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케
지난 25일 주일 설교 ‘태초의 말씀’에는 세 개의 헬라어 원어가 나온다. 첫 번째 단어는 아르케다. 시작, 첫 번째, 기원이라는 의미의 헬라어다. 요 1:1절과 창 1:1절의 ‘태초’가 바로 그 단어다. 성서기자들이 말하는 그 단어가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사실을 설교에서 짚었다. 우리의 일상적 경험이 그 태초, 곧 시원에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다.
세상과 우주의 시원, 즉 태초는 언제일까? 138억 년 전의 빅뱅이라는 말을 물리학자들에게 듣기는 하지만 그게 실감나지는 않는다. 그 시간을 대충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그 이전은 또 어떻게 생각해야할지 모르겠다. 이전과 이후라는 생각 자체를 버려야 이 문제를 따라갈 수 있다. 이전과 이후라는 생각은 우리가 지금 경험하는 시간 개념에서만 가능하다. 이 시간 개념 자체가 허물어지면 이전과 이후는 아예 성립되지 않는다. 아르케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때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런 때가 어떤 것인지를 이미 시간과 공간 안에서 들어와 있는 우리는 인식할 수 없고 느낄 수도 없다.
비유적으로 설명하면, 한 개인에게서 아르케는 난자와 정자가 결합된 수정란 순간일지 모른다. 그 순간은 훗날의 인간과는 전혀 다른 작동 원리가 적용된다. 숨 실 필요도 없고, 먹을 필요도 없고, 공부할 필요도 없다. 하나의 씨앗처럼 존재한다. 빅뱅이 하나의 점에서 폭발해서 우주를 만들었듯이 수정란이 폭발하여 인간이 된다. 지금의 이 우주가 형태를 지닌 인간이라고 한다면 아르케는 씨앗과 같은 수정란이라 할 수 있다. 그 아르케는 지금 모든 것의 잠재태이면서, 지금을 완전히 초월해 있는 그 어떤 순간이다. 그 순간에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창세기 기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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