격을 갖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결국 끝장난다는 운명을 갖고 있다. 한편으로는 선하며 다른 한편으로 불쌍하다. 교회는 한편으로 세상과 더불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 세상을 향한 종말론적 희망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 방식으로 교회는 만물 섬기면서 그 위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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