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생명
바울이 말하는 ‘복음’은 유대교의 율법이나 로마제국의 법이 아니라 예수가 생명을 허락한다는 의미이다. 종교와 정치가 인간을 구원하는 게 아니라 예수가 구원한다는 이 말을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겠지만 충분히 이해하거나 믿는 건 아니다. 이해력이 부족하거나 믿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생명에 대한 생각이 편협해서, 또는 왜곡되거나 편견에 사로잡혀서, 또는 안일하게 생각해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 더 정확히 말하면 기독교 신앙이 말하는 생명과 구원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성경은 생명을 하나님의 것이라고 가르친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은 생명을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았다는 의미이다. ‘내 것’으로서의 생명이 아니다. 이는 곧 지금 우리가 생명을 다 아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가 생명을 얻으려면 하나님께 자신을 완전히 맡겨야 한다. 현대인들은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것이라고 여긴다. 기독교인들도 여기서 예외가 아니다. 현대인에게 생명은 계량적이고 물질적이고 소유 지향적이다. 행복의 지수를 계산하고, 수명을 늘리려고 하고, 웰빙을 말한다. 다 좋은 것이다. 그렇게 해도 생명을 온전하게 소유하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생명이 우리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설명을 너무 뻔한 소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명 말고 예수를 통해서 얻는 생명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그것에 대한 완전한 설명은 되지 않는다. 사랑을 말로 완전하게 설명할 수 없는 거와 같다. 그래도 비슷하게는 설명할 수 있다.
예수를 바르게 믿는 사람은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된다. 죄는 자기 스스로 자기를 완성해야한다는 강요와 욕망이며, 죽음은 자기 소멸에 대한 두려움이다. 십자가 처형을 받아 죽어 무덤에 묻혔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난 예수를 아는 사람은, 즉 그를 사랑하는 사람은 죄와 죽음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그 해방이 바로 절대 생명이다. 그 해방이 미래에 완성된 생명에 참여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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