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딸들아! / 정용섭 목사

새벽지기1 2026. 2. 8. 06:35

딸들아!

 

두 주일 간격으로 나의 두 딸들이 집을 떠났다. 좀더 어렸을 때 학업으로 인해서 집을 수년간 떠난 적은 있었지만 이번 경우는 그때와 달랐다. 이전에는 다시 돌아온다는 걸 전제했지만 이번에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전제한다.

 

큰 딸은 내가 독일에 유학하고 있던 1984 12월에 한국에서 태어났다. 내가 만으로 서른한 살 때였다. 결혼한지는 3년이 지났다. 이름을 지어 보내라는 아내의 말을 듣고 지예로 지었다. 지예(智藝)는 슬기롭고 예술적인 사람이 되라는 뜻이다. 사람이 이름대로 된다면 오죽이나 좋겠냐만, 그래도 부모의 마음을 그렇게 담는 거는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둘째는 집사람이나 나 모두 바쁘고, 요즘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젊은 부부들과 같은 이유로, 계획에 없다가 우연하게 태어났다. 1990 12월이다. 첫 딸도 당시 나이로는 늦은 때였는데, 둘째는 그야말로 늦둥이다. 지은(至恩)은 삶을 지극한 은혜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라는 뜻이다.

 

딸들은 초등학교, 중학교 때 내가 학교 찾아가는 걸 싫어했다. 친구들 아버지보다 나이가 더 들었을 뿐만 아니라 흰머리도 많고, 간혹 개량 한복을 입고 나타나니 그럴만하다. 며칠 전 둘째가 그 시절 느낌을 말한다. 하향에 살고 있을 때다. 간혹 둘째를 자전거 뒤에 태워서 학교에 데려다 주곤 했는데, 친구들이 나를 신기한 듯이 봐서 창피했다는 것이다. 큰 딸은 초등학교를 현풍에서 다녔다. 어느 날 학교를 찾아가서 교감 선생님을 만났다. 아이들을 30분 일찍 등교 시켜서 영어 공부를 시킨다는 말을 듣고 따지기 위해서였다. 교육의 목표와 본질과 그 현실성 등등을 말했다. 교감 선생님은 자기들도 교육청의 지시라서 어쩔 수 없다면서 난감해 했다. 큰 딸의 입장이 난처했을 거다.

 

사춘기 때의 딸들은 나보고 머리 염색하라고 성화였다. 그때 말을 좀 들어줄 걸, 하는 후회가 들긴 한다. 그때 아이들과 약속했다. ‘너희 결혼식 날에는 내 평생에 한번 염색할 수도 있어.’ 그 약속을 지키고 싶기는 한데, 딸들이 결혼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큰 딸은 대구로 떠났고, 작은 딸은 포항으로 떠났다. 일주일에 한번 들릴지, 한 달에 한번 들릴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아주 특별한 사정이 생기지 않는 한 딸들은 짐을 꾸려서 부모 집으로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괜찮은 남자를 만나서 오순도순 살면 좋겠지만, 그냥 혼자 살아도 나쁘지는 않다. 어떤 방식으로 살든지 삶을 풍요롭게 누렸으면 한다. 그 초석은 쌀 한 톨을 우주로 경험할 수 있는 영적 감수성에 놓여 있다. 그 초석의 더 깊은 곳에는 하나님 경험이 자리한다. 딸들은 어렸을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런 말을 들었다. 아마 잔소리처럼 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딸들의 영혼 깊은 곳에 그 말들이 살아남아서 (봄날 땅 속 씨앗처럼 은폐의 방식으로) 꿈틀거릴 것이며, 언젠가 딸들의 인생에서 카이로스(의미 충만한 순간)가 오면 그들의 영혼이 꽃처럼 찬란하게 피어나리라 기대한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를 인생, 잘 살아라. 딸들아! 아니, 나의 딸들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딸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