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편 가르는 세상에서 (막 9:38‑41) / 김영봉 목사

새벽지기1 2025. 2. 25. 04:47

 

해설:

가버나움에 머무르는 동안 요한은, 그들 중에 속하지 않은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보고, 못하게 했다고 보고한다(38절). 그는, 예수님께서 잘 했다고 칭찬하실 줄 알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냥 두라고 하신다(39절). 정말 귀신을 쫓아내고 있다면 자신을 믿는 사람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예수님에게 해를 끼칠 리가 없다고 하신다.  

 

이 사건은 사도행전 19장에 나오는 스게와의 아들들 이야기를 생각나게 한다(11-20절). 에베소에서 그들은 축사자로 활동 했는데, 바울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보고는, 자신들이 사용하는 방법보다 더 우월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라는 말에 마술적인 힘이 있는 줄 알고, 그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려 했다. 그러자 귀신들이 “나는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지만, 당신들은 도대체 누구요?”(15절) 라고 하면서 그들에게 달려 들어 그들이 봉변을 당했다. 

 

요한이 말한 사람들은 예수를 진실로 믿고 의지했고, 스게와의 아들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주술로 사용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믿음 없이 이름만을 부르는 것은 무익한 일이며, 예수님에게는 모독적인 일이다.  

 

예수님은 이어서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40절) 라고 말씀하신다. 제자들은 모든 것을 자신들의 통제 안에 두고 싶어 했다. 그것이 땅의 사람들의 습성이다. 하나님 나라에는 네 편, 내 편이 없다. 예수님은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해서 너희에게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사람은, 절대로 자기가 받을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41절) 라고 덧붙이신다.  

 

묵상:

오늘, 우리는 지독한 양극화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를 만나든 “저 사람이 나와 같은 편인가?”를 따집니다. 낯선 사람에게 가장 먼저 물어보는 질문이 “당신은 좌파입니까? 우파입니까?” 라는 것입니다. 자신과 성향이 같다 싶으면 마음을 열고, 조금이라도 다르다 싶으면 마음을 닫아 겁니다. 나와 같지 않으면 모두 반대편이라고 간주합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꼴통 보수니, 빨갱이니 하는 레이블을 달고 악마화시킵니다. 

 

믿는다는 사람들도 이 점에서 예외가 아닙니다. 아니, 요즈음에는 믿는다는 사람들이 더 편협하고 옹졸하고 배타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을 “믿음 좋은 것”으로 오인합니다. 믿음의 이름으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고 매도하고 배척합니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40절) 마음 깊이 새겨야 할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 사람들은 “우리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반대하는 사람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씀으로써 예수님은, 할 수 있는 한 포용력을 가지고 사람들을 대하라고 요청하십니다. 자신을 배척하고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지만,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해서 적으로 삼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자신과 다른 입장에 서 있는 사람에게 물 한 잔이라도 건네는 아량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기도:

주님, 믿음이 깊어간다는 말은 편협해진다는 뜻이 아니라, 품이 넓어진다는 뜻임을 알겠습니다. 성령으로 거룩해진다는 것이 자기의를 쌓는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죄에 더욱 예민해져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더 자비로와진다는 뜻임을 알겠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양극화 되고 파편화된 세상에서 평화와 화해의 도구가 되기를, 저희에게 기대하신다는 사실도 알겠습니다. 오, 주님, 저희로 하여금 주님의 기대를 따라 자라가게 해주십시오. 가르고 판단하고 정죄하는 일에 가담하지 않게 하시고, 품고 용서하고 회복시키는 일에 자라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