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인성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롬 1:4)는 사도신경의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와 똑같다. 차이가 있다면 사도신경에만 나오는 ‘사흘 만에’다. 이것은 예수의 부활이 구약에 예언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사도신경이 교회 전통에 좀더 충실했다는 의미다. 어쨌든지 초기 기독교는 예수가 실제로 죽었다는 사실을 어느 한 순간도 강조하지 않은 적이 없다. 예수의 인성을 끝까지 붙들었다.
기독교가 예수의 인성을 강조한 이유는 무엇인가? 역설적으로 예수의 인성을 부정하려는 세력이 초기 기독교에서 적지 않았다는 게 그 대답이다. 그 세력은 이원론적인 세계관에 기초한 영주주의자들이었다. 인간이면 인간이고 신이면 신이지, 인간이면서 신이고 신이면서 인간일 수는 없다는 생각에 근거해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기 위해서 인성을 축소시켜야만 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에게서 인간과 동일한 요소들이 나타난다면 예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고 말기 때문이다.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예수도 여자에게 성적인 욕망을 느꼈다고 말하기는 껄끄러운 것이다. 그러니 아예 예수에게 그런 인간적 요소가 없다고 보는 게 속이 편하고, 그게 나름으로 논리적이다.
그러나 초기 기독교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즉 그의 신성에 손상이 가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예수의 인성을 고수했다. 예수가 죽었다는 사실을 유독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우리 인간과 완전히 똑같았던(베레 호모)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인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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