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회개가 희망이다.(이사야서 1장)

새벽지기1 2024. 9. 29. 06:18

해설:

예언자 이사야는 “유다 왕 웃시아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유다와 예루살렘”을 위해 예언을 했다. 편집자는 이사야의 예언집을 시작하면서 “이것은,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 에 대하여 본 이상이다”(1절)라고 소개한다. “이상”은 히브리어 ‘하존’의 번역으로서, 하나님의 눈으로 역사를 보았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당시 유다 백성의 타락상을 책망하며 그들이 죄로 인해 받을 심판에 대해 예고하신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백성을 다시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희망을 주신다. 1)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에 대한 고발, 2) 그 죄에 대한 심판 그리고 3) 회개와 회복의 희망은 이사야서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다.

 

먼저 그는, 그렇게 심판 받을 수밖에 없었던 시온의 타락상을 고발한다(2-17절). 예언자는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이 저를 어떻게 먹여 키웠는지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구나”(3절)라는 하나님의 탄식을 전한다. 그들은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맞을 짓만을 골라 행해 왔다(4-6절). 그로 인해 땅은 황폐해지고 성읍들은 불에 타버렸다(7-8절). 그나마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들 가운데 얼마라도 살아 남은 것이 다행이다(9절). 소돔과 고모라처럼 완전히 멸망하지는 않았지만, 그들과 별로 다를 바 없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소돔의 통치자들”이요 “고모라의 백성”이라고 부른다(10절). 그것은 유다 백성에게는 참을 수 없는 고발이다. 

 

하나님은 특별히 그들의 영적 타락을 신랄하게 고발하신다(11-14절). 그들의 제사와 제물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성전에 모여 제사 드리는 일에는 열심이지만, 실제 삶에 있어서는 부정과 불의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이 “팔을 벌리고 기도한다 하더라도, 나는 거들떠 보지도 않겠다”(15절)고 하신다. 그들의 손에 피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제사 드리기에 앞 서 그들은 스스로를 정결하게 하고 악한 행실을 버려야 한다. 정의를 추구하고 사회적 약자들을 도와 주어야 한다(16-17절). 세상에서는 밥 먹듯 악을 행하면서 성전에 모여 제사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 역겨운 일이다.

 

그들이 살 길은 오직 회개 밖에 없다. 아무리 죄가 많고 크더라도 진실로 회개하면 양털같이 씻김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회개 하기를 거부하고 계속 죄악을 즐긴다면 심판을 피할 수 없다(18-20절). 

 

이어서 예언자는 “신실하던 성읍”(21절) 곧 예루살렘 도성이 폐허가 된 것에 대해 탄식한다. 정의가 충만하고 공의가 가득하던 그 성에 살인자들이 판을 치는 상황이 되었다. 모두가 부정과 거짓을 일삼고 정의와 자비를 외면하고 있다(22-23절). 이런 상황을 보시고 하나님은 그들을 징계 해서라도 깨끗하게 하시겠다고 하신다(24-26절). 그럴 때 시온은 다시금 정의의 도시가 될 것이고, 회개한 백성은 공의를 행하는 백성이 될 것이다(27절). 반면, 하나님의 손길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28-31절).

 

묵상:

예배와 일상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참된 예배는 일상의 삶에 영향을 주게 되어 있습니다. 일상의 삶은 또한 예배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신실한 예배자는 일상 생활에서 신실한 사람으로 살게 되어 있습니다. 일상 생활에서 진실하게 산 사람은 예배의 자리에 신실한 마음으로 설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울 사도가 말한 “몸으로 드리는 제사”요 “합당한 예배”(롬 12:1)입니다. 하나님 앞에 따로 드리는 예배가 일상 전체를 예배 드리듯 살게 만들어 줍니다. 

 

원리는 그러한데, 실제로는 예배와 일상이 분리되어 따로 도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예배를 드리는 일에는 정성을 다하는데, 일상 생활에서는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처럼 자신의 욕망을 따라 죄악을 일삼습니다. 양손에 피가 가득한데 그 손으로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립니다. 일상 생활에서 추하고 거짓된 말을 쏟아내던 입으로 하나님 앞에서 찬양하고 기도를 올립니다. 그렇게 되면 예배는 자신의 불의와 부정을 감추는 위장술이 되어 버립니다. 혹은 불편한 양심의 도피처가 되어 버립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역겨운 일이고 예배자 자신에게는 해로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회개를 촉구합니다. 이스라엘과 유다가 지금 당하고 있는 국가적인 위기는 영적 위기임을 상기시킵니다. 정치적 위기는 영적인 위기입니다. 사회적 불의와 부정은 영적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배와 삶이 분리된 것에 대한 뼈아픈 각성을 요구합니다. 불의한 삶을 위장하는 수단으로 예배를 오용한 것에 대해 옷을 찢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예배의 자리에만 가두어 두려 했던 불신앙에 마음을 깨뜨리라 하십니다. 그럴 때 제사와 예배는 의미를 가집니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회개입니다.